[인문견문록]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
'제국주의'라는 개념은 한국의 담론장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가 여전히 번성하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이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극우화가 상당히 진행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제국주의'를 공개적으로 논하는 지식인은 희유하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는 그런 희유한 사람중 한 사람이다.
명·청교체기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전지구적 차원의 전환이 감지되는 지금이야말로 국제 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김성해의 책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김성해 지음, 개마고원 펴냄)를 펼쳐 들었다.
제국주의의 전통적 행태는 식민지 영토에 대한 침략과 수탈이었다.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강대국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식민지를 점령했고, 이를 통해 제국의 번영을 추구했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더 이상 물리적 영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 제국주의는 공간을 넘어 의식과 제도, 통치 방식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구조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제국주의가 사라진 배경에는 이러한 통치방식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20세기 초, 식민지 통치전략을 재구성하며 지배의 양상을 바꾸었다.
김성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갑작스레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어쩔 수 없어 총칼을 앞세운 직접통치를 늘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국처럼 엄청난 식민지를 거느리는 제국이 멀리 내다봤을 때 계속 이 정책을 고집하는 건 무리였다.
직접 파견하는 관료는 줄이고 현지인 중에서 대리인을 뽑는 간접통치 방식이 이런 고민 끝에 정립이 되었다.
(중략) 군사와 외교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주는 한편으로 언어와 풍습과 종교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전통을 존중함으로써 저항감을 줄이는 전략이었다.
"(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현대의 제국주의는 노골적인 군사 침략보다 협력자 육성과 제도적 포섭, 문화적 동화 전략 등을 통해 저항 없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통치 구조를 마련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제국주의를 '보이지 않게' 만든 핵심 장치이기도 하다.
직접 통치는 적잖은 비용을 요구했다.
영국은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접 통치 전략을 택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약화된 국력을 감안해 또 다른 생존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미국을 포함한 앵글로색슨 연합제국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힘에 의탁하여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간접적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연합의 구체적 형태가 바로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즉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다섯 나라의 정보 공유 동맹이다.
저자는 이 다섯 나라의 밀접한 협력을 '연합제국'이자, 기존의 단일 제국을 넘어서 있는 '초(超)제국'이라고 부른다.
그의 설명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월터 메드(Walter Mead)에 따르면 안보·경제·문화·무역 등을 아우르는 지금의 글로벌시스템을 조직하고, 유지하고, 확장하고, 방어한 집단은 영어를 공통어로 사용하는 앵글로색슨 가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 집안의 장자는 영국이었고, 그 이후에는 미국이 가업을 이어받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중략) 미국은 과거 대영제국이 했던 통치전략과 유산을 승계했으며, 누군가 가문의 주도권이나 본질적 이해관계를 위협할 때마다 패거리로 뭉쳐 대응하면서 누구도 함부로 반역을 꿈꾸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 메드 교수의 주장이다.
"
이들 국가는 겉으로는 각각 독립된 주권국가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연합제국을 구성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다섯 나라는 군사, 정보, 국경,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잡한 다층적 협력 체계를 구축해왔다.
군사 분야에서는 육군 협력체인 ABCANZ Armi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해군 협의체인 AUSCANNZUKUS, 공군 분야의 항공우주 상호작전위원회 등을 통해 긴밀한 연합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군사 외에도, 관세와 국경 통제를 위한 협의체인 Border Five와 같은 제도적 틀을 통해 협력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외교적 동맹 수준을 넘어, 사실상 단일한 전략공동체이자 제국적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제국을 제국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앞서 말한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통치 방식이 직접지배에서 간접통치로 전환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미국 단독의 지배체제에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라 불리는 5개국의 연합 지배체제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미국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나라다.
어떻게 일반 국민의 의사와 배치되는 영구 전쟁을 선호하는 호전적 집단이 이너서클을 형성하고, 정치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을까?
미국에서 '군산복합체'라 불리는 내부자그룹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대공황에 직면한 루스벨트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기대와 달리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흔히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타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 경제는 전쟁특수를 맞이하면서 비로소 반등하기 시작했다.
전시경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군부와 군수업체 간의 결탁은 점점 더 공고해졌다.
이 과정에서 군산복합체의 기초가 다져졌으며, 이후 이들의 영향력은 미국 정치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다.
군부와 군수업체의 결합은 점차 하나의 구조적 세력으로 고착되었고, 마침내 '군산복합체'라는 거대한 괴물로 성장했다.
이들은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그것에 반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해 왔다.
바로 이 점을 우려하여, 군인 출신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위협을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이 부분은 김성해의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한다면 앤드루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박인규 옮김, 오월의 봄)을 참고할 것을 권한다.
군산복합체는 단순히 군부와 방산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자원을 노리는 초국적 에너지기업들 역시 이 구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싱크탱크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위협'과 '악당'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내놓는 보고서는 주류언론의 보도를 거치며 공신력 있는 정보로 둔갑한다.
이러한 서사를 근거로 국방부는 예산을 증액하고, 군수업체는 천문학적 수익을 챙긴다.
퇴역 장성들은 이들 기업과 연구소에 재취업하면서, '회전문 인사'를 통해 하나의 집단정체성을 형성해간다.
이들은 행정부, 군수업체, 싱크탱크, 정당, 언론을 넘나들며 강고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처럼 연구소(학), 행정부(관), 군수기업(산), 정당(정), 언론(언), 군부(군)가 얽힌 권력의 결합체는 단순한 '군산복합체'를 넘어선다.
이를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군·산·관·언·학·정 복합체'이며, 때로는 이를 '딥스테이트(Deep State)'라 부르기도 한다.
왜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른바 '그림자 정부', 딥스테이트를 제어하지 못했을까?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군부, 검찰, 안기부 등 이너서클에 대한 견제 장치를 어느 정도 작동시켜온 한국과 비교해보면, 장기간 군산복합체에 포획된 미국의 상황은 오히려 이례적으로 보인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왜 내부의 호전세력을 통제하지 못했는가? 저자는 그 해답을 '병영국가(garrison state)'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병영국가 개념은 1941년 미국의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이 처음 제안한 것이다.
그가 당초 염두에 두고 있었던 대상은 나치 독일이었지만, 저자는 이 개념이 미국의 현실에도 무리 없이 적용된다고 본다.
병영국가란, 폭력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군부와 정치 엘리트가 국가를 통치하며, 국민의 자유는 '안보 위협과 무관한' 일부 영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국가는 국가안보가 실제로 위협받거나, 그렇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출현하며, 결국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군사기지처럼 기능하게 된다.
병영국가라는 표현에서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을 병영국가라 부르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미국 철학의 태두 존 듀이의 말에 주목한다.
듀이는 단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선거제일 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행해지는 '삶의 방식'이라 듀이는 주장한다.
이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구현되는지를 가늠하려면, 시민들이 폭력을 독점하는 법집행기관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실화 기반 영화 <라스트 미션>(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2018)의 한 장면을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일반 시민의 차량을 임의로 막는다.
영문을 모른 시민은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시나무 떨듯 떤다.
이처럼 일반 시민에 대한 국가 공권력의 일상적 폭력행사는 미국 영화에서 흔한 클리셰다.
이는 단지 허구가 아니라, 실제 미국 사회에서 공권력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한국에서 일반 시민이 경찰에게 "민주경찰이 말이야"라며 삿대질하는 장면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해진다.
법집행기관을 향한 시민의 태도 하나만으로도, 미국 사회가 병영국가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병영국가는 외부와만 전쟁하지 않는다.
내부에서부터 전쟁을 치른다.
저자 김성해는 한국인들에게 '제국맹(帝國盲)', 즉 제국과 제국주의의 작동 방식에 무지한 상태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정세에 대한 감각이 현저히 부족하며, 국제 정세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문맹 수준에 가깝다.
주류언론의 국제 뉴스를 열심히 챙겨 본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뉴스의 의제 자체가 초국적 제국주의 세력과 밀착된 서방 주류언론(MSM: Mainstream Media)에 의해 설정되기 때문이다.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세계 질서의 본질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김성해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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