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은 '기술적 사건'을 넘어 '문명적 충격'으로 기록되었다.
바둑은 오랜 시간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이 요구되는 고도의 지적 영역이라 여겨졌고, 누구도 기계가 이 세계를 넘볼 수 있으리라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알파고는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4승 1패. 이세돌은 이 충격으로 바둑계를 떠났지만, 그는 알파고와 대국에서 단 한번이라도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됐다.
알파고도 74전 73승 1패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 2000년대 초반 구글이 내세웠던 비공식 슬로건이다.
구글 개발자들이 회의에서 제안한 문구라고 한다.
2015년 구글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모회사인 알파벳을 설립했다.
이때 공식 슬로건도 함께 선보였다.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 이듬해 구글은 알파고로 인간 기사들을 모두 초라한 존재로 만들었고, 바둑계를 뒤흔든 뒤 떠났다.
성능이 입증된 알고리듬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러, 막대한 주가 상승효과를 누리며. 이것은 옳은 일인가? 인간 기사들과 바둑계에게 구글은 사악했던 것 아닌가?" (281쪽) 소설가 장강명의 신작 <먼저 온 미래>(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펴냄)는 인간을 뛰어 넘는 'AI'라는 충격파를 먼저 경험한 바둑계 이야기를 통해 AI가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여준다.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뺏을 것인가", "AI 개발을 반대하나"와 같은 질문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내가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생활방식을 고집하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나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
"(188쪽) AI가 가져올 가장 두려운 변화는 AI가 초토화시킨 바둑계와 얼마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스튜디오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을 통해 단편적으로 드러났다.
"모욕, 착취, 황폐화 같은 표현 아래에는 '오픈AI가 뭔가 중요한 것을 망가뜨렸다'라는 분노가 있다.
그 '중요한 것'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저작권이 아니다.
설령 오픈AI가 스튜디오 지브리에 작품 이용료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나의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오픈AI는 저작권 이상의 것을 망가뜨렸고, 망가진 그것은 작품 이용료로 회복되지 않는다.
프로기사들의 자부심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앞으로 영영 복구할 수 없을 무언가다.
"(270쪽) "나는 AI 시대가 공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한다.
평범한 인간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고, 가치로부터 소외되는(…)우리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사회는 거대한 '죽음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
"(225쪽) 공장을 습격하고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 운동'이 방직기 도입을 막지 못한 것처럼 AI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인간이 평생을 노력해 이룬 예술적, 지적인 성과를 하루 아침에 "싸구려"로 만들 수 있는 AI 기술에 대한 저항은 '가치'에 대한 질문하는 것이다.
회사 공식 슬로건과는 달리 "옳은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AI 기술이 '가치'와 '도덕'에 기반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러다이트 운동'을 이끈 노동자들의 저항 정신은 노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다.
"인간성이 무엇인지, 가치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으면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기술을 만들어 달라고 기술자에게 주문할 수는 없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
"(335쪽) 우리는 지금 '기술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낸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 대중화 이전에도 마치 기술이 정답을 알려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해야 한다.
이제껏 현대 사회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던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배우고 '좋은 삶'을 살아내는 것, 이건 결국 인간의 몫이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340쪽) ▲<먼저 온 미래>, 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AI 사회가 거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