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서로 돌봄] <4부> 돌봄은 사랑 ③ 대흥동교동협의회
대흥동교동협의회장인 장헌일(왼쪽) 목사와 김준희(가운데) 신촌예배당 부목사가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홀몸노인 가정을 방문한 모습. 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 마포구 대흥동, 젊은이들이 몰리는 화려한 신촌 대학가 건너 골목 안쪽엔 오래된 주택 단지가 있다.
그중 한 주택 반지하 방에 사는 김정수(가명·80)씨는 관절 통증을 앓으면서도 폐지 줍는 일로 생계를 잇는 홀몸노인이다.
여름 끝자락에도 여전히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던 지난 8월 말 그런 김씨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인근 교회에서 온 장헌일, 김준희 목사다.
곰탕과 햇반 등을 두 손 가득 들고 와 ‘식사하셨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김씨는 “더위를 먹었는지 요새 입맛이 없다”면서도 밝게 웃었다.
두 목사는 김씨의 안부를 물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늘 같이 기도하겠다”며 김씨 집을 나서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날 동행한 장민욱 사단법인해돋는마을 사무총장이 “요새 술을 많이 드시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하자 장 목사는 “술병과 고지서가 쌓이기 시작하고, 온종일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건 고독사 위험이 높아진 징후”라고 걱정했다.
협의회 7개 교회 목회자들. 협의회 제공 김씨의 삶은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돌봄의 손길이 절실한 현실을 보여준다.
올해로 12년째를 맞은 대흥동교동협의회(회장 장헌일 목사)는 지역교회와 지자체, 주민센터가 협력해 이러한 지역 내 소외계층을 돌보는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신생명나무교회(장헌일 목사)를 비롯해 새롬교회(마지원 목사), 뉴라이프교회(박진웅 목사), 대흥교회(이영섭 목사), 신촌예배당(이재천 목사), 우리성결교회(김연태 목사), 이음교회(이경수 목사)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연대를 실천한다.
사단법인해돋는마을 이사장으로서 쪽방촌 노숙인을 돌봐온 장 목사는 고독사보다 먼저 찾아오는 외로운 삶의 현장인 ‘고독생’을 지켜보면서 지역교회가 복지 사각지대를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사명을 느끼게 됐다.
장 목사는 “내년 3월 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주요 수요자인 노인과 장애인 중엔 아직도 많은 이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며 “지역주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생활권 단위의 근본적인 통합돌봄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지역교회가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2022년 2년간 서울시 사업에 마포구 대표로 선정돼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협의회 소속 교회들은 고독사 방지 사역 외에도 노숙인·청년·아동·한부모가정 등 분야별 전문성을 살려 협력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서로 연계하며 돌봄 공백을 지원한다.
얼마 전 신촌예배당은 홀몸 노인 두 가정이 끼니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들을 관련 사역을 펼치는 신생명나무교회로 연결해 대처했다.
게임에 중독된 학교 밖 청소년 문제를 돕기 위해 우리성결교회와 해돋는마을이 협력해 상담을 진행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 사례도 있었다.
김연태 목사는 “지역교회의 연대는 행정력이 못 미치는 돌봄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며 “각 교회가 잘하는 분야를 살려서 대처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어르신과 폐지 더미를 살피는 모습. 협의회 제공 지역교회의 관심과 지자체의 행정이 함께하면서 돌봄은 더욱 촘촘해졌다.
협의회는 대흥동주민센터(김순영 동장)와 손을 잡고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다양한 협력 사업을 진행한다.
이는 민관이 협력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례로 꼽힌다.
또 매달 한 차례씩 모여 지역 내 현안을 공유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함께 기도도 한다.
이 모임에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구의원, 주민센터 관계자도 나온다.
지난 1일 신촌예배당에서 열린 모임에는 협의회 목회자들을 비롯해 소영철 서울시의회 의원, 오옥자 남해석 장정희 마포구의회 의원, 김순영 동장, 김석원 마포구 대흥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모임에서 관내 소외·취약계층을 점검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 대처하는 일이 지속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김 동장은 “지역교회는 주민들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과 사정을 더 잘 알 수밖에 없다”며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여는 데도 교회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고자 지역교회와 주기적으로 소통하려 한다”고 전했다.
폐지 모으는 리어카 옆에 서 있는 장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대흥동교동협의회 모델은 다른 지역 교회로도 퍼지고 있다.
구로구 개봉동에서도 협의회를 벤치마킹해 연합 돌봄을 준비 중이다.
장 목사는 “작은교회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각 지역적 특색과 수요에 맞춰 대응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말한 복음의 땅끝이 어딘가를 생각해봤을 때 교회가 속해있는 지역 공동체가 아닐까 싶다”며 “지역 돌봄은 신학적으로도 공공성과 공교회성, 선교적 사명을 실천하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강조했다.
신촌예배당의 부교역자인 김준희 목사도 “각 교회의 전문 사역을 서로 연계하면, 개교회의 여력이 못 미치는 곳까지 지원하며 이웃을 돌볼 수 있다”며 “서로 연합해 돌봄 현장에 나설 때야말로 교회가 세상에 필요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회복하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고 역설했다.
홀몸노인·쪽방촌 노숙인 촘촘한 돌봄… 고독사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