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방통위, 방송사 제재 패소에 무더기 항소…법무부가 9건 일단락
방송사들 “방통위 무리한 항소로 예산 등 낭비 심해” 한목소리 
민주당 이훈기 의원 “과장급 이상 간부들 공동 책임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10월27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당시 옛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무리하게 방송사들을 향해 법정제재를 추진해 1심 판결에서 패소했음에도 이진숙 위원장 체제 방통위가 항소를 강행해 이재명 정부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지휘하고 있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방통위(현 방미통위) 직원들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며 같은 문제가 재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 무리한 심의제재로 인한 제재 취소 소송 패소가 총 25건에 달하는 가운데 법무부는 현재까지 총 9건에 항소를 포기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법무부는 지난달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윤석열 정권 비판 관련 방송) △대전MBC '뉴스데스크'(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공약이행 검증 보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판결 관련 방송) △KBS '뉴스9'(김만배 신학림 녹취록 관련 보도) 등 4건에 추가로 항소를 포기했다.
앞서 법무부는 5건 항소 포기를 일괄 지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12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CPBC 가톨릭평화방송 '김혜영의 뉴스공감' (이태원 참사 특별법) △MBC '신장식 뉴스하이킥'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MBC '김종배 시선집중'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 인터뷰) △JTBC '뉴스룸'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등이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홍일 전 방통위윈장, 이진숙 현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이들 방송은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A 방송사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 보도를 이유로 법정 제재를 내리는 데 방통위 공무원들은 방관 내지는 동조했다.
결국은 거의 다 패소했는데도 방통위는 또 항소했다.
방통위는 '묻지마 항소'에 대해 법무부 소송 지휘를 따랐다는 취지로 답했는데 알고 보니 이진숙 위원장이 법무부에 '항소로 지휘해달라'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국정감사 때 이 부분을 지적하니 방통위 공무원은 '이진숙 위원장이 아니라 누가 있었더라도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하더라. 여전히 방통위 공무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위는 반성해야 한다.
방송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데 최전선에 서야 할 방통위가 대놓고 그걸 무너뜨리려는 이동관의 지시와 류희림의 제재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고 했다.
무리한 심의로 인한 소송으로 방송사는 피해를 입어야 했다.
MBC 관계자는 "방통위의 무리한 항소로 예산과 노력의 낭비가 심각한 상황이다.
법무부가 항소 포기 지휘로 정상화에 나서고 있지만, 소송 당사자인 방통위의 성찰과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안성용 CBS 보도국장도 "무리수였다는 게 만천하에 다 드러났다.
그로 인해 정신적 시간적 물적 낭비가 대단했다.
정부가 어떻게 보상할 건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언론을 권력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라고 지적한 뒤 "공무원이 정파적으로 일하지 않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전 정권의 폐해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여차하면 다친다고 생각해 복지부동하게 만들고, 특정 정파에 가담하게 만들어서 본래 소명을 잃고 정권에 복무하는 두 가지 폐해가 나타난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김효재·이동관·김홍일·이진숙 체제에서 벌어진 공영방송 이사 해임, 이사 선임 강행 등도 문제가 됐다.
방통위는 이와 관련된 사건도 항소로 대응하고 있다.
▲ 유시춘 EBS 이사장(왼쪽부터),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을 비롯한 공영방송 이사 등이 2023년 8월2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직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은 "소송 비용을 1억 원정도 썼다.
집행정지 소송은 승소해도 소송비용을 피고쪽에 부담시킬 수 없는데다 본안 1심에서 승소했지만 방통위가 항소해 한푼도 비용을 보전받지 못했다.
법원에서 해임사유가 하나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무리한 해임 결정을 한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같은 해 9월 KBS이사회(여권 이사 6명 찬성) 해임안 의결 이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해임당한 김의철 전 KBS 사장도 법원으로부터 지난 1월 해임처분 취소 판단을 받았다.
김의철 전 사장은 "소송 비용을 사비로 충당했다.
판결문에서 소송 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라고 되어있지만, 변호사 비용과 상관없이 대법원 예규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비용은 정해져 있다"고 전한 뒤 "방송장악 과정에서 개인이 부담할 소송 비용이 적은 액수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훈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4일 방미통위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부 3년간 방통위가 방송장악 도구로 쓰인 것을 가리켜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공동의 책임이 있다.
부역하거나 묵인·동조한 분들 아닌가"라며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방통위 직원분들이 정권이 방송 독립성을 훼손하고 방송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들은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래서 방심위를 지켜냈다.
방통위는 도대체 뭘 한 거냐"라며 반상권 방미통위원장 직무대리에게 "국민께 사과하겠나"라고 물었다.
반상권 직무대리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 의원이 뒷자리에 앉아 있는 간부들을 향해 "간부들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큰 과오를 범하고. 사과 안 하는 걸로 알겠다"라고 말했다.
방미통위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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