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9월 네이버 5·18 기사 1112개에 달린 악성댓글 7934건
주요 정치 국면마다 댓글 증가… 악성댓글 전면 차단 못하는 ‘클린봇’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대응 위해 정보통신망법 개정 필요”
▲ 1980년 5월 계엄군에게 폭행당하는 광주 시민. 촬영자=이창성, 사진=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사에 악성댓글이 따라붙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고, '가짜' 유공자가 많다는 악성댓글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9월까지 약 8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일이 온라인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악성댓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급증했다.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이 같은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실효적 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기념재단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관련 댓글 현황과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5·18 미디어모니터링 결과 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조사 결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성댓글은 예상보다 많았고, 정치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숫자가 늘어나는 등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민언련은 네이버 뉴스구독자가 400만 명이 넘는 23개 언론사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9월까지 작성한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사에 게재된 댓글을 전수조사했다.
기사 1112개에 게재된 왜곡·폄훼 댓글은 793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댓글 작성자는 5321명이다.
1인당 평균 1.49개의 댓글을 게재했는데, 왜곡·폄훼 댓글을 가장 많이 작성한 누리꾼이 작성한 댓글은 3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관련 네이버 뉴스 댓글 유형.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댓글 내용은 악의적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빌미로 특정 지역을 혐오하는 댓글이 2967개로 가장 많았으며,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를 '가짜'로 규정한 댓글이 1640개였다.
5·18민주화운동이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한 댓글도 804개였으며,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댓글은 349개다.
내란을 정당화하거나 전두환을 옹호하는 댓글도 각각 272개, 104개였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악성댓글은 정치적 상황이 발생하면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던 지난해 12월 관련 댓글은 2612건에 달했으며, 내란 조사가 본격화된 지난 1월 954개가 작성됐다.
지난 2월부터 지난 4월까지 관련 댓글은 100건을 넘지 않았지만 5·18민주화운동 행사가 진행된 지난 5월 1870건으로 증가했다.
또 대통령선거가 열린 지난 6월 댓글은 1369건으로 나타났다.
네이버의 '클린봇'은 5·18민주화운동 악성댓글을 전면 차단하지 못했다.
네이버는 AI로 욕설이나 모욕적 내용이 담긴 댓글을 자동 삭제해주는 '클린봇'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악성댓글 중 자동 차단되지 않아 민언련이 직접 신고한 댓글은 전체 악성댓글의 80%를 넘어섰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대다수 5·18 왜곡·폄훼 댓글이 이용자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며 "플랫폼의 필터링 기능만으론 악성댓글을 통제하기 어렵다.
플랫폼의 무책임한 묵인 하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조직적 비방, 희생자 명예훼손, 역사 부정적 주장 등이 지속적으로 게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 지난 2월15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서 배포된 스카이데일리 특별판 신문과 홍보물.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악성댓글뿐 아니라 언론보도를 통한 역사왜곡도 이어진다.
스카이데일리 등 일부 매체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왔다.
2022년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민주화운동법)은 악성댓글과 같은 허위정보를 규제하기 위한 처벌조항이 포함됐다.
법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의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5·18민주화운동법이 제정된 후 검찰이 허위사실로 기소한 건은 지난 7월이 처음이었다.
이용성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은 "5·18민주화운동법에 따르면 예술이나 학술과 시사보도 같은 방식으로 역사왜곡과 폄훼가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정보통신망법 개정 등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에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은 "댓글뿐 아니라 유튜브 등을 통한 왜곡과 혐오차별 선동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유통금지 불법정보에 5·18민주화운동 허위정보를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역시 스카이데일리 등 일부 언론의 문제적 보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 교수는 스카이데일리가 최근 5·18민주화운동 허위보도에 사과하고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고 밝혔지만 <민경욱 '제갈 물리기' 나선 5·18재단>등 일부 기사가 남아있다면서 "이 같은 보도는 허위사실 유포와 마찬가지다.
(5·18민주화운동법의) 예외조항을 적용하기 힘들다고 보고, 관련 법 해석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성옥 교수는 5·18민주화운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규제를 강화한다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2000년 홀로코스트 범죄의 심각성과 역사왜곡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약속한 '2000년 스톡홀름 선언'을 예로 들었다.
윤 교수는 "유럽은 스톡홀름 선언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했다"며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도 역사 부정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미디어모니터링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사진=미디어오늘 플랫폼의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됐다.
이권일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인권재판소는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역사왜곡 표현은 표현의 자유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심각한 명예훼손적 표현의 경우 형법이나 5·18민주화운동법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며 "문제는 규제의 대상이 될지 애매한 표현들인데, 독일 등 유럽에선 '규제된 자율규제' 방식으로 이 문제를 대응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관련 게시물 삭제·차단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독일은 플랫폼 사업자가 문제적 게시물을 삭제·차단하는지 살펴보고,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며 "이 같은 방식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이용성 위원은 "정치적 극단주의와 혐오·차별·선동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허위조작정보와 혐오·차별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선 팩트체크 기반의 비판적인 리터러시 교육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권일 교수는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라며 "댓글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와 함께 역사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혐오 표현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의 주문도 이어졌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역사왜곡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역사왜곡 근절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새 정부가 제도 개선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도 미진하고, 당사자들의 적극성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이나 역사왜곡에 대해 고발하고, 정부도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 계엄·조기 대선 국면마다 5·18 역사 왜곡 댓글 폭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