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이호림 공동의장 인터뷰
2025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4차 범시민대행진〉에서 대표발언 중인 이호림 공동의장. 이날 집회가 끝나기 전 윤석열이 석방되었고,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의장단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인용 결정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마침내 파면됐다.
이로써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험난하고도 지난했던 여정이 한 챕터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안도할 틈도 없이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기습 지명하여, 시민들이 ‘위헌적 월권 행위’라고 크게 분노하고 있다.
내란 세력이 아직 건재함을 체감하는 순간이자, 정치의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몫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약 4개월 동안 탄핵 광장을 꾸려온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공동의장단 중 한 명인 이호림 공동의장을 만났다.
광장의 경험과 현재 상황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와 ‘모두의결혼’ 활동가이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성소수자 운동이 목소리를 내는 여러 현장을 지켜온 이호림 공동의장은 지쳐있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밝은 표정이었다.
지난 3월, 윤석열 파면을 외치며 14일간 단식을 했던 터라 그 후유증도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이 된 날이 마침 공교롭게도 보식 마지막 날이어서 막걸리도 마실 수 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이제 일상을 좀 회복하고 있나요?   비상행동 활동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앞으로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있어요. 2월부터 (원래 소속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실에 한 번도 못 나갔어요. 3월엔 집보다 밖에서 잔 시간이 더 많았고요.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원래 하던 일들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만 힘든 게 아니라 배우자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단식기간 중엔 매일 아침 출근 전 농성장에 들르고, 퇴근하고 나서도 농성장에 와서 절 보고 갔어요. 고양이들도 외로워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요즘엔 재택 근무하면서 주로 집에 있으려고 해요.   - 처음에 비상행동에 참여하고 공동의장을 맡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때를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도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시민의 참여는 많았어요. 하지만 광장이나 무대에서 여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오는 등 문제가 있었고, 광장 이후에도 광장의 요구를 받아들인 제도나 정책 변화가 충분히 만들어지기 못했죠. 그걸 경험했기 때문에 윤석열 퇴진 투쟁엔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광장을 성소수자도 함께 하는, 어떤 거점이 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공동의장단 내에) 성소수자 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했죠.   2025년 1월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시도를 5시간 30분만에 중단하자, 영장이 만료되는 6일까지 한강진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눈을 맞으며 3박 4일간 체포 촉구 철야농성을 벌였다.
길거리에 앉아있는 이호림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의 무릎에 ‘프로그레스’(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다양성을 드러내는 상징) 깃발이 덮여 있다.
©민주노총     - 성소수자 운동을 대표하여 공동의장단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꽤 오래 대학원 생활과 활동을 병행하다, 전업 활동가가 된 지 3년인데요. 성소수자 운동하면서 다양한 연대 활동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비상행동(1,732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처럼 거대한 연대 운동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어요. ‘여기서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내 역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가는 게 더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 참여하면서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이 운동에 잘 반영되게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잊혀지더라고요. 무슨 말이냐면, 노력할 필요가 없었어요. 너무 많은 개인이 자신만의 무지개 깃발을 만들어서 광장에 등장했고, 여러 시민단체들 또한 무지개 버전 깃발을 들었죠. 정말 많은 성소수자 당사자가 무대에 올라 발언했고, 또 당사자가 아닌 분들까지도 성소수자와 연대한다는 말을 수없이 했고요. 내가 애초에 생각한 역할을 까맣게 잊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공동의장이라는 역할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게 됐어요.   사실 처음엔 ‘난 광장의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한강진에서 많은 시민들과 3박4일 철야 농성을 하면서 ‘내가 이 광장을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고, 어떤 무게를 가진 사람이구나. 그 책임을 정말 잘 져야 하는구나’ 깨닫게 됐어요.   -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운동은 늘 “나중에” 취급을 받았죠. 성소수자 친화적인 정부도 없었고요. 윤석열 정부도 그 연장선일 뿐이고, 성소수자 운동이 윤석열 퇴진에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보수 정권과 민주당 계열 정권이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역할에서 차이가 정말 없다고 할 순 없어요. 큰 차이가 있죠. (보수 정권에서) 삶이 더 나빠지거든요. 윤석열 정부만 해도 그래요. 성소수자에게 미친 악영향으로 핵심적인 건, 바로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 상황이죠. 성소수자에게 인권위는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독립적인 정부 기관이었는데, 지금은 인권위 내부에서 인권위원들과 위원장이 나서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고 있어요. 인권위는 우리 사회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여러 일들을 하는 곳인데, 윤석열이 임명한 안창호 위원장은 인권위 안에서 ‘차별 없는’, ‘불평등’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거든요. 윤석열이 탄핵되었지만 이들의 임기는 여전히 남았다는 점은 앞으로도 정말 큰 문제에요.   또한 윤석열 정부는 당선 전 선거운동 때부터 파면된 후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모든 메시지를 극우 세력을 향해 보내고 있어요. 극우의 결집을 조장해,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고요. 지난 몇 개월 간 극우 세력의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들이잖아요. 그런 이들을 ‘국민’으로 호명하면서 결집을 이끌어 낸다는 건 최악이죠. 이것의 후폭풍 또한 계속 남을 거고, 그 영향을 받는 건 여성,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일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퇴진은 중요한 문제였어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운영하는 온라인 시민 공론장 ‘천만의 연결’ 사이트 중.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정책, 법, 제도를 제안해주세요.” https://talk.bisang1203.net       - 비상행동의 정식 명칭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죠. 윤석열 퇴진만큼 사회대개혁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지가 담겨있는데요. 사실 사회대개혁이라는 말은 너무 ‘큰 일’ 같아서 시민들에게 가깝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윤석열 퇴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얘기했어요. 윤석열 이후에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시민들이 광장에서 공유한 말들, 그 속의 가치를 광장 밖 일상으로 확장하는 게 사회대개혁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시민들이 얘기했던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 공존하는 사회”를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사실 비상행동 내 사회대개혁특별위원회에서 ‘광장의 목소리’를 구체적인 변화로 만들기 위해 여러 기획을 했고, ‘사회대개혁 과제’도 만들었어요. 다만 이런 내용을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기 좀 어려운 조건이었던 것 같아요. 윤석열이 구속되었다가 석방되고, 예상치 못하게 헌법재판소의 판결 선고가 너무 늦어지면서 ‘윤석열 퇴진’에 집중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죠.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듣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아서 참 아쉬워요. 앞으로의 과제죠.   - 광장에서의 시민들 발언이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어요. 저도 집회에 갈 때마다 감동 받고 용기도 얻었거든요. 박근혜 퇴진 운동 때와 정말 다르다는 생각도 했고요.   8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고, 그 동안의 변화가 반영된 것 같아요. 우리가 해 온 연대 운동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이번 광장을 준비하면서 ‘무지개존’을 만들자고 했고 실제로 운영했는데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지개존을 못 찾겠어요.”라고 했어요. 무지개 깃발이 곳곳에 너무 많아서, 어디가 무지개존인지 모르겠다고요. 그 정도로 많은 개인, 단체, 단위에서 무지개 깃발을 든 거죠.   2024년 12월 14일 국회의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당일, 여의도 공원에서 펼쳐진 ‘무지개존’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비상 계엄 직후의 평일 집회부터 매번 성소수자 시민이 한 명 이상 무대에서 발언했어요. 그 수가 남태령, 한강진에선 폭발적으로 많았고요. 전 성소수자 시민들의 정치적 변화에 대한 높은 열망을 반영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궁금해서 박근혜 퇴진 운동 때 성소수자가 몇 명이나 발언을 했나 찾아봤거든요? 주변 활동가들한테도 물어보면서 찾아보니까 딱 2명이었어요. 활동가 2명. 근데 이번엔 셀 수가 없었어요. 초반엔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 있는 단톡방에서 성소수자라 밝힌 시민 발언이 있으면 기록으로 공유했었거든요? 어느 순간부턴 포기했어요,(웃음) 너무 많아서요.   한편으로 좀 위기감이 들기도 했어요. 내가 성소수자 운동을 꽤 오래 했는데, 발언하는 분들을 모르겠는 거에요. ‘저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분들이지? 왜 이분들을 성소수자 운동이 아니라 여기서 만나지? 왜 우린 그동안 못 만났지?’ 광장에서 새롭게 만난 성소수자 시민들의 목소리를 앞으로 잘 모아내야 한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좀 조바심이 나는 것 같아요. 운동의 힘으로 이어 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 예상보다 길어진 광장의 시간이었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의장단은 집회 때 제일 앞에 앉아있고, 그래서 광장과 관련된 소소한 경험이 많진 않아요. 무지개존 운영했던 동료들 얘길 들어보면,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일 것이라 생각되는 20~30대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있었더라고요. “윤석열도, 성소수자 차별도 없는 사회로”라는 피켓을 보고 “좋은 말이네요.”라고 얘기한 중년 여성 이야기, 또 중년 민주당원 부부가 큰 돈을 후원하고 갔다는 말도 들었어요. 지지한다거나 파이팅을 외친 분들도 많고요. 이 광장을 통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에 있는 시민들을 만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좀 인상적이었던 건, 공동의장단 내의 반응이었어요. 물론 사회운동을 오래 해 온 분들이라, 나이가 좀 있어도 성소수자에게 편견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근데 이 분들도 성소수자 시민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정말 생각하게 되신 것 같더라고요. 의장단이 집회 때 제일 앞에 앉아있다 보니 시민 발언을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없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성소수자 차별금지’ 이런 게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어떠한 삶의 경험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지 깊이 이해하게 된 거죠. 그런 반응을 보면서, 광장을 채웠던 다른 많은 시민들 그리고 정치인들에게도 전달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평등해지는 큰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돼요.   - 9일자로 비상행동 명칭이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앞으로의 비상행동 계획이 궁금하고, 성소수자 활동가로서의 호림 님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   윤석열 파면이 내란의 종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덕수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 사태부터 여러모로 우리 과제가 남은 것 같아요. 박근혜 때와 비교해도, 당시 보수정치권이 박근혜와 빠르게 손절했던 분위기와는 완전 다르죠. 비상행동 내에서 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내란 세력 청산’이 중요한 과제로 남은 것 같고요. 사회대개혁과 관련해서도, 시민들의 요구를 정리하고 다음 정부가 실현하게 해야죠. 근데, 비상행동 일에 4개월 넘게 많은 활동가가 매달려 있었어요. 다 원래 소속 단체가 있잖아요. 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죠.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저 또한 광장에서 나왔던 목소리들, 성소수자 관련된 과제들과 많은 성소수자 시민이 표출한 정치적 욕구를 어떻게 변화로 만들어낼 것인지 우리 운동의 과제가 남았다고 생각해요. 작년 하반기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을 좀 더 실행력 있는 단체로 만들려고 고민하던 시점에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거든요. 운동을 좀 더 튼튼히,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긴 호흡으로 가자고 했었는데, 이렇게 대선이 또 치러지게 됐고 새 정부가 탄생할 거라 당면 과제들도 생겨서… 긴 호흡과 당면 과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네요!(웃음)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헌법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하자, 4개월 간 함께 시간을 보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과 함께 이호림 공동의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 호림 님이 생각하는 ‘사회대개혁’이 일어난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요. 자유라는 말이 극우에 의해 많이 훼손됐지만, 본래의 의미를 생각할 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 아닐까요? 내가 무언갈 하고 싶을 때, 나의 가족 배경, 경제적 지위, 장애 유무,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해 실현하지 못하는 사회가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고요. 무지개존에서 나눠드렸던 피켓 중에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가 있는데, 어떤 분이 그걸 반으로 찢어서 반대로 “성소수자 지키는 민주주의”라는 문구를 만들어 사진을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게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새로운 세상에선 민주주의가 성소수자를 지켜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 세상이면 좋겠네요.   - 광장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막중한 책임감으로 힘들었겠지만, 이 경험이 개인 이호림에게 어떤 걸 남겼다고 생각하나요?   자신감이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심지어 단식도 할 수 있구나.(웃음) 이런 식의 투쟁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싸워볼 수 있겠구나 싶어요. 무지개행동의 많은 활동가도 다들 너무 지치긴 했죠. 길 위에서 시간 보내고 밤 새면서 물리적으로, 신체적으론 힘들었지만 우리 운동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걸 함께 확인했어요. 또 우린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변화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요.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성소수자를 호명하며 연대를 얘기했다는 사실 또한 성소수자 활동가로서의 자신감을 충전해준 것 같아요. 정말 힘든 고비가 많았지만, 결국 이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을 파면했기 때문에 한국의 사회운동, 시민들 또한 자신감을 채우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시민들이 윤석열 퇴진 광장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