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타버린 산에 다시 초록이 돋아나려면①
3월 22일, 의성 산불이 시작된 날의 오후 의성읍에서 촬영한 사진. (제공-장정희)
재난을 마주하다
쇠스랑으로 두둑을 만들다가 허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결리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고개를 들어 먼 산도 한 번씩 바라보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새카맣게 타버린 산만 눈앞을 차지하고 있다.
필자가 사는 곳은 이번 괴물 산불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인 의성군 점곡면이다.
“아이고 의성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별일을 다 겪네요.”
대피소에서 함께 있던 이웃에게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의성에서 쭉 살아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쉬이 겪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칠팔십 대의 어르신들이 “내 평생 살다 살다 이런 불은 처음 본다.
”라고 하셨다.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덕, 영양, 그리고 경남 산청, 하동, 울주를 태웠던 면적은 48,239헥타르로, 여의도의 166배, 서울시의 8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지역의 주민들은 여의도와 서울시의 면적을 잘 모른다.
농촌에서는 ‘마지기’로 땅의 면적을 세는데, 씨 한 말을 뿌려 농사를 지을 만한 크기의 농지로 근래에는 약 200평 정도가 된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면적은 약 73만 마지기다.
그래도 너무 높은 숫자라, 가늠이 잘 안된다.
이렇게 어림으로도 가늠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불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3월 22일 오전 11시 25분경,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의 한 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57분경 안계면 용기리에서, 오후 2시 36분경 금성면 청로리에서도 각각 신고가 접수됐다.
금성면의 산불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안평면의 산불은 성묘객이 산소를 정리하느라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태우는 순간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고 했다.
안계면의 산불은 한 과수원 밭에서 농사용 쓰레기를 태우다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3월 23일 오후, 경북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 방향으로 보이는 산불. (제공-장정희)
당시 계절풍인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리고 예년보다 고온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었고 의성에는 불꽃이 옮겨 다니기 좋을 낮은 산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 초롱불의 심지로도 썼다던 송진이 가득한 소나무의 비율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심겨 있었다.
타 도에 비해 높게 식재되어 있다.
정리하면, 의성시는 산불이 번지기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랬기에 각기 다른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의성읍과 단촌면, 점곡면을 지나 옥산면까지 불꽃이 옮겨갔고, 점곡면과 단촌면은 이제 좀 잦아드나 싶었던 발화 4일째인 3월 25일 화요일, 다시 단촌면 전역으로, 점곡면 전역으로, 의성을 넘어 안동으로 청송으로 영덕으로, 하다 하다 영양까지 빠르게 번져나갔다.
왜 농촌에서는 불법 소각을 할까
농촌에서의 소각. 농촌에서는 정말 일반적인 일이다.
바람이 부는 시간을 조금 피하기는 하지만 바람이 부는 날을 다 피하지는 못한다.
날마다 태워야 할 양이 있기 때문이다.
점곡에 이사 와서 마당에 한가득인 마른 풀을 걷어 모아 포대에 담았더니 주변에서 말한다.
“이걸 포대에 넣는 사람 처음 봤다, 이런 건 태워야지.” 그때도 남서풍이 꾸준하게 부는 3월 중하순이었다.
물론 바람이 조금 약한 새벽이나 저녁 시간대에 태우라고는 했다.
아무래도 무서워서 면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이거 어떻게 버려야 하나요?” 그러나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여전히 마을 한편에 포대가 쌓여있다.
지자체에서는 산불감시원을 모집하여 운영하고 산불조심 기간을 정해 영농분야 불법 소각 행위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산림 인접지역에서 불을 피우다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산불로 번질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농촌에서는 불법 소각을 할까. 어째서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불법 소각이 이뤄지지 않을까.
아파트에서는 개인이 태울 쓰레기가 없다.
모든 쓰레기를 분리배출할 수 있는 함이 종류별로 비치되어 있고, 양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24시간 버리고 싶은 사람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농촌의 경우는 대개가 그렇지 않다.
산골 안 지역으로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서 도로가 있는 곳까지 내놔야 하기도 하고, 허허벌판에 강풍이 부는 날이면 쓰레기가 날려 다시 들고 들어올 때도 있다.
2025년 3월 24일 오후, 점곡면사무소. 아이들이 조기 하교 후, 대피를 준비하며 촬영한 것이다.
(제공-장정희)
그래서 소각이 마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기 편리한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지킬 수 있도록 행정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산불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은, 쓰레기를 적게 배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023년 11월, 시범사업을 하고 유예 기간을 주며 시간을 끌어온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결국 철회됐다.
가정에서도 사업장에서도 일회용품, 개별포장 쓰레기가 넘쳐나고 의류든 가전이든 철마다 신상품을 출시하여 빨리 소비하고 빨리 폐기하는 소비중심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개인이 쓰레기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강한 남서풍, 예측되지 못했던 산불확산 예측 시스템
산불이 발생한 22일 오후, 점곡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학교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외투를 벗어서 철봉과 흔들의자 등에 걸쳐놓았는데 바람이 원체 많이 불어서 몇 번이나 운동장 흙바닥으로 떨어져 먼지를 털며 주웠던 기억이 난다.
“산불이 우리 집까지 번지면 어떻게 해요?”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에이, 그래도. 안평면은 우리 면에서 거리가 꽤 있지 싶은데. 이까지는 안 올 거야.”라고 했지만, 한 시간 후, 우리 면의 바로 옆인 단촌면으로 불이 옮겨붙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가장 불이 많이 번졌던 3월 25일은 초속 9m, 순간 돌풍은 21m이다.
돌풍을 무시해도 1시간이면 32,400m, 즉 32km를 이동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점곡면에서 영양 석보면까지 약 55km인데, 돌풍까지 동반한다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다.
그러나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그럴 수 있는데, 산불확산 예측 시스템은 정녕 몰랐던 것일까.
2025년 3월 25일 밤, 의성교육지원청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 (제공-장정희)
본래도 봄철에 건조하지만 해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고 있다.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는 올해 1월 지표 기온이 산업화 이전 1월 평균보다 1.75도 높은 13.23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작년 1월에 이어 2년 연속 가장 더운 1월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산불이 한참 번지던 23일~26일에는 전국적으로 역대 3월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과다 배출로 인해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22년에 발행한 6차 보고서에서는 인간활동에서 기인한 것임을 명확히 밝혔다.
이번 산불로 발생한 온실가스가 366만 톤으로 추정된다.
중형차 3400만 대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때 배출하는 양에 달한다고 한다.
산불로 배출된 온실가스는 산불을 부추기는 고온 건조한 날씨를 만들고, 산불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온실가스 과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그리고 악순환
그 피해는 고령의 농민에게로, 집계되지도 않는 동물에게로
불이 시작된 의성에서는 주민들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산불을 진화하던 전봇대와 충돌하며 추락하는 바람에 조종사 한 분이 사망했다.
25일부터 안동, 청송, 영덕, 영양으로 번진 산불은, 정말이지 너무 순식간이어서 차마 대피를 하지 못하고 시신으로 발견된 분들, 차를 타고 대피하는 중에도 연기에 휩싸여 사망한 채로 발견된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도드라진 것은 특히 고령자의 피해가 많았다는 것이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도 고령이고, 대피를 도운 마을 이장님 등도 고령이었기 때문이다.
경북 산불로 전소한 주택은 4천여 채에 달하는데,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 양쪽으로 모두 숯검댕이가 되었다.
골짜기에 위치한 한 마을은 전체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고 재난 시에 대개 대피소의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마저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일터도 잃어버렸다.
특히 점곡은 사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인데, 평지보다는 산지 쪽이 높은 일교차로 맛있는 사과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과밭이 많다.
복구하려고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도 있지만, 2023년 기준 농민의 52.6%가 65세 이상의 고령이다.
새로 반듯하게 마련된 땅에서 농사를 짓기에도 버거운 형편에 산불의 잔해들을 치우고 대출을 내서 다시 밭을 장만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농민의 숫자도 더 줄어들 것이다.
이번 산불로 전소한 마을회관. (제공-장정희)
그리고 그 뜨거운 불길에, 연기에 사라져버린 존재들이 있다.
첫 번째는 꿀벌이다.
이번 산불로 영남지역의 양봉농가 중 100여 곳 이상이 전소했다고 한다.
야생 꿀벌의 피해는 집계해 볼 수도 없다.
연둣빛 꽃이 만발한 자두밭에서도 벌의 웽웽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너무나 고요하다.
너무 걱정돼서 벌통을 가져다 놨다는 농민도 있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인공수분을 권장했다.
자두가 올까. 사과가 얼마나 올까. 꽃을 보고도 웃음이 나지 않는 이유이다.
꿀벌과 함께 수많은 곤충과 야생동물도 희생되었다.
현대 농업의 대부분이 유기농, 자연농과 구분되는 관행농으로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한다.
도리어 좋은 것이 아니냐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관행농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관행농지보다 훨씬 넓은 자연 그대로의 산지, 빈 터 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생물 다양성을 유지시키려고 애쓴 존재들의 피해가 앞으로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생명으로 집계되지 않는 존재는 또 있다.
농장 동물들과 마당 개들이다.
소, 돼지, 염소, 닭, 개는 가축으로서 사유재산에 들어간다.
삶의 터전이 불타는 중에도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열어주고 목줄을 풀어준 이들이 있었지만 많은 동물들이 갇힌 채로 질식하거나 화상을 입었다.
그 모든 생명들에게 위로와 애도를 전한다.
(※까맣게 타버린 산에 다시 초록이 돋아나려면② 기사로 이어집니다.
)
[필자 소개] 장정희
.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다가 아무 연고 없는 의성으로 이주했다.
귀농도 귀촌도 아닌 시골을 찾아 왔다.
녹색당 창당발기인으로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고자 한다.
“아이고, 의성 온 지 얼마나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