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페미니스트, 머리맡의 책] 양귀자 소설 『희망』
기본소득당 동물‧생태위원회 ‘어스링스’에서 주최한 『학교에 비거니즘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비건 교사들의 일곱 빛깔 비거니즘 교육 탐험기』(비건교사나는냥 지음, 고지연, 김수연, 박수빈, 송현민, 양정아, 이수리, 이해인 글, 휴머니스트, 2024) 북토크에 참여한 필자 모습. (박수빈 제공)
[필자 소개] 수빈. 초등 교사이자 페미니스트, 퀴어, 그리고 비건이다.
언젠가 이런 수식어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성평등하고 생태 감수성이 깃든 교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비건 교사들의 이야기를 모은 『학교에 비거니즘을』을 함께 썼다.
말을 건넨다는 것
나는 관계 맺음을 좋아한다.
조용히 감정을 묻어두는 편도 아니고, 마음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말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하고, 그 과정에서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는 일을 즐긴다.
이런 나의 성향과 어울리게도 내 직업은 초등 교사다.
동시에 페미니스트, 퀴어, 비건(vegan)이다.
나는 초등 교사로서 내가 페미니스트이고 퀴어이며 비건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곳에서는 교사라는 전형성을 가지지만, 학교 안에서는 유별난 사람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래도 말함으로써 시작되는 연결을 포기하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서슴없이 이야기를 공유하는 나를 두고 주변에서는 혹여 내가 상처받을까 염려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한껏 나의 정체성과 배움과 생각을 공유해왔다.
다행히도 내가 만난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가능했다.
아무래도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은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에너지가 닳고 있음을 느꼈다.
아뿔싸, 기대에만 부응하면 좋을 텐데 나는 주변의 염려에도 부응해버렸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상처받아도 털어내고, 나의 선택이 과하고 부담스럽다는 반응에도 더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내 진심이 상대방에게 가 닿지 않을 때 더 친밀한 사람이 되어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고민했다.
하지만 조금씩 생긴 상흔은 의외로 오래가고 덧나기 시작하더니, 이젠 내게 돌아올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 생각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특히 직장에서 나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한다고 느껴서 마음을 활짝 열었다가 쓰라렸던 적이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이 훨씬 많다.
(아직도 이렇게 덧붙여야 마음이 편한 내가 가끔 웃기지만 이해해주길.)
희망을 집어 들다
『희망』이 꽂혀있던 나의 ‘업보 존’. 양귀자 작가가 1990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박수빈 제공)
지칠 땐 무릇 독서가 답이다.
현실로부터 환기를 시켜주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정확한 언어로 읊어주는 데에는 책만 한 게 없다.
차치하고, 적어도 ‘책 읽는 나’에게는 취할 수 있지 않은가. 사 두고 읽지 않은 책을 모아 놓은 일명 ‘업보 존’에서 양귀자의 소설 『희망』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1980년대 민주화의 과도기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곤궁함, 사회적 소외 등을 면밀하게 다룬다.
시대의 흐름을 정통으로 맞은 인물들은 하루하루 삶과 상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거닐며 회복에 닿지 못해도 그저 또 버티고 살아낸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 고달프고 무거운 삶을 그저 이어가고 견디는 모습은 왜인지 위로가 되었다.
결국 우리네 모습이니까. (2025년인 지금도 여전히 민주화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는 건 참 기가 막힌다.
)
소설의 끝 무렵,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오래 머문 문장이 있다.
“나는 창을 열고,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조용히 기다린다.
분노에서 이제는 사랑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며 이 밤이 가고 있다.
밤. 나에게 너무나 많은 생의 비밀을 가르쳐주었던 밤.
잘 가라, 잘 가라, 밤이여.” -양귀자 소설 『희망』
이 구절을 읽으며, 내가 또 하나의 밤을 지나고 있음을 느꼈다.
무력감 속에서도, 닿지 않는 말에도 기대를 거두지 못해 계속 기웃거리던 나에게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소설이 말해주는 듯했다.
분노로 가득 찼던 마음이 사랑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밤이 반드시 새벽을 데려온다고.
결국 난 기대가 무너지면 느낄 아픔을 알지만 여전히 기대를 걸어본다.
단단하고 다정한
“여러분은 어떤 말이 들리는 교실을 꿈꾸시나요?” 2024년 서울교육대학교 대학축제에 ‘아웃박스’(초등성평등교사연구모임) 멤버로 참여하며 찍은 사진. (박수빈 제공)
관계라는 게 늘 순탄하거나 따뜻하진 않다.
말이 엇나가기도 하고, 의도가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머무는 시간, 끊어지지 않는 시선, 돌아보고 다시 다가가는 다정함이 결국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그런 연결을 믿는다.
혹자는, 관계에 힘을 빼면 되지 않냐며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정말 그러고 싶어 마음을 덜 주기도 하고 다른 관심사도 찾으며 나를 어르고 달래 봤다.
애석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관계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난 관계에서 힘을 얻는다.
교사라는 직업도 본질적으로 수많은 만남 위에 놓여 있다.
학생, 보호자, 동료 교사들과 매일 부딪히며 살아간다.
난 어쩌면 운명처럼 주어진 이 관계가 우리에게 절망보단 희망이길 바란다.
직장에서 나를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비건은, 퀴어는, 어쩌면 페미도 내가 처음이었으나 다음에 만날 누군가는 좀 더 환대할 수 있으리라 바란다.
또한 나와 함께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들은 다시 한번 발화할 힘을 얻기를 바란다.
『희망』 속 인물들처럼 나는 자주 지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선다.
내 안에 심은 희망은 거창하거나 반짝이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다정하길 바란다.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관계를 기대하고, 내가 지닌 신념과 삶의 방향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드러내려 한다.
나에게 희망은,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이자 누군가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말이 닿지 않더라도 말을 멈추지 않는 마음이다.
밤의 심연을 지나며 배운 정적과 고요 속에서,
나는 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잘 가라, 밤이여.
다시 안녕. 희망이여.
“잘 가라, 밤이여”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