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이중돌봄 프로젝트② 일본의 230카페, 소부다이 단지 탐방
‘한일 이중돌봄(double care) 공동 프로젝트’ 한국팀 참가자들은 지난 2월 6일과 7일 일본을 방문해,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 지자체와 공사 등이 함께 만들어낸 ‘공생돌봄’ 사례를 탐방했다.
가나가와현 사기미하라시 미나미구에 있는 ‘소부다이 단지’ 내 다세대 교류거점 공간에서 참여자들이 설명을 듣는 모습. 이곳에는 무료 카페, 모두의 보건실, 필라테스 등을 할 수 있는 데이서비스 공간, 아동 공간, 워크샵 공간, 온욕 시설 등이 마련돼있다.
(필자 제공)
‘한일 이중돌봄 공동 프로젝트’는 2014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2차 프로젝트가 2024년에 이어져 2025년 현재 진행 중이다.
일본 요코하마국립대학 소마 나오코 교수와 한국 인천대학교 송다영 교수가 주축이 되어, 연구자뿐 아니라 이중돌봄 당사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팀은 올해 3월 20일 이중돌봄지원네트워크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이중돌봄 이슈를 공론화하고 있다.
지난 2월 6일과 7일, 한국팀이 일본 요코하마시를 방문해 서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당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돌봄 공공성, 한국은 정부와 국가 책임 담론 강한 반면
일본은 시민사회에서 정책 부족 메워나가, 서로의 경험 배울 필요
한일 이중돌봄 공동 프로젝트는 첫 프로젝트(2014년)부터 1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이중돌봄 문제에 대한 정책 대응은 느리지만, 양국 활동가들의 연대는 더 깊어지고 있다.
이번에 한국팀은 요코하마시를 방문하면서 일본이 시민사회와 같은 대안적 공공영역을 통해 어떻게 돌봄 문제에 대응하는지 주요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고령화와 저출생 그리고 비혼, 1인가구 증가 등의 변화를 함께 경험한다는 점에서 이중돌봄 해결에도 협력할 부분이 많다.
특히 정책에서 국가 책임 담론이 비교적 더 강한 한국과, 국가 정책이 부족한 곳을 시민사회가 활발히 움직여 메워나가고 있는 일본의 경험에서 서로가 배울 지점이 있다.
우리가 돌봄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이 미비하면 돌봄은 시장에서 상품화되거나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돌봄 공공성은 정부와 국가 책임 강화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는데, 이제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돌봄 공공성을 확장하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제도가 수직적으로만 작동하고, 수평적으로 칸막이를 넘어 포괄적, 통합적으로 돌봄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면, 돌봄 현실과 정책의 미스매치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요코하마시에서 25년 간 반(反)빈곤운동 NPO활동을 해온 생활협동조합 가나가와 소속의 이토 야스코 씨는 이러한 상황을 “각 가족이 갖는 돌봄의 어려움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역할이 부재한 것”으로 설명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아동돌봄,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등 대상 별로 정책 칸막이가 존재하면서,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이중돌봄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 이를 해결하는 대안이 지역포괄지원센터이다.
그러나 센터를 통해 노인과 장애 돌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아동 돌봄 정보는 배제되는 한계가 있다.
2026년 시행을 앞둔 한국의 지역통합돌봄도 의료와 요양만 통합해, 아동돌봄을 배제하는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토 야스코 씨는 현장에서 발견한 해결책은 도우미들이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한다.
도우미들은 규정대로 1인분 식사를 준비하면서 양을 많이 만드는 ‘실수’를 해서 서로(이를 테면 노인과 아동의 식사를 같이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토 씨는 “제도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지역이 계속 만들어가야 하고”,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하려면 “지역에서 서로 돕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시민 주체와 시민사회가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돌봄 정책의 사각지대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부분이다.
제도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돌봄의 상품화나 시장화를 막고 공공 영역을 더 확장해갈 새로운 가능성으로 볼 수도 있다.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의 다문화, 다세대 공동 거점 ‘230카페’에 방문했다.
이 건물의 1층은 어린이집, 2층이 230cafe, 3층은 NPO ABC Japan이 있다.
230cafe를 운영하는 NPO법인 ‘3rd Place’의 스다 요헤이 대표로부터 설명을 듣는 모습. (필자 제공)
오슈시의 ‘이중돌봄 카페’, 아동돌봄과 노인돌봄의 협력 모델
시민사회 활동 중에는 이중돌봄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중돌봄 카페도 있다.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이중돌봄 당사자 모임을 이끄는 야하타 하츠에 씨는 회의실, 육아지원센터, 카페 등 여러 곳에서 이중돌봄 당사자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중돌봄 카페라고 하면 표현이 좀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당사자들이 만나 고충을 나누는 자조모임이다.
이중돌봄을 하고 있는 당사자라면 누구나 둘 이상이 만나서 시작할 수 있는 모임이다.
하츠에 씨의 이중돌봄 카페는 2020년 3월 이와테현 의회에 이중돌봄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했고, ‘이중돌봄 가이드북’을 작성해 매년 현이 주최하는 이중돌봄 연수를 개최한다.
이중돌봄은 아동 돌봄과 노인 돌봄의 칸막이를 넘어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의제이다.
노인과 아동이 함께 만나는 기회도 만들고, 아동 돌봄과 노인 돌봄의 전문 인력이 함께하는 합동 연수도 할 수 있다.
하츠에 씨는 “이중돌봄은 자석과 같아서, 돌봄과 관련한 여러 영역과 지원자들을 연결시키는 구심점이 된다.
”고 설명한다.
일본은 개호보험 도입으로 국가 책임 돌봄이 이루어지지만, 지방분권으로 지역 간 돌봄 격차가 크고, 이런 제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NPO(비영리법인)의 지역 참여가 이루어진다.
NPO의 접근은 정부의 정책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생적으로 시작되었고, 지역에 밀착해 지역의 돌봄 요구를 담아내고, 시민사회의 여러 주체가 협력해 ‘아래에서 위로’의 세력화를 통해 대응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일본은 1995년까지 NPO법 없이 사회복지법인만 존재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복구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이후에 민간법인이 활동할 수 있도록 1997년 특정비영리활동 촉진법(NPO법)이 만들어졌다.
(한국도 2000년에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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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비중 높은 지역특성 반영한 다문화, 다세대 공동 거점 ‘230카페’
NPO, 주민들, 행정기관이 함께 만들어낸 ‘공생돌봄’ 모델
NPO가 적극적으로 이중돌봄에 대응하는 사례로 ‘서드 플레이스’(3rd Place) NPO가 운영하는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의 다문화, 다세대 공동 거점 230카페가 있다.
230카페는 NPO법인, 지역주민들, 관계기관, 행정기관이 함께 만들어낸 공생돌봄 모델이다.
건물 1층은 영유아 어린이집, 2층은 거점 공간인 230카페, 3층은 외국인 지원 NPO법인이 입주해 있다.
2층 230카페는 사무실, 작은 방, 부엌으로 이루어져 마을 사람이 언제든 방문해 교류하고 음식을 나누는 공간이다.
가나가와현 사기미하라시 미나미구에 있는 소부다이 단지는 대표적인 재생마을 중 하나다.
노후된 단지를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로 만들어간 주체 중에는 지자체 공사(우리나라 시설관리공단과 유사)의 역할도 컸다.
‘포괄 돌봄’, 지역 복지 시스템을 갖춘 마을재생사업에 관해, 공사 직원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소부다이 단지 곳곳을 탐방했다.
(필자 제공)
이주민 비중이 높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 외국인 아동을 위한 마을밥상도 운영한다.
카페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다양한 세대와 문화가 만나는 돌봄 거점이 만들어졌다.
카페를 운영하는 NPO 3rd Place의 대표인 스다 요헤이 씨는 한 건물에 모여있는 여러 단체들의 관계를 “상하관계나 동등관계가 아닌, 사선의 관계’로 표현하면서 함께 협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후 단지 마을재생으로 노인-아동-청년-이주민이 함께하는 거점
지자체와 주택공사, 대학교, 어린이식당, 상가, 자치회 등이 협력
이중돌봄은 노인과 아동이 함께하는 공생돌봄에 대한 고민으로도 이어졌다.
일본의 지자체 공사(우리나라 시설관리공단과 유사)가 오래 전 조성되어 노후된 단지를 재생해 노인과 아동이 함께하는 공생돌봄 모델을 만든 사례가 있다.
요코하마시에서 조금 떨어진 가나가와현 사기미하라시 미나미구에 위치한, ‘가나가와현 주택공급공사’가 관리하는 소부다이 단지이다.
단지는 55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건물은 노후되어 갔고, 저출생 고령화 현상의 심화로 주민의 50%는 고령인구가 차지하며, 젊은 인구는 감소하고, 상가 공실률은 증가해 노인이 고립되고 소외되는 커뮤니티 쇠퇴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지자체는 어떻게 하면 누구든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들어갈까 고민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공사는 고유 자산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자치회, 지역 재단, 지역 대학교, 어린이식당, 상가 등 지역사회 내 다양한 자원과 주체들을 협력 관계로 연결시켜 단지의 재생을 도모했다.
이번 방문에서 소부다이 단지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해준 공사 직원 분은 이러한 재생사업의 핵심을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작업’으로 표현했다.
먼저, 단지 내에 돌봄, 간호, 의료를 위한 방문진료소, 방문간호시설 등 지역의 ‘포괄돌봄’의 일체 서비스를 책임지는 노인돌봄과 아동돌봄을 위한 복합시설을 갖추어, 소부다이 지역 복지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다음으로, 영리부문인 상가도 ‘그린 라운지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 관계로 포섭했다.
그린 라운지 프로젝트란, 상가의 점포 앞마당을 잔디로 녹지화해 부모가 아이를 동반해 오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지역주민과 협력해 지역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자들을 파트너로 삼아 임대료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이다.
상가에는 사업자도 입점했지만, 방과후 돌봄, 방과후 데이서비스, 치매 대응형 데이서비스 등의 시설도 입점해 돌봄 공간을 만들었다.
상가 어린이식당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인근 농가가 기부한 식재료를 사용해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에게 밥상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건강마을 만들기를 위해 다세대 교류거점 공간을 만들어 무료 카페공간, 방문간호사가 있는 ‘모두의 보건실’, 필라테스 등 운동을 할 수 있는 생활지원형 데이서비스 공간, 키즈 스페이스, 워크샵 공간, 온욕 시설을 마련했다.
소부다이 단지 내 ‘그린 라운지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점포 앞 마당의 모습. 상가의 점포 앞마당을 녹지화하여 아이를 동반하여 찾고 싶은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상가에는 어린이식당, 치매대응형 데이서비스, 방과후 돌봄서비스 등 돌봄 공간을 갖추었으며, 지역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자들에게 임대료 감면 혜택을 주었다.
(필자 제공)
결과적으로 이 공간은 아동에서 노인까지 많은 이용자가 붐비는 ‘공유 공간’이 되었다.
또한 공사는 지역 대학과도 연계해 사회복지사 교외 실습 장소로 단지를 활용하도록 했고, 지역공헌에 참여하는 대학생은 고령화로 공실율이 높은 주택 위층(4,5층)에 입주를 허용해 서포터로 협력 관계를 맺었다.
대학생들은 월 1회 단지 내에서 어떤 지원 활동을 했는지 보고하고, 안전과 돌봄을 위해 지역 순찰을 돌기도 한다.
과거에 이 오래된 단지는 고립되고 소외된 노인들의 공간이었는데, 이제 대학생과 아동을 돌보는 가구가 주택에 유입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청년과 노인세대가 함께 하는 공생돌봄의 생활공간으로 변화했다.
일본 이중돌봄 프로젝트 팀을 통해 한국팀은 일본 시민사회의 활동과 소부다이 단지와 같은 공생돌봄을 위한 마을재생 사업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현재 일본팀은 요코하마시를 대상으로 이중돌봄 상황을 알리고, 칸막이로 구분된 정부 제도를 시정하고, 아동 돌봄과 노인 돌봄에 포괄적으로 대응하도록 법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중돌봄 당사자와 시민사회가 ‘아래로부터 위로’ 돌봄 공공성 확보해야
한일 공동 1차 프로젝트 이후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 일본의 경우도 법제도 변화는 크지 않지만, 이중돌봄 당사자 자조모임의 조직화,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기업의 책임과 변화 촉구, 이중돌봄 요구를 담은 법제화 요구 등 시민사회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도 어느덧 더 중요한 현실이 된 이중돌봄 지원 요구를 시민의 문제로 더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었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연대의 폭은 더 커졌다.
일본 방문 중, 이중돌봄 프로젝트 팀은 줌으로 우에노 치즈코 씨를 만났다.
돌봄에서 당사자 주권을 강조하는 논의로 잘 알려져 있는 치즈코 씨는 이중돌봄 의제화에서 시민사회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민사회가 ‘돌봄 요구가 발견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돌봄 요구와 정책의 미스매치는 늘 존재해왔고, 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여서 돌봄에 관한 시민의 요구와 권리를 만들어내고, 정부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대응해 돌봄의 제도화가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이중돌봄’이라는 개념과 ‘영케어러’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이며, 정부의 제도화가 먼저 이루어질 때 오히려 정책 미스매치가 생겨난다고 치즈코 씨는 지적했다.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 한일 이중돌봄 공동 프로젝트야말로 한국과 일본에서 이중돌봄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돌봄 요구를 공론화하고, 정부의 제도화를 요구하는 시민중심의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 소개] 백경흔
. 여성학 연구자이자 강사. 여성노동, 돌봄노동과 정책, 젠더와 개발 등의 주제와 관련해 가르치고,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교육과 돌봄’, ‘의료와 돌봄’ 등 돌봄이 기존의 전문화된 영역에 비해 위계적으로 저평가되는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고령화, 다문화 시대 ‘공생돌봄’의 미래를 엿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