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 결과를 발표하다
나의 사무실 책상. 무지개깃발과 ‘퀴어’, ‘비건’, ‘동물권’을 지지하는 스티커가 붙은 노트북. (촬영: 타리)
“그곳은 공기가 그에게 자리를 내주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장소였다.
그가 도착하면 마치 학교 교실 안에서 앉을 자리를 내줄 친구처럼 공기가 옆으로 슬그머니 물러나는 듯 했다.
” – 아룬다티 로이, 『지복의 성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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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가 2020년에 발표한 소설 『지복의 성자』의 주인공 안줌은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한꺼번에 지니고 태어난 아이다.
안줌은 아들로 키우려는 부모를 피해 ‘히즈라’(통념적인 여성이나 남성에 속하지 않은 제3의성)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콰브가에 들어가 생활한다.
안줌은 콰브가를 스스로에게 자리를 내주는 하나뿐인 장소로 느낀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동네 거리일 수도, 취향에 맞는 가게일 수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일터일 수도 있다.
또는 누군가에게는 혼자 사는 집일 수도, 방 안 침대일 수도, 책상 앞일 수도 있다.
때로는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이 위협적이고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고, 충분히 넓었던 공간이 갑자기 숨 막힐 정도로 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안전함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파트너랑 손잡고 가다가도 동네 어귀에 들어오면 손 놓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였을 때, 내상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A의 이야기)
“제가 되게 우울했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남들 앞에서 걸어 다니는 거나 이런 것도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었는데 여성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런 게 불편해서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더 힘들어했나보다 싶어요” (B의 이야기)
“너무 작은 회사고 퀴어 감수성이나 젠더 감수성 같은 부분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 그거를 마음을 다잡고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니까’라고 생각을 해도, 가끔 사담을 나누거나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 이야기하거나 그럴 때 너무 그런 혐오들이 만연해 있고, 그래서 저도 소모되는 것들이 있어요. 감정적으로.” (C의 이야기)
2025년 4월, 퀴어노동법률지원센터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가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는 1)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2)19세 이상 65세 미만 노동자인 3)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2024년 3월부터 2025년 3월까지 함께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총 720명의 성소수자 노동자가 응답했으며, 면접조사에는 19명의 성소수자 노동자가 참여했다.
위에 인용한 인터뷰 내용은 연구 보고서의 일부이다.
A는 레즈비언이고,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다.
집 안에서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다가도 집 밖으로 나서서 동네를 돌아다닐 때는 서로 손조차 잡지 않는다.
B는 트랜스 남성이다.
스스로를 ‘여성’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걸을 때조차 편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C는 게이이고, 직장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해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결국 감정적으로 소모되고 지친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누군가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좁게 만들고, 움츠러들게 하고, 결국엔 병들게 한다.
성소수자에게 안전 신호와 위협 신호는?
미국의 심리학자 리사 M. 다이아몬드(Lisa. M. Diamond)는 ‘사회적 안전’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유대, 소속감, 포용, 사회적인 보호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필수적인 욕구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맞닥뜨린(릴 수 있는) 위협에 대비하고자 하며, 그 대비의 방법으로 스스로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한 공간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경계한다.
특히, 사회적 낙인이 있는 소수자 집단은 타인이 자신을 위협할 것을 예상하여 높은 수준으로 경계하고, 타인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경계를 쉽게 풀지 못한다.
경계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다 보면 쉽게 지치고,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경계’는 고정적이지 않다.
즉 위협이 적어지고 안전하다는 감각이 높아지면 경계도 자연스럽게 느슨해진다.
리사 M. 다이아몬드는 이를 ‘안전 신호’와 ‘위협 신호’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들에게 위협 신호는 어떤 것일까,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에서 소개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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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위협
에 대한 ‘객관적 경험’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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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인 법률 또는 정책을 목격하거나 겪음
- 폭력 또는 괴롭힘을 목격하거나 겪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한노보연 젠더센터)와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퀴어동네)는 2025년 3월 28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 발표회를 열었다.
연구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는 타리. (촬영: 진돌)
- 가족으로부터 공개적으로 거부당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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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경멸적인 농담을 하는 것을 들음
- 신분증에 잘못된 성별이 기재되어 법적 불이익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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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위협
에 대한 ‘주관적 경험’의 예
- 공공장소에서의 배제 또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
- 가족과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
- 자신의 정체성이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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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로부터 괴롭힘 당할까 봐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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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이 잘못 기재된 신분증으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걱정
반대로, 성소수자들에게 안전 신호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 객관적 경험과 주관적 경험의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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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안전
에 대한 ‘객관적 경험’의 예
- 성소수자에 대한 범죄를 처벌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
- 친구/동료/매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는 것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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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성소수자 자긍심 깃발을 봄
- 사람들이 인간관계, 삶, 관심사에 대해 배려 깊은 태도로 관심을 갖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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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커밍아웃할 때 긍정적인 지지 받기
- 사람들이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하는 것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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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안전
에 대한 ‘주관적 경험’의 예
-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나를 보호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앎
-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지원과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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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차별대우를 받거나 자신의 신분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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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의 사람들이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앎
-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앎
직장에서 안전한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동하는 거리에서,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직장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쉽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만 있고, 자가용만 이용하고, 일을 안 할 순 없다.
결국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안전하지 않더라도 집 밖을 나가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리를 거닐고, 직장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지속적이고 높은 경계 수준을 유지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쌓이고, 쉽게 ‘소모’되며, ‘우울’을 경험한다.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에서도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일반 인구집단(4.9%)보다 우울 증상(24.6%)을 더 많이 겪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너무나도 외딴 섬. 너무 외딴 섬인 거예요.” (D의 이야기)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 보고서 발표를 마치고 토론회 때 대답하는 타리와 문영. (촬영: 진돌)
“저한테 커뮤니티는 약간 숨 쉴 수 있는 그런 창구인 거는 확실한 것 같고요.” (E의 이야기)
“제가 커밍아웃을 한 분들이 평소에도 약간 (퀴어) 프렌들리한, 그런 느낌을 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약간 제가 나름대로는 고르고 골라서, 이제 커밍아웃을 할 타이밍을 계속 노렸던 것 같아요. 제가 너무 답답하니까. 그래도 약간 커밍아웃을 안 했을 때에 비해서는, 조금 회사에서 존재하는 게 덜 껄끄럽다는 생각은 들어요.” (F의 이야기)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지만, 그 안에서 가만히 머물고 있지만은 않다.
직장 내에서 ‘외딴 섬’처럼 느껴질 때에도, 직장 밖에서는 지지가 되는 애인, 친구,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찾기도 하고, 보다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는 직장 안에서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앨라이(Ally: 성소수자의 연대자)를 만들어 문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스스로 머물 수 있는 공간,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넓혀 나가고 숨 쉴 틈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커밍아웃이라는 건 내가 밝힐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숨기고 있다가 ‘커밍아웃 할래’ 이거잖아요. 근데 트랜스젠더는 커밍아웃이라는 말이랑 딱 안 맞아요. 상황이 여러 가지로 드러나게 되니까. 외형적인 변화가 있고…” (G의 이야기)
“실제로 몇 번 (정체성을) 밝히기도 했었는데 그걸로 인해서 막 제가 잘리거나 그런 경험은 없긴 했거든요. 근데 그냥 ‘내 말을 안 믿는다.
’ 약간 이런 느낌이 좀 강했던 것 같아요. (중략) (커밍아웃 후에) 제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예쁘게 생겨가지고, 머리 길고 그러면 더 예쁠 텐데, 그런 말들. 나는 내가 잘생겼으면 좋겠지, 예쁘고 싶진 않은데.” (H의 이야기)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와 같은 비시스젠더 노동자에게 커밍아웃의 의미는 시스젠더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같지 않다.
본인의 정체성이 외형적으로 드러나 ‘커밍아웃’의 의미가 없거나, 다른 성별로 패싱되면서 커밍아웃을 믿어주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시스젠더 성소수자 노동자들 역시 직장 내에서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서, 온갖 차별과 혐오가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배우자의 건강이나 안부를 묻는 가벼운 사담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를 배제하기도 하고, 커밍아웃 했던 동료가 퇴사하고 새로운 사람이 입사하면 또다시 어렵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직장 안에서 안전한 ‘내 자리’를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즉, 경계를 느슨하게 낮추어도 괜찮은 공간을 만드는 일은 누군가에게 맞추어 공기가 자연스레 옆으로 물러나듯 주변 사람들이 함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야기를 배려 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을 거치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의 변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안전에 대한 신호를 주어야 하며, 서로를 위한 공간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계를 낮추고 우리 모두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
서로에게 안전 신호를 주는 일터
안전에 대한 신호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 제도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성소수자 정체성을 긍정해주고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함께 분노해주며, ‘혼자가 아니야’라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혐오 발언이 나왔을 때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 줄 수 있는 앨라이가 있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던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대신 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성소수자 노동자는 숨 쉴 수 있고, 그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다.
“주변에서 사실상 퀴어를 좀 흔하게 보기 시작하면은 ‘나랑 똑같은 사람이네.’라는 인식만 가져도 그렇게까지 퀴어로 살기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퀴어가 뭔가, 퀴어라는 말을 더 이상 안 쓸 수 있는 수준의 사회. (중략) 그 사람이 남자를 사귀건, 여자를 사귀건, 트랜스젠더랑 사귀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그냥 존중받으면.” (F의 이야기)
나는 지난주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해 왔던 공간과는 규모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을 신경 쓰고, 경계하게 된다.
긴장된다.
운이 좋게도 나에겐 정체성을 지지해주는 가족도, 애인도, 친구도 있다.
누군가 혐오 표현을 한다면 함께 욕해줄 사람들이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두렵다.
나의 정체성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고,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지만, 자꾸 움츠러든다.
F의 말을 되새긴다.
월요일에는 ‘퀴어’, ‘비건’, ‘동물권’을 지지하는 스티커가 잔뜩 붙은 노트북을 들고 와 일을 했다.
스티커를 누군가 보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스티커를 누군가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목요일에는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의미의 목걸이를 하고 출근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금요일에는 무지개 플래그를 연필꽂이에 두었다.
조금씩 조금씩 남의 자리 같았던 공간이 내 자리처럼 느껴진다.
할 수 있을 만큼이라도 나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고 싶다.
그렇게 얻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싶다.
퀴어는 지금도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 소개] 타리
: 강아지와 함께 매일매일 산책하며 안전한 공간을 넓히는 걸 좋아해요. 숨 쉴 틈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아 하루를 살아요.
퀴어 노동자가 직장에서 체감하는 ‘안전’과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