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이후, 안동에서 쓰는 이야기
우리 집도 산불 피해를 입었다.
산불로 전소한 부모님의 농막. 부모님이 노후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김아름 제공)
나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38년째 살고 있는 ‘찐’ 안동 토박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안동은 큰 재난 없이 평온한 곳이었다.
이름처럼 ‘동쪽의 편안한 곳(安東)’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비나 눈이 내려도 큰 피해 없이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이번 산불을 통해 재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다시금 느꼈다.
이번 산불로 고양이 집사이자 소농의 가족으로 이번 산불을 겪으며 느낀 점을 나누고자 한다.
고양이 집사인 소농의 가족,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지난 3월 22일 오전, 의성군 안평면 한 산에서 성묘객의 방화로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강풍을 타고 안동시 길안면을 지나서 3월 25일 안동시 남부 지역(풍천면, 남후면, 일직면, 남선면, 임하면, 수상동, 수하동)으로 번졌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눈앞까지 번진 불길을 피해 강 건너 시내 체육관, 친척집 등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그날 밤, 나의 부모님이 노후를 위해 마련해 두신 밭과 농막도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 무력감만이 남았다.
2025년 3월 25일은 아마 안동시민에게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안동 도심까지 번진 연기와 재, 타는 냄새로 시내 전체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낮 시간까지만 해도 산불이 안동 시내 가까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후 5시경, 휴대폰을 울린 재난 문자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패닉으로 만들었다.
“관내 전역으로 산불 확산 중. 전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여 주시고, 먼저 대피하신 분들은 대피하신 곳에서 안전하게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안동시]”
재난 문자를 보자마자 어디로 대피하라는 것인지, 어디가 안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었다.
안동시청에서는 뒤늦게 3월 26일에 SNS를 통해 대피소 현황을 공지했다.
2025년 3월 25일, 안동 시내를 뒤덮은 산불 연기 (김아름 제공)
지자체에서는 재난 대응에 최선을 다했겠지만,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신속한 대피 안내였다.
평소 비상상황에 자신이 가야 할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철저한 재난 대비와 그에 따른 매뉴얼,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혼란은 줄었을 것이다.
대피소에 못 가는 반려동물 가족들
이번 산불 재난은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에게도 큰 피해를 주었다.
많은 동물들이 산불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하거나 화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은 동물들도 있지만, 주인들이 집을 잃고 대피하면서 남겨진 동물도 많았다.
특히 집에서 함께 지내던 개와 고양이들은 대피소에 갈 수 없어 남겨진 경우가 많다.
재해구호법 제3조는 구호 대상을 사람에게만 한정하고 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비상대처 요령에도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공지하고 있다.
또한, 개·고양이에 대한 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동물을 데리고 가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괴물 같은 산불을 피해 대피소로 가야 했지만, 가족 같은 동물을 두고 간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집사이기도 하다.
긴급 재난 문자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 고양이들은 어떻게 하지?”였다.
고양이들은 대피소에 데리고 갈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고양이의 사료와 간식, 이동장이었다.
함께 사는 여동생이 미리 꺼내놓은 것이었다.
다행히 멀리 피난 갈 일은 없었지만, 만약 우리 집이 피해를 입어서 고양이들과 오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많은 동물보호단체에서 안동을 비롯한 산불 피해 지역의 동물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벌였다.
나와 함께 활동하는 녹색당원 몇몇 분은 산불 피해 현장에 남겨진 개들에게 사료와 물을 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구조된 동물 중 상당수는 주인이 대피소나 임시주택으로 이동하며 남겨진 경우였다.
돌아갈 집이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서울에서 불났으면 이렇게 뉴스 냈겠느냐?”
현실과 맞지 않은 뉴스, 실시간 대응 한계
화재 현장에 남겨진 개에게 밥과 물을 주고 있는 녹색당원의 모습. (이철승 제공)
이번 산불 재난을 겪으며 실시간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사용이 어려운 환경이거나 어르신들은 텔레비전 뉴스에 의존한다.
그러나 중앙 방송사들은 기존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송하며 지방 재난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줬다.
3월 25일 안동 시내에 연기가 가득해 많은 시민이 피난했지만, 관련 뉴스는 다음 날인 26일에도 주요 뉴스로 나왔다.
이미 상황이 진정된 뒤여서 뉴스는 현실과 맞지 않았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아 실시간 정보로는 부족했다.
“서울에서 불났으면 이렇게 뉴스 냈겠느냐”라는 지인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많은 시민이 지역 맘카페나 오픈채팅방에서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았다.
안동시도 SNS를 통해 정보를 제공했지만, 시간대가 제한적이고 늦은 밤에는 업데이트되지 않아 실시간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정말 안심해도 되는지 아니면 계속 대피 준비를 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부족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방송이 점점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쏠리고 있음을 체감했다.
중앙 방송사의 실시간 보도가 어렵다면, 지역 방송이 재난 상황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원책이라고 해 봐야, 모든 것을 빚내서 시작할 판
우리 집도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
부모님의 밭과 농막이 있는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는 마을 입구부터 잿더미가 되었고, 밭을 갈기 위해 마련한 관리기, 모종과 묘목, 농기구 보관용 농막, 소형 포클레인까지 모두 불에 탔다.
생업의 터전을 잃은 분들에 비하면 작은 피해일 수 있지만, 부모님은 노후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모습에 망연자실하셨다.
산불 진화 후, 이장님으로부터 면사무소에서 피해 신청을 받는다는 문자를 받았다.
3월 30일, 부모님은 서류 작성이 걱정되어 나와 함께 면사무소를 찾았고, 일요일임에도 2층은 사람들로 붐볐다.
피해 상황을 적는 칸이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작성하다 보니 빠뜨린 부분도 있었다.
신고서를 작성하는 책상 위에 붙어 있던 ‘농기계 시설설비 피해조사 요령’이 눈에 들어왔다.
지원 비율은 보조 35%(국비 24.5%, 지방비 10.5%), 융자 55%, 자부담 10%로 표시돼 있었다.
자연재해 피해에 대해 전액 보상이 어렵다는 건 이해하지만, 보조금은 적고 융자는 결국 빚인데 이것이 과연 ‘지원’인지 의문이 들었다.
산불 피해를 입은 이들 중에는 농민들이 많다.
특히 길안면과 임하면 등 과수농가가 큰 타격을 입었다.
과수나무는 불에 타면 대부분 뽑아야 하고, 다시 심어도 열매를 맺으려면 3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수입이 없는 셈이다.
다른 작물 농사도 수확과 소득이 보장되지 않기에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있다.
불에 타버린 포클레인. 소형 포클레인 값이 4천만 원인데, 보상금은 고작 3백만 원이 책정되어 있었다.
(김아름 제공)
며칠 뒤 피해조사원이 다녀갔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다녀가 면사무소에 항의가 있었다.
피해 규모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지만, 전소된 아빠의 소형 포클레인이 4,000만 원인데 책정된 보상금은 고작 300만 원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집이 전소되어도 최대 보상액이 3,600만 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는 안동에서 전세도 얻기 어렵다.
이처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보상 기준은 피해자들을 더 큰 절망에 빠뜨린다.
실제 물가를 반영한 보상과 함께, 재난 신고를 한 피해자에게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일상 복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님은 소규모 농사를 지었지만 농협 조합원이라 산불 피해 대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농협을 찾았다.
그러나 조건은 1년간 무이자 후 일시 상환, 이후 미상환 시 연 8%의 이자가 붙는 구조였다.
엄마가 “그때 갚을 수 없으면 어떻게 해요?”라고 묻자, 농협 직원은 “그럼 빌리지 마시던가요.”라고 무심하게 답했다.
우리 가족은 다른 수입이 있어 갚을 수 있지만, 생계를 농사에 의존하는 가정은 대출받을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농기계(어떤 농기계는 자동차보다 비싸다), 농기구, 모종, 비료 등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산불 피해 농민들은 이 모든 것을 빚을 내서 시작해야 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수확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농산물 가격 역시 변동성이 크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 농촌 맞춤형 재해 보상 대책이 마련이 필요하다.
초대형 산불은 끝났지만, 기후변화로 점점 뜨거워지는 봄을 맞을 때면 이번 산불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삶의 터전이 또다시 불타는 일이 없도록 재난 대응을 철저히 준비하고, 이번 산불에서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고통받는 이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김아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30여 년 이상을 거주 중. 고양이 2마리 집사이자 이주여성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모든 생명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다.
잿더미 위에 빚더미 농민들,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