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올파의 딸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영화 〈올파의 딸들〉에서 히잡을 쓴 두 배우가 실제 라흐마와 고프란의 사진을 들고 있다.
(제공: 필름다빈)     *이 리뷰는 〈올파의 딸들〉에 대한 유운성 평론가의 라이브러리톡을 들은 이후 작성되었다.
배급사 필름 다빈에서 제공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언론 인터뷰를 참고했다.
  비가 으슬으슬 오는 토요일,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다큐멘터리 〈올파의 딸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의 시작은 심리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켰다.
푸르스름한 색감에 좁은 틈 사이로 어두운 옷을 입은 세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불안한 음정의 현악기 음악이 깔렸다.
그리고 들리는 내레이션의 목소리. “올파의 딸들의 이야기를 이 영화에 담으려고 한다.
올파는 딸이 넷이 있다.
밑의 둘, 에야와 타이시르는 현재 그녀와 같이 산다.
위의 둘 라흐마와 고프란은 늑대의 먹이가 됐다.
” 이 가족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IS가 된 10대의 소녀들   〈올파의 딸들〉은 배경이 되는 사건을 알고 보면 좋은 영화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화가 제작된 튀니지에서 올파는 꽤 유명한 인물이다.
2016년 올파의 첫째 딸 고프란과 둘째 달 라흐마는 가출을 해서 자발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 IS에 가담했다.
그들의 나이는 고작 15살, 16살이었다.
이후, 고프란과 라흐마는 리비아에서 일어난 IS의 테러 이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서 현재 리비아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IS에 가담한 여성들을 보는 시각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이 여성들을 종교적 집단주의에 의해서 세뇌된 불쌍한 피해자로 보는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을 성적으로 착취당할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IS에 입단한 어리석은 악녀로 보는 시선이다.
  올파는 딸들이 떠난 이후 언론을 통해서 평범했던 두 딸이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갔고, 지금이라도 딸들을 구해내고 싶다고 호소해 왔다.
IS의 테러가 유럽과 아랍 지역에서 골칫거리가 되면서 올파와 딸들의 이야기는 여러 차례 언론에서 회자해 왔다.
이미 닳고 닳은 이야기가 될 정도로.   다큐멘터리 영화 〈올파의 딸들〉(Four Daughters,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각본-감독, 프랑스-튀니지) 중에서 타이시르, 올파, 그리고 에야. (제공: 필름다빈)     진실을 담기 위한 가짜 촬영장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미녀와 개자식들〉(2017), 〈피부를 판 사나이〉(2020) 등을 통해서 이미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튀니지의 여성 감독이다.
감독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올파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올파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올파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어머니’의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가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모순, 솔직함, 후회와 같은 깊은 내면의 감정과 기억들을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올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들은 사회가 그 사건을 프레임화하는 방식에 따라서 피해자다움을 연기하게 된다.
그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쉽게 피해자로부터 등을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파고들었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프레임을 넘어서기 위한 형식 실험에서 출발한다.
  감독은 올파를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실현되지 않을 가짜 픽션의 준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설명이지만, 영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이 설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출연할 배우들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실제 자신을 연기할 올파와 셋째 딸 에야, 넷째 딸 타이시르. 그리고 올파가 재연하기 어려운 장면에서 올파를 대신해서 연기할 중년의 여성 배우.(이 역할을 맡은 핸드 사브리는 튀지니의 국민 배우이기도 하다.
) 그리고 첫째 딸 고프란 역의 배우와 둘째 딸 라흐마 역의 배우. 이렇게 〈올파의 딸들〉은 실재 인물들과 배우가 함께 등장해서 과거를 재연하는 픽션-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올파와 에야, 타이시르가 배우들을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기실에 있는 올파와 딸들은 영화 촬영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배우들이 등장하자 진짜 언니들과 닮았다며 신기해하다가, 올파는 갑자기 울음이 터뜨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이들은 이 첫 만남에서부터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재연의 과정이 절대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한다.
이 쉽지 않은 재연의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저주   〈올파의 딸들〉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은 ‘엄마-딸’이라는 애증의 관계 안에서 고통받아본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 있다.
종교가 달라도, 사는 곳과 언어가 달라도, 이들 사이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감정에 어렵지 않게 접속하게 된다.
모녀 관계의 보편성이 바로 이 영화가 갖는 공감의 줄기이자, 이 영화가 재연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세상의 딸들은 엄마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고, 그 유산을 어떻게 다시 돌려주는가. 그 유산이 설령 저주받을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서 재연 장면이 쓰일 때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지금 다시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의 재연 장면은 그 상황을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촬영하는 방식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과정으로서의 재연’이지 ‘결과물로서 재연’이 아니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기억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나누고, 엄마와 딸들의 기억과 감정이 어떻게 어긋나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이 과정은 심리치료의 과정과도 비슷하다.
영화는 올파의 결혼부터 딸들의 성장 과정을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시간 순서대로 짚어간다.
  영화 〈올파의 딸들〉 중에서 부르카를 쓰고 대화를 나누는 네 자매. (제공: 필름다빈)     올파는 어린 시절 자매들만 있는 가난한 집에서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올파는 남자들로부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기르고 거친 말투를 배웠다.
그리고 남자만큼 강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자라났다.
어린 시절부터 올파에게 ‘여성’이란 특성은 약한 것, 쉽게 모욕당할 수 있는 존재, 언제든 ‘창녀’가 될 수 있는 몸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올파의 생각은 딸들과 올파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냈다.
올파는 딸들이 성적 호기심을 가질 때마다 거친 말들로 딸들을 비난하고 통제해 왔다.
올파는 늘 딸이 “위험한 영역에 발을 들일”까 봐, “마음이 불결해”질까 봐, “창녀”가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딸들의 몸과 행동을 자신의 방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
  딸의 몸과 일상을 통제하려는 엄마와 호기심으로 넘쳐나는 성장기 딸들의 갈등은 깊어져 갔다.
장녀인 라흐마는 올파에게 가장 믿고 의지하는 딸이자 동시에 가장 엄하게 혼을 내는 딸이었다.
라흐마는 사춘기가 오자 엄마에게 반항하며 고스족 화장을 하고 머리를 염색했다.
올파에게는 그런 딸의 모습이 금기를 넘어서는 위험한 행동으로 보였고, 딸이 쓰러질 때까지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한다.
올파에게 있어서 여성의 몸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통제해야 하는 몸이었고, 결혼한 후에는 남편의 것이 되는 몸이었다.
올파는 스스로 이혼을 선택한 여성이었지만, 딸들은 순종적인 여성이 되기를 바랐다.
  그 즈음 IS는 길거리에서 포교 활동을 하며 여성들에게 히잡을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라흐마는 그때 처음으로 히잡을 써보고는 이후 늘 히잡을 쓰고 다녔다.
처음에는 동생들도 언니가 히잡을 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머지않아 언니를 따라서 모두 히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점점 더 많은 여성이 IS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눈만 내놓고 온몸을 검은 천으로 덮는 부르카를 쓰기 시작했다.
첫째 라흐마와 둘째 고프란의 종교적 믿음은 점점 더 견고해졌고, 이제는 IS 단원들과 같이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올파는 처음에는 이런 딸들의 변화가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히잡을 쓰는 딸들을 보면서 ‘신의 말씀을 따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점점 IS를 추종하는 믿음의 강도가 세졌고, 딸들은 오히려 히잡을 쓰지 않는 엄마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튀니지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 영화의 중간에 라흐마 역할을 하는 배우와 올파가 히잡을 쓰는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라흐마가 엄마에게 “신을 말씀을 거역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라고 호통을 치자,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재밌는 지점은 이 모습을 지켜보는 에야와 타이시르가 말싸움에서 밀린 올파의 모습을 보면서 통쾌하다는 듯이 재밌어하는 것이다.
딸들에게 종교와 히잡은 늘 자신들을 통제해 왔던 엄마에게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가 어떻게 뒤틀리고 어긋날 수 있는지가 드러난다.
결국 두 딸은 집을 나와서 십 대의 어린 나이에 테러집단인 IS에 자발적으로 입단한다.
딸들이 처음 히잡을 쓰겠다고 했을 때, 올파는 절대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딸을 잃어버린 지금, 올파는 히잡을 쓴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비로소 솔직해지는 여성들의 방   영화의 이야기는 사건의 사실관계보다는 올파와 딸들 사이의 심리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는 현장에 있는 다른 배우들과 스텝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완성된다.
이런 집단적인 대화와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올파와 에야, 타이시르의 경험은 한 가정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에서 보편적인 여성들의 경험이 된다.
이 영화의 촬영장은 여성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 되어 준다.
물리적으로 안전한 것뿐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꺼내 놓았을 때 그 경험을 존중받으며 이야기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다.
  영화 〈올파의 딸들〉에서 네 딸들이 방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공: 필름다빈)     셋째 딸 에야는 촬영 중에 여러 번 엄마를 향해 솔직한 말을 쏟아낸다.
“엄마가 나에게 욕설을 쏟아낼 때, 티는 안 냈지만 정말 상처받았어. 사실은 너무 화가 나서 엄마의 입을 막고 목을 조르고 싶었어.” 에야가 이런 속마음을 꺼냈을 때, 촬영장에 있던 누구도 에야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배우들은 그 대화에 끼어들어서, 지금도 딸의 상처가 보이지 않냐고 말하며 에야의 편이 되어 주었다.
에야는 이 공간에서 엄마에게 저항하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야의 용기는 엄마와 싸울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지만, 모녀라는 관계를 넘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사회적 시선에 저항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적어도 다음 세대인 에야는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관객들은 이 대화에 함께 참여하며 올파의 가족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하게 된다.
즉, 라흐만과 고프란을 데려간 ‘늑대’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늑대는 테러집단 IS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IS라는 극단주의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올파와 딸들의 삶을 어떻게 옥죄어 오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억압에 대해서 우리가 스스로 질문하지 않을 때, 그 굴레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 영화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명의 남자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남자 배우는 여성들의 삶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여러 명의 남자들을 혼자서 연기한다.
이 기억 속의 남자들은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한 사람의 연기를 통해서 비슷한 존재가 된다.
카우타르 감독은 올파와 딸들의 삶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남성의 ‘부재’라고 했다.
에야는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아버지는 섹스를 통해서 우리의 출생에 기여한 남자예요. 나를 만드는 대신 다른 일을 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이 여성들이 남성과 맺는 관계는 일방적이고, 쉽게 끊어진다.
반면 엄마와 딸들 사이의 관계는 깊은 애정을 갖고 돌보면서도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관계가 끊기고 나서도 질긴 기억과 감정은 끊임없이 다시 소환되고 재해석 된다.
  〈올파의 딸들〉은 내용 면에서도, 형식적으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은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이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돌봄을 놓지 않는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는 이들을 사랑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권오연 : 2024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강남역사건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담은 단편 다큐 〈X에 대하여〉와 한국과 일본에 살고 있는 네 명의 페미니스트가 나누는 우정을 담은 〈순간이동〉을 공동연출했다 10.29이태원참사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이태원참사 다큐 〈별은 알고 있다〉를 만들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 콘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IS가 된 딸들, 피해자 혹은 악녀 서사를 비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