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토모미 前 몬타나주립대학 교수 인터뷰
2023년, 미국 몬타나주립대학에서 성소수자 혐오 및 인종주의에 대한 대학의 대처 방식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조직한 공동행동. (제공: 야마구치 토모미)
올해 1월 취임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공평성-포용성) 정책 종료”, “젠더 이데올로기의 과격주의로부터 여성을 지키고, 생물학적 성별만 인정한다” 등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미국 사회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실천과 철학이 바닥부터 뒤집어질 판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세계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국제관계학부 야마구치 토모미(山口智美) 교수에게 들어본다.
[인터뷰·정리] 가시와라 토키코(柏原登希子)
다시 생물학적 성별로, 그것도 이분법으로 회귀?
저는 작년 8월까지 미국 북서부에 있는 몬타나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선거 당시부터 트랜스젠더(출생 시의 성별과는 상이한 성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공격했기 때문에 “생물학적 성별만 인정한다”는 대통령령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동성혼이 합법화된 이후, 동성애자를 탄압해왔던 미국 우파-보수파의 공격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이자 취약한 위치에 있는 트랜스젠더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2023년에는 몬타나주를 포함한 다수 보수파 주의회에서 여러 가지 ‘반(反)트랜스 법안’이 제출되었고, 몇몇 법안은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생물학적 성별”이란 생물학 상의 그라데이션조차 무시한, ‘남자는 정자를 만드는 사람, 여자는 난자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난폭한 정의입니다.
이 정의는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논바이너리(성 정체성, 성 표현을 남녀의 틀에 맞추지 않는 사람), 인터섹스(신체가 남녀 어느 쪽에도 맞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배제합니다.
대통령령을 반영해 스톤월국립기념비(1969년에 스톤월에서 일어난 성소수자 LGBTQ+ 해방투쟁을 기념하는 비) 웹사이트에서 트랜스젠더(T)와 퀴어(Q)가 삭제되었고,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젠더를 가진 사람의 존재와 역사 역시 지워지고 있습니다.
이미 트랜스젠더 청년들이 의료에 접근할 수 없게 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입니다.
미국 내 당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권침해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젠더, 인종, 성적 지향, 이민 등 무시되는 ‘다양성’
‘젠더’(gender)는 1970년대에 페미니즘 제2의 물결 이후 성장해온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성을 사회적으로 구축된 다양한 관계성과 권력 관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성별 이분법을 비판해왔습니다.
금세기 최대 규모의 여성대회로 알려진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UN 세계여성대회에서 189개 국가가 참석한 가운데 ‘젠더’ 용어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후, 국제적으로 통용되어온 개념입니다.
그러나 보수층은 그것을 ‘젠더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며, 전 지구적으로 반(反)젠더 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또한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 등 사회구조 전반에 인종차별이 편입되어 있다는 개념도 역시 마찬가지로 적대시 해왔습니다.
DEI(다양성-공평성-포용성) 정책의 종료라는 대통령령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미국에서 젠더와 인종, 성적 지향, 이민 등 ‘다양성’은 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문화인류학자입니다.
인류학 자체가 인간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사회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심부가 아니라서 안정된 일자리가 적은 몬타나주의 지역 특성상, 학생들에게는 경찰이 인기 직업이며 범죄학을 전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찰로 일하는 이상 인종과 젠더,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성학에 대한 지원 중단 위기, 대학 내 위축 효과
야마구치 토모미(山口智美). 문화인류학자. 미국 몬타나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사회운동의 당혹: 페미니즘의 ‘잃어버린 시대’와 풀뿌리 보수운동』, 『종교 우파와 페미니즘』 외 다수.
최근 몇 년간, 플로리다, 텍사스 등 공화당 계열의 큰 주에서 차례로 DEI 프로그램을 종료했습니다.
사유는 DEI가 ‘차별적인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몬타나 주의회도 점점 공화당이 세력을 키웠고, 공화당 주지사가 당선된 후부터는 주립대학 조직의 수장이 주지사와 주의회의 분위기를 점점 더 살피게 되었고, 대학 내에서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이전 민주당 정권에서 내세운 DEI 프로그램 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눈에는 띄지 않더라도 DEI 담당부서를 만들고 담당자를 채용하는 등의 틀을 만들었고, 느리긴 해도 DEI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DEI 정책 종료를 선언하고 금지해 나간다면, 이제 여성학을 비롯해 다양성을 다루는 모든 학문 분야에 국가의 지원이 중단되고 이를 가르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연구자와 학생이 다양성에 관한 발언을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미국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그로 인해 언제 강제 송환될 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언론에서의 위축 효과도 일어나리라 예상됩니다.
또한 DEI 정책 종료를 지지하는 기업들도 있어, 기업 내 소수자가 놓인 상황도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백래시’에 물러서거나 타협해선 안 돼
일본에서는 2000년대에 성교육과 남녀공동참획(일본의 성평등 관련 법과 제도)을 공격하는 ‘백래시’(backlash, 사회의 진보적 변화에 대한 반발)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도 ‘젠더’ 개념과 ‘젠더 프리’가 비난과 공격의 대상으로 거론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미국의 보수적인 상황을 앞섰던 부분도 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백래시를 수행한 다종다양한 종교적·정치적 우파 안에는 예전 통일교처럼 해외 상황에 굉장히 밝은 세력도 있어, 지금 미국의 상황을 영상 등을 활용하여 발 빠르게 소개하고 선동하며 산케이신문 등 우파 언론이 이를 확산시키겠죠.
당시, 백래시에 대해 페미니즘 운동이 끝까지 잘 대응하지 못한 과거가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잘 대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평등에 대한 백래시를 비판하면서도 많은 페미니스트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무시했던 점,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비판을 펼치고 지금도 그것을 반성하고 있지 않은 점은 문제입니다.
페미니즘은 본래,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서 다양한 차별과 권력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주의깊게 보는 철학입니다.
이러한 인식과 담론이 너무나 불충분하여 일본의 페미니스트 진영 안에 트랜스젠더를 차별을 하는 세력이 탄생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의 힘이 커지고 다양성과 포용성이 위협을 받는 어려운 상황이니만큼 국경을 넘은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는 2월 17일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에 전미 항의 행동이 일어났고,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과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싸우는 단체 등이 트럼프 정권을 상대로 차례로 소송을 제기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평등, 다양성, 포용성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 온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투쟁 방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다양한 세대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다양성이 적’이 된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