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괴물〉
조선일보 1957년 10월 9일자 석간신문 중에서.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6월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이다.
1969년 6월 28일은 미국 뉴욕에서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불씨가 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해이다.
이 항쟁을 기념하며 6월이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이 되었다.
한편, 먼 미국 땅에서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불씨가 지펴지기 이전에도 어디에나 그런 존재들은 있었다.
1957년 조선일보의 한 꼭지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靑年(청년)이 女裝(여장)하고 食母(식모)살이 兵役忌避方法(병역기피방법)도 가지가지” 기사의 내용은 한 청년이 여자 행세를 하면서 ‘식모살이’ 또는 ‘요정 접대부’ 노릇을 하다가 병역기피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것이다.
20세기의 뉴스 아카이브를 뒤져보면 이런 기사들을 왕왕 발견하게 된다.
신문에 가십거리로 실리는 특이한 사람들. 병역을 기피하려고 여장을 한 남자, 사내대장부 행세를 하면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여자. 당시에는 이름조차 없었지만 퀴어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기꾼으로 취급당해 왔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퀴어들은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면 가짜로 오해받는 존재이다.
혹은 평범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을 숨겨야 하는 존재이다.
21세기의 우리는 성소수자로서의 프라이드(자긍심)를 구호로 외친다.
하지만 프라이드가 중요한 구호가 되었다는 것은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 뒤에 수치심이라는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퀴어들의 수치심은 성별 규범화된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냈다가 거부당한 경험 속에서 쌓여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 나오는 두 소년, 미나토와 요리도 그런 퀴어이다.
*여기서부터는 영화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괴물〉 (2023) 포스터
〈괴물〉의 미스터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퀴어 영화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2023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것은 잘 알려졌지만, 칸 영화제 경쟁작 후보 중 한 편의 LGBT 영화에 수상하는 퀴어종려상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 정보 없이 이 영화를 접했을 때, 풀밭을 뛰어노는 두 소년의 그림 위에 빨간 글씨로 적힌 ‘괴물’이라고 적힌 포스터 이미지와 스릴러/미스터리라는 장르 구분을 보고, 아이들이 나오는 잔혹 동화 같은 영화인가 예상했다.
무엇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퀴어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이 영화는 분명한 퀴어 영화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 담아내는 퀴어함은 사랑과 용기, 자긍심이 아니다.
영화 〈괴물〉에서 담아낸 퀴어함은 거짓말,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괴물〉의 반전은 사랑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관객들이 영화 속의 인물을 따라가면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아가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괴물은 누구인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지 찾아가게 만드는 진실게임을 한다.
영화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의 사건을 겪고 있는 세 인물의 관점을 보여준다.
영화 〈괴물〉 중에서 미나토와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되는 인물은 사오리이다.
사오리는 초등학생인 아들 미나토를 혼자서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아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걸 보고 사오리는 학교에서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한다.
엄마가 다그치자 미나토는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한다.
사오리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를 찾아가지만, 교장을 비롯한 학교의 태도는 치가 떨린다.
피해 학생과 그 부모에 대한 연민도 공감도 없는 태도로 기계적인 절차를 진행하는 모습은 우리가 사회에서 익히 보아왔던 책임지지 않는 권력과 시스템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오리의 관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너무나 명백하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다시 뒤집어진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미나토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호리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본다.
호리 선생님은 사오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미나토를 괴롭힌 적이 없다.
미나토에게 ‘머리에 돼지 뇌가 들었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한 적도 없고, 미나토를 때리거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가 왕따를 당하는 요리를 괴롭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호리 선생님은 문제를 키우면 안 된다는 학교의 방침에 따라서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하고 해고를 당한 힘없는 말단 교사이다.
호리 선생님에게 미나토는 이유도 없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간 작은 괴물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가 너무 궁금해진다.
진실은 무엇일까?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객들은 미나토의 입장이 되어 본다.
괴물을 찾는 진실게임의 확실한 단서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예상치도 못한 사랑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얼룩진 퀴어의 사랑. 이 부조리하게 얽혀 있는 현실의 끄트머리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 작고 힘없는 이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다.
퀴어들의 거짓말
영화 〈괴물〉 중에서 호리 선생님과 미나토
미나토는 같은 반의 남자아이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요리는 학교에서 다른 남자애들에게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요리 근처에 가면 병이 옮는다고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어른들도, 친구들도 없는 학교 바깥의 둘만의 공간에서 미나토는 처음으로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요리와의 시간을 보낸다.
강렬한 끌림과 그 마음을 부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미나토의 마음은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학교에서는 요리와 친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요리와 육탄전을 벌이기도 한다.
미나토는 학교 안에서와 밖에서 요리를 다르게 대하고 있는 자신의 태도에서 스스로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미나토를 괴롭힌 것은 호리 선생님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미나토는 호리 선생님의 핑계를 댄다.
자신의 거짓말이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하자 미나토의 죄책감을 더 심해진다.
미나토는 혼잣말처럼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허공에 내뱉는다.
우연히 그 말을 들은 단 한 명의 어른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저는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남한테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괴물을 찾는 진실게임을 멈추게 된다.
괴물은 한 사람이 아니라 미나토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동성애 혐오적인 사회 전체로 넓어진다.
퀴어는 동성애 혐오적인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자기 보호를 위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면서 진실되지 못하다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내면화한다.
때로는 폭력과 혐오에 의해서 거짓말을 할 것을 종용당하기도 한다.
어느 날 밤 요리의 집을 찾아온 미나토는 요리의 아빠를 만나게 된다.
아빠는 요리 옆에서 서서 요리가 해야 할 말을 강요한다.
“할머니 집 근처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 지금까지 놀아줘서 고마웠어.” 닫혀버린 문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 미나토를 요리가 붙잡는다.
요리는 아빠가 보는 앞에서 이 한마디를 남긴다.
“거짓말이었어.” 하지만 그러고 요리는 다시 아빠에게 끌려 들어간다.
굳게 닫힌 문을 미나토는 열 수가 없다.
진실을 퀴어링하기
둘만의 아지트에 있는 요리와 미나토
이 영화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영화이다.
진실과 거짓의 선악 구도는 너무나 익숙한 이분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괴물〉이 진실이라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러한 이분법적인 구도를 퀴어하게 비틀어내고 있다.
미나토가 거짓말을 한 것이 용서받지 못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왜 미나토가 그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라는 그 마음의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윤리의 문제인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지만, 사실 권력을 가진 자의 특권인 경우가 많다.
진실로 다가가는 길이 정말 윤리적이려면 권력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도 자유롭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소외된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곧 2025년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에도 수많은 퀴어들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곳에 모일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거짓말에 상처받지 않고, 각자의 진실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퀴어의 자긍심이 아닐까.
[필자 소개] 권오연
: 2024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강남역 사건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담은 단편 다큐 〈X에 대하여〉와 한국과 일본에 살고 있는 네 명의 페미니스트가 나누는 우정을 담은 〈순간이동〉을 공동연출했다 10.29이태원참사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이태원참사 다큐 〈별은 알고 있다〉를 만들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 콘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있는 퀴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