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저자 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인터뷰 (하)
소영이 학부생 때 활동하던 페미니즘 동아리명은 BOSS였다.
“We’re your future BOSS, not your future wife”(우린 당신의 미래의 상사이지 부인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피켓과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바닥 위에 놓여 있다.
©양소영     비수도권/지방/부산에서 사는 ‘청년여성’이자, 페미니즘 리부트(2015년 전후) 시기에 정체화한 페미니스트. 윤석열 정부의 탄생에 낙담하여 뉴스와 멀어지기도 했던 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씨는 2024년 12.3비상계엄 소식에 “페미니스트”가 쓰인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이후 세 사람은 남태령에서 일어나는 일(관련 기사: ‘남태령 대첩’ 이후, 여성과 소수자가 열어갈 세상 https://ildaro.com/10085)을 전농TV 라이브 중계로 보다가 “이 목소리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5개월 뒤, 광장으로 나온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가 세상에 나왔다.
  세 사람의 광장 경험(인터뷰 기사 상편: 광장의 ‘2030 여성’의 목소리 또 삭제하려고? https://ildaro.com/10205)에 이어, 책을 쓰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광장을 채운 ‘2030여성’, ‘응원봉 부대’가 광장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광장 이후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무엇인지도.   - 이 책의 부제는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인데요. 어떤 이유로 책을 쓰게 됐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   나현 : 12.3 내란 이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자주 보게 되니까 ‘와, 이렇게까지 남성들이 언론과 정치를 장악하고 있구나!’ 확 와닿더라고요. 언론과 정치에서의 남성중심주의를 잊고 있다가, 매일 뉴스를 보게 되는 상황이 오니까 확연히 보이는 거죠. 그런데, 광장 이야기를 하다 보면 ‘2030 여성’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사람이나 답변을 하는 사람이나 영 시원치 않은 거예요. 마이크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인식 체계나 언어가 없는 거죠. 그렇다면 누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건 우리라고 생각했어요.   소영 : 모 방송에서 만든 탄핵 관련 다큐를 봤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광장의 비율과 달리) 남성 인터뷰이가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좀 짜증 났어요. 기록에 대한 필요성을 그 전까진 생각 못했는데, 이런 식이면 우리 목소리가 또 지워지겠다 싶었어요.   세희 : ‘응원봉 부대’라는 말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케이팝 덕질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도 있는데다, 아이돌팬이라고 하니까 ‘정치는 잘 모르는데 그냥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화가 나더라구요. 여성들 간의 연대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는구나 싶었고, 이건 우리가 잘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책 속에는 다양한 청년 여성들의 광장 경험 이야기가 나옵니다.
13명의 인터뷰이를 어떻게 선정했나요?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지음, 오월의봄, 2025)에는 11개의 이야기, 총 13인의 청년여성들의 인터뷰 기록이 실렸다.
      나현 : 처음엔 남태령 라이브를 보고, 남태령에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찾다 보니 거의 서울 사람이더라고요. ‘이걸로 광장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광장 경험 있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했고, 30명 정도 인터뷰를 했어요.   책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가 동일하게 가졌던 기준은 (인터뷰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잘 쓸 수 있는 사람, 이 책에 필요한 사람’ 이야기를 선택하자는 것이었고요. 각자가 가진 기준도 있었어요. 저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했는데, ‘평범한’ 사람 이야기는 기록으로 잘 안 남잖아요. 그런데 그 ‘평범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죠.   예를 들어, 김예지 씨는 광장에 처음 나간 사람이에요. 근데 이번 광장 경험으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동권 시위도 가고, 노동권 투쟁 현장도 가면서 변화해요. 특히 전장연 시위에 갔다가 경찰한테 끌려나갈 뻔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분이 옷깃을 꼭 쥐면서 경찰한테 “이 사람 내 친구니까 끌고 나가지 마라!” 소리친 거에요. 그 경험이 예지 씨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어떤 사람과 연대할 수 있게 하는 건 찰나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이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세희 : 한 사람의 인터뷰를 하면서 다음 인터뷰이가 정해지더라고요. 가령 한준아 씨가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예문여고 이야기(부산 남구 소재 예문여고 학생들-재학생 144명, 졸업생 31명이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함)를 했거든요. 그래서 예문여고 학생들을 만났죠. 또 광장에 처음 참여한 분 중에 ‘터프’(TERF, 자신을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사람들) 논란으로 혼란스러워하거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트랜스젠더 이야기도 책에 넣어야겠다 생각했고요. TK 장녀 김소결 씨 이야기는 이런 보수적인 지역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다 싶었고요. 기존에 별로 볼 수 없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좀 설득력 있게 전하고 싶었어요.   소영 : 제가 세월호 피해 학생들과 동갑인데, 사실 그 당시엔 그 일을 뼈아프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에 대한 반성으로, 관련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월호 이야기를 언급했던 최혜수 씨 이야기를 담당하게 됐죠. 혜수 씨가 저희 첫 인터뷰이였는데, 두 번째로 만났을 땐 전체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이였어요.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더라고요. 마음도 편안해진 것 같았고요. 그런 과정을 기록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 인터뷰 기록을 책에 배치한 순서, 목차도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나현 : 첫 번째 이야기인 이민지 씨는 우연히 섭외했는데, 인터뷰 내용을 보고 무조건 1번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페미니스트가 된 ‘전형적’ 여성서사를 갖고 있었거든요. 거기다 민지 씨는 페미니스트로서 광장을 비평하는 이야기도 했어요. ‘박근혜 탄핵 광장은 어떠어떠한 점이 페미니스트로서 불편했는데, 윤석열 탄핵 광장에선 평등 수칙이 생기는 등 변화가 생겨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근데, 우리가 광장의 안전을 이야기하려면 동덕여대 집회가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지도 말해야 한다’ 등. 30대 초반의 페미니스트 여성이 자신의 역사 속에서 광장을 쫙 읊어내더라고요. 우리의 페르소나 같기도 했어요.  부산 서면, 광장에서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지음, 오월의봄, 2025) 홍보물을 배포했다.
©최나현       또한 민지 씨는 자신만의 공동체가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인터뷰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고립되어 있구나,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구나 느꼈었는데, 민지 씨에겐 공동체가 있었거든요. 이런 부분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영 : 책의 목차를 구성할 때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우리와 가장 닮은 민지 씨 이야기를 첫 번째로 하고 TK의 딸, 소결 씨 이야기를 두 번째로 넣은 것도 그런 이유에요. 마지막에 이서 씨를 배치한 건, 이 이야기가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이서 씨가 남태령에서 농민 분들과 깻잎 이야기를 했던 걸 우리끼리 ‘깻잎 연대기’라고 부르는데, 이 이야기가 앞으로 연대를 꿈꾸며 지향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 인터뷰이들이 정말 다양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계속해서 곱씹게 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나현 :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희승 씨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사실 광장에서 ‘트랜스젠더 혐오’를 보면서 그 문제를 좀 짚고 싶었고, 이게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희승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지점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희승 씨가 워마드(WOMAD, 트랜스젠더 배제적 성향이 있는 페미니스트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랑 3일 동안 키보드 배틀을 뜨고 있었는데, 트위터(X)에 담배 좀 피고 오겠다고 쓴 글에 상대방이 “담배 뭐 피우냐?”고 메시지가 오면서 친해졌다는 이야길 하잖아요. 상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터프(TERF) 혹은 트랜스젠더로서 서로를 공격하거나 자기를 방어하는 대화가 아니라, 그 바깥의 대화로 시작하면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다양한 사람이 섞여 살아야 한다던 희승 씨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소영 : 세희가 인터뷰한 소진희 씨의 이야기 중에 ‘인류의 발전은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한번 부러졌다가 치유된 대퇴골이 발견된 것처럼 서로 보살피며 함께 살아갈 때 발전한다’는 얘기가 있었대요. 그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더라고요. 소진희 씨 첫 인터뷰 땐 저도 함께했는데, 에너지가 되게 좋았거든요. 사실 부산에 살다 보면 ‘여기가 과연 바뀔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근데 진희 씨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사람들이랑 함께 하다 보면 세상이 바뀔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는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작년 12월 28일 ‘박수영 의원 사무실 점거 투쟁’(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수영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5천여 명의 부산 시민들이 국민의힘에 내란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9시간 넘게 시위를 이어간 일) 이후, 국힘 의원들 45명이 1월 6일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영장 청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부산 지역구 의원은 단 두 명밖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얘길 듣고 ‘아, 실제로 이렇게 변하는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세희 : 예문여고 학생들 인터뷰 하기 전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 활동가 인터뷰도 했었는데요. 그때 “시위에 나온 학생들에게 기특하다고 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근데 저도 고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광장에 나온 청소년들을 보면 뭔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관습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는 거죠. 심지어 광장에 나온 ‘2030여성’을 기성세대들이 기특해 하는 거에 기분 나빠하면서도요.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걸 깨달으면서 ‘앞으로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이번 탄핵 광장에 나가면서, 다른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이런저런 공부 좀 했으니까~’ 라며 조금 오만했던 부분을 반성하게 되었고, 나의 부족한 점도 발견하게 됐어요.   부산 서면에서의 광장, ‘무지개존’에 자리한 여러 깃발들. ©최나현     - 이번 광장 이후 물론 변화가 있지만, 과연 얼마나 변화한 걸까 싶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수많은 청년 여성들,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이들이 목소리를 냈지만, 대선 기간이나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에도 그 목소리가 부응 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죠.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또 들었던 사람으로서, 광장에 있었던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요?   세희 : 제도나 구조적인 변화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나 자신이 변했고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이 변했어요. 저도 혜화역 시위(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참여하기 전과 후가 다르고, 이번 광장에 참여하기 전과 후가 달라요. 직장에서도 동료들 중에 광장에 나간 사람들이 꽤 있어요. 이후로 그들과 친해졌고 정치 이야기도 하게 됐어요. 일상의 변화가 생긴 거죠.   그리고 광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당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우리뿐만 아니라 언론 등 곳곳에서 기록을 남겼잖아요.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변화는 생길 거다, 분명히 바뀔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소영 : 벌써 다시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말들이 SNS에 나오고 있죠.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선 익숙한 광경이기도 해서 ‘아, 또 싸워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그래도 ‘이 사람들이랑 싸우는 게 다행이다?’(웃음) 태극기부대, 극우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거든요. 세희가 말한 것처럼, 나도 뉴스 안 보고 관심 끄고 있다가 다시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변했잖아요. 이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현 : 우리가 어떻게 이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보다 먼저 ‘여자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걸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러 책과 기록, 미디어를 통해서요. 페미니스트로서 말하고 페미니스트로서 기록한다는 어떤 개념을 우리가 배우게 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거든요. 사실 우리뿐만 아니라 또래 여성들이 광장의 기록을 남기거나, 또 언론사에 들어가 우리 눈높이에 맞는 기사들을 썼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이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는구나 싶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 윤석열 탄핵 광장이 끝나도 계속 광장에 나갈거냐?” 물은 적이 있어요. 인터뷰이가 퀴어였는데, 그럴 거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생각했을 때 차별금지법 제정이 최후의 보루처럼 남은 우리 세대의 과제라고, 그걸 위해 나갈 거라고. 이번 광장을 통해 ‘차별금지법을 위해 뭉칠 동료가 많이 생겼다, 그들을 믿고 계속 나갈 거다.
’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럼 나도 당연히 함께 해야겠다고 의지를 다졌어요.   지난 5월 30일에 더불어민주당에서 ‘혐오표현금지법안’을 발의했다가 ‘성적지향’이 차별 금지 사유로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보수 개신교 중심의 반대 세력의 민원이 많아지자, 법안을 철회하고 ‘성적지향’이라는 문구를 빼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잖아요. 퀴어인 친구가 엄청 상심하고, 지금까지 장례를 치러준 퀴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SNS에 썼어요. 그걸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먼저 “그래도 살아서 힘내자.”고 하더라고요. 저도 우리가 살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끝]
광장의 이야기,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