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밖 인터뷰④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지역 젠더정치」 연구자 상드
상드는 경기지역 월경권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다룬 석사학위 논문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지역 젠더정치」(2025)를 썼다.
상드는 “앞으로도 우리가 모두 획일적인 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는, 다양한 몸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주체들을 가시화하는 포괄적인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고 포부를 밝힌다.
(상드 제공)
상드의 논문은 한 편의 무협영화 같다.
지난 2016년, 경제부국에 속하는 한국 사회에서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보도”가 크게 회자된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느 빈국에서 일어나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에 경기도에서는 여성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보편적 권리로서 월경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이후 ‘경기도 여성청소년 보건위생물품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월경’에 대한 금기 때문에 조례명을 〈보편적 월경용품 지급 조례〉로 했으나 ‘생리용품’으로 바뀌었고, 조례를 만들어도 예산은 책정하지 않았다.
또 보편 지급의 대상은 줄어들고, 조건이 따라붙었다.
조례를 만들기까지 과정과 그런 저항들에 맞선 여성들의 활동을 기록한 것이 상드의 논문이다.
여기에는 ‘경기여성정책네트워크’의 활약이 있었는데, 경기지역 여성단체들의 연대체인 경기여성네트워크와 도의원들이 결합해서 만든 조직이다.
다시 말해, 경기 지역에서 진보, 보수, 지역정부, NGO등의 벽을 허물고 함께 모여서 만든 ‘지역 거버넌스’인 ‘경기여성정책네트워크’가 월경권 운동을 가능하게 한 주역이다.
상드의 논문에는 여성들이 조례를 제정하면서 만난 숱한 저항들, 거기에 맞서거나 ‘피해 가기’ 혹은 무력화시키기의 기술이 종횡으로 펼쳐지는데, 읽다 보면 절로 손에 땀이 찬다.
자, 이 월경권 운동을 가능케한 씨앗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여성연대와 상드는 어떻게 이 파고를 헤쳐갔을까? 인터뷰에서 더욱 자세하게 그때 상황을 들어봤다.
[연구 소개] 상드(성희령)의 논문 「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지역 젠더정치 : 경기여성연대의 월경권 운동을 중심으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에서는 경기여성연대의 월경권 운동 과정을 추적하며 그 성과와 쟁점, 한계를 분석한다.
이어 월경권 운동을 보편인권 담론으로 접근하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월경권 운동이 성과 재생산 건강권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올해 2월 석사를 마친 상드는 현재 “인권교육 온다”의 상임활동가로 있다.
2010년부터 경기 지역 내 보수, 진보 여성단체 모여 현안 정책 제안 활동
도의원들까지 결합 “이런 조직과 연대가 있어서 월경권 운동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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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드라마에서 경기도를 노른자위의 주변이라며 ‘흰자위’라고 한 적이 있어요. 서울 중심주의 한국에서 경기도는 외곽, 주변으로 비하되는데요. 논문에서 경기도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앞서서, 다른 지역을 견인하는 ‘지역젠더정치’의 장을 만들어낸 것을 보고 가슴 뛰는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월경권’이라는 말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설명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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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권은 소득·세대·계급·장애·지역·종교·성정체성에 관계없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를 말해요. 지난 2016년,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보도 기억하시죠? 이때 이후로 우리 사회는 여성청소년들의 월경빈곤 문제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월경을 개인적 문제로 만들고 금기시해온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되었고요.
월경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필수적 과정인데, 월경하는 이들은 안전한 월경용품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가?
상드가 논문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지역 젠더정치 : 경기여성연대의 월경권 운동을 중심으로」를 발표하고 있다.
(상드 제공) https://www.riss.kr/link?id=T17189361
월경 기간 동안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 있을 수 있는가?
월경대를 교체하기 위해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나?
월경을 둘러싼 프라이버시는 보장받고 있나? 같은 질문들요.
월경을 권리로 보게 되면, 이게 개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걸 인식할 수 있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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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여주와 이천에서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무상지급 조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지역 풀뿌리 운동으로 월경권 운동을 벌이고, 그 성과로 조례가 만들어진 건 경기도가 처음이었어요. 이 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자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직과 연대가 가장 큰 자원이지요. 이 프로젝트 시작이 2018년 민선7기 도지사 후보 초청 성평등 정책 간담회 때, 경기여성연대와 경기여성네트워크가 제안하면서 된 거거든요.
경기여성연대의 출발은, 1994년에 결혼 23년간 폭력을 행사했던 남편을 부인이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분의 구명을 위해 15개 단체들이 연대해서 공동 방청하고 면회 가고 탄원서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어요. 이 과정에서 ‘가정폭력방지를 위한 경기여성연대’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경기여성연대는 경기지역 여성인권운동을 토대로, 여성 시민사회 연대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단체예요. 광역 단위의 여성단체로서 전국 최초죠.
월경권 운동은 경기여성연대가 ‘경기여성네트워크’에 연대해서 만들어간 활동이에요. ‘경기여성네트워크’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보수, 진보 여성단체가 모여 경기 지역의 현안과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거기에 의원들까지 결합해 만든 게 ‘경기 여성 정책 네트워크’고요. 이런 조직과 연대가 있어서 월경권 운동이 가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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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조례 제정 이후에, 시군별로 조례를 만드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조례가 상급 단위에서 만든 대로 똑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각 시군별로 다르게 진행되더라고요.
“7개 지역에서 토론회를 진행했는데, 주제도 방식도 모두 다르게 진행되었어요.
안산과 광주는 토론회 전에 청소년들의 월경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고, 안산은 교사가 참여해서 청소년들의 월경 실태조사 결과를 가지고 학교에서의 월경권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어요. 안산에는 ‘함께 크는 여성 울림’이라는 단체가 준비했는데, 월경을 주제로 한 사업을 지금까지 이어서 하고 있어요. 월경권에 대한 캠페인, 청소년 월경 수다회, 청소년 월경 교육, 캠페인도 하고요.
부천은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는데요. 이미 2017년부터 청소년 월경권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 활동을 성찰하고 이후의 과제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모습에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광주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광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여는 광주연대’에 모여있어서 부모, 장애인, 여성, 장애인 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교육단체 등 각 단위들의 목소리를 고루 반영할 수 있었고요. 시군단위에서 지역의 단체와 청소년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삶에 밀착한 생활정치, 지역 풀뿌리 정치로 진행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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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활동하는 내내 ‘개인의 월경을 왜 경기도가 보장을 해줘야 하나?’, ‘청소년 기관 지붕을 고쳐야 해서 안 된다, 지붕 고칠 예산으로 생리대를 사야되겠냐?’, ‘여성의 문제인데 여성정책과가 아닌 청소년 과에서 담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 같은 말들을 계속 만나야 했어요.
지난 5월 19일, 경기여성단체연합·다산인권센터·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등으로 꾸려진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도의회 사무처 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양우식 경기도의회 운영위원장의 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상드. (상드 제공)
이런 걸 여성정책 연구자인 백미록 님이 ‘적대적 관료 저항’이라고 개념화했는데요. 젠더 불평등 개선을 억압하는 관료의 (무)행동이 인식론적, 물질적, 규범적으로 나타나는 걸 말해요. 인식론적, 물질적, 규범적 관료 저항을 다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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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저항’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그 관료는 해결이 안 되던데요. 그래서 이게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 시도하는 게 중요한 거다, 그래야 그다음 걸음을 할 수 있다, 수정하든 뭘 하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했어요.
우리가 없던 일을 만들어 내는 거니까, 기존의 조직으로서는 당연히 담기 힘들고, 통로도 없고, 뭐든 만들어가며 해야 하니까. 그래도 어렵다고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런 거를 좀 본 것 같아요. 월경권 운동을 성·재생산 건강권으로 확장해야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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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곽의 여성/시민들이 주체로 나서서 정책을 제안하고, 중심이 아닌 주변이라고 이야기되는 지역이 지역성의 힘으로 풀뿌리 정치를 펼친 것, 상층 단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운동이 아닌, 아래에서 더 커지고 다양해지는 힘으로 관료 저항을 이겨내고 상층을 견인해간 것, 지역의 모든 자원을 끌어다 거버넌스를 만들고 협업한 것, 이런 점이 이 운동의 놀라운 점이었어요.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죠. 그 지점에서 오히려 재도약을 하더라고요.
“광주 토론회에서 만난 장애단체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월경권 운동의 한계, 방향 같은 거를 고민하게 되었죠. 이후 논문 인터뷰를 하면서 기억에 선명한 인터뷰가, 논바이너리(non-binary, 성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한 것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 청소년이었는데요. 이 청소년이 여성, 남성 젠더 규범에 갇히는 게 싫잖아요. 근데 월경을 하는 거죠. 그 자체도 괴로운데, 생리대를 사러 가는 순간 그걸 보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젠더퀴어의 월경, 장애 여성의 월경은 우리의 월경권 운동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누락시켜왔다는 걸 깨달았죠. 이 ‘보편’이라는 말이 ‘정상성’과 혼용되면서 이분법적 규범, 정상성에서 벗어난 몸들의 월경을 보이지 않게 한 거죠.
그래서 논문에서 월경권 운동의 방향을 ‘성과 재생산 건강권’의 정치적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젠더 규범, 정상성을 깨뜨리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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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권을 성과 재생산 건강권의 정치적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월경권 운동이 ‘월경하는 몸’을 권리와 행위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건데, 우리 사회는 월경을 출산과 연결될 때만 인정하잖아요.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가부장적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죠.
2016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 모든 사람이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과 관련해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차별이나 폭력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갖는다, 등의 내용을 이야기했죠. 그러려면 성과 재생산이 성별 이분법의 사고나 개인을 넘어서, 지역과 사회의 구조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사회 및 지역사회, 제도 및 의료시스템, 구조적 측면의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아야 하고요. 월경권도 그 중 하나의 요소가 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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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성연대에서 2021년부터 2년에 걸쳐서 월경권과 성과 재생산 건강권 교육과 강사 양성과정까지 진행한 이유를 알겠어요.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아요. 주로 어디서, 누가 이 강의를 신청하나요?
“도서관, 장애인 기관, 여성단체, 대안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신청을 했어요. 교육 대상은 초 중등 학생, 양육자, 성인 장애인 등 다양했고요. 교육할 때는 다양한 월경용품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사용법과 장단점도 설명하고, 자신의 몸에 맞는 월경용품 선택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어요. 국내에서 월경컵을 제조, 판매하는 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아 원하는 청소년과 성인에게 무료 배포하기도 했지요.”
“우리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
”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에서 여성운동가들이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를 조직하여 성평등 정책을 요구하였다.
“바꾸자, 여성 주권자의 힘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는 상드의 모습. (상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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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나 장애인, 시민들은 자신의 몸을 전혀 다르게 경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청소년들 인터뷰하면서, 젠더에 대한 고민은 성인만 하는 게 아닌데, 아무런 결정권도 경제권도 없는 아동 청소년들의 젠더 고민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겠구나, 우리 사회가 더 주목해야 하겠구나, 우리 사회가 젠더규범을 벗어나는 게 정말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가 모두 획일적인 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는, 다양한 몸, 다양한 경험을 가진 주체들을 가시화하는 포괄적인 정책을 만드는… 그런 일을 해나가고 싶어요.”
월경 ‘혐오’와 월경 ‘권리’
내게는 페미니스트 선배이기도 한 단짝 친구가 있다.
그를 페미니스트로 키운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단 그의 어머니는 반면교사였다.
친구가 월경을 시작한 걸 알았을 때 어머니가 친구에게 보낸 눈길을 친구는 몸서리치며 기억한다.
“혐오. 그 때는 그 말을 몰랐지만 그거였어.”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과 동시에 나 역시 월경 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월경을 했을 때, 병에 걸린 줄 알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을 때에야 언니로부터 생리대를 받았다.
깜깜이 월경이었다.
나의 몸, 나의 성에 대한 완벽한 무지야말로 혐오의 자장 안에 있다는 것을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상드의 논문 부록에는 경기여성연대는 보편적 월경용품 지원 조례를 만들기 위해 2021년 “경기도 청소년 월경 경험과 ‘월경과 여성의 몸’에 관한 실태조사” 설문 문항과 결과가 담겨있다.
거기에는 이런 질문이 있다.
“‘월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건강하고 위생적이며 사생활이 보호되는 안전한 월경의 권리를 가져야 하며 보장되어야 한다.
’라는 월경권의 정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88.7%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질문을 보면서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만약에 첫 생리를 한 내가 당시 이 질문을 만났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월경하는 몸이 오염되고 불결하다고 낙인찍는 월경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자식에게 혐오를 대물림하지 않는다면, 내 친구와 우리의 어머니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이렇게 질문을 바꿔본다.
2021년에 이 질문을 만난 청소년들, 88.7%의 “그렇다”에 동그라미를 친 청소년들을 보유한 경기도는, 경기도에서 출발한 월경대 보편지급 조례가 전국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
[필자 소개] 호미:
동화집필노동자, 한국양성평등교육원 농촌 성평등 교육활동가.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과 동기들과 매일 줌(zoom)으로 공부하고 활동하는데, 상드(인터뷰이)와 호미(인터뷰어)는 열혈 참여자이다.
‘몸’과 몸에 깃드는 배움을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자질구레 신문〉, 〈사랑에 빠진 도깨비〉 등의 동화집을 냈다.
‘깔창 생리대’에서 ‘모두의 월경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