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돌봄의 법⑩ 공동체의 유통기한
직전에 살았던 셰어하우스 거실 창. (지수 제공)
[연재 소개] 2023년 생활동반자등록법이 발의된 후, 가족구성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이 법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작년 9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
연대와 돌봄의 법
〉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고, 동시에 동질적이지 않는 소수자들이 법 제도를 넘나들면서 이미 해나가고 있는 돌봄과 연대를 발견하고 더 많이 발명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착의 조건
집을 소유한 임대인과, 그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인 나는 어찌됐건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관계다.
귀농을 하며 어느 농촌에 정착하게 된 청년 A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장소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을 갖고 있을 소유주에게, 이곳에서 현재 살고 있는 나 또한 집을 잘 돌보고 있다는 신호를 전했다.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맺길 바랐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임대인에게 1박2일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들은 것이다.
어떤 날에는 말도 없이 찾아와 마당에 있는 것들을 깎았다.
귀농한 주변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곤란을 겪고 있었다.
젊은 도시 애가 집을 찾는다고 하니 월세 5만원 정도 집이 10-20만원 훌쩍 뛰거나, 이장이 엄포를 놓으면 그 마을에서 집 구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거나, 빌린 밭의 상속인들의 분쟁이 생겨서, 그것 때문에 농사를 지속하지 못할까 불안해 하거나….
A에게는 귀농을 함께 실천하고 있는 20여명의 청년들을 비롯해,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삶을 이어가는 공동체가 있다.
생태적인 농법으로 밭 살림하는 방식을 함께 익히고, 밭에서 따온 것들을 나누고, 소모임을 함께하고, 폐기물 처리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등의 사회 활동도 한다.
지향하는 삶의 양식이 있고, 그것을 함께 실천하며 일상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게 이 동네는 삶의 터전이다.
임대인과의 관계 맺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공동체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이 공동체 안에서 돌봄과 연대는 일상이다.
그에게 ‘정주’(定住)는 필수적인 삶의 요소인데, 임대인과 세입자의 관계는 여전히 공동체 영역 밖에서 서로 대립하고만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살피는 호혜적인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걸까.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은
‘주거권’은 사람에게 지붕 덮인 집이 필요하다는 뜻을 넘어선다.
인권운동사랑방 정록 활동가는 ‘권리는 소유가 아니라 관계’라면서, 주거권에 대해 ‘거주를 중심으로 사회적 관계와 장소를 지속하고 넓힐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에 대한 권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관계와 장소란, 우리가 돌봄과 연대를 꾀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정착의 방식에 ‘소유’가 반드시 필요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기꺼이 정주할 수 있는 삶은, 기어코 소유해야만 한다고 부르짖는 사회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다.
그럼에도 기꺼이 땅과 집을 나눠 쓰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다.
이들이 ‘밭 살림’하는 땅을 중심으로, 살림과 돌봄처럼 보다 생명력 있는 것들이 서로의 삶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이 삶이 그저 특이하고 드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선택 가능한 삶으로 더 넓게 가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지수 제공)
멀쩡한 집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기에, 멀쩡하지 않은 집에 사는 이가 더 나은 집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집만 멀쩡하다고 해서, ‘집에 가고 싶다’의 그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
집을 집답게 만드는 건 집을 둘러싼 관계다.
그 집에 사는 사람, 때로는 그 집 자체를 포함해 서로 연결된 관계가 필요하다.
그것들이 위협받거나, 원치 않게 중단해야 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것, 또는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
나는 그런 집을 안다.
내가 살았던 ‘달팽이집’들을 떠올려본다.
독립 이후 내가 처음 만난 주거공동체는 달팽이집이었다.
노동자에겐 노동조합이 있지만 세입자에겐 그런 게 없는 한국에서, 청년 세입자들이 모여 서로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집을 직접 확보하고 운영하고자 시작된 집이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달팽이집이다.
세입자들이 주택협동조합을 이루어 임대인과 단체협상을 함으로써 임대료를 낮추고, 계약기간은 늘리며, 주택 관리와 커뮤니티를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주거모델’의 구체적 실천이기도 하다.
세입자에 의한, 세입자를 위한, 세입자들의 집.
‘달팽이집’들의 추억
처음 살았던 달팽이집에서 우리는 서로를 ‘식구’라고 불렀다.
약속한 적은 없지만, 매일 저녁 밥을 지었다.
누군가 가져온 6인용 밥솥에는 늘 밥이 뚜껑까지 가득 차 올랐다.
여러 명이 손을 보탠 요리는 탁자의 크기보다 넓어서, 우리는 작은 좌식테이블 4개를 붙여 앉아 먹었다.
정 많은 아래층 사람이 종종 우리들 집에 놀러 와 저녁을 같이 해먹었다.
요리를 즐겨 하던 동생이 나를 옆에 세워두고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가르쳤다.
밥을 짓고 있다 보면 귀가하는 식구들과의 대화쯤이야 별 것 아닌 일상이 됐다.
일터에서의 힘든 일을 나누기도, 망했거나 성공한 연애 얘기를 듣기도 하면서, 지금의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알게 됐다.
아는 만큼 돌볼 틈이 보였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할 때의 그 ‘집’이 이 집인 날들이었다.
다음 집은 공공임대주택을 위탁 운영하는 달팽이집이었다.
층마다 1-2인이 사는 호실 2개가 있는 5층 빌라였다.
다만 모두가 함께 쓰는 거실은 없었다.
의도하지 않으면 서로 살피기 어렵고, 그래서 돌볼 틈을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우린 더욱 다양한 계기들을 마음 내어 마련했다.
마을목공소를 다니고, 과일 나눔과 반찬 만들기를 함께 하고, 책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열렸다.
한 사람이 3개를 하기도, 0개를 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이런 관계가 건물 안에서 오가고 있다는 것 자체였다.
어느 여름 주말에는 주차장부터 옥상까지 릴레이로 물을 길어 나르며 계단과 주차장 청소를 했다.
건물 전체에서 노래가 울렸다.
반상회를 하는 저녁에는 돌아가면서 서로의 집 거실로 모였다.
잠시 시끄러워도 합의된 목소리들이기에 마음껏 얘기 나누고 웃었다.
골목이나 공동계단에서 마주치면 반가웠다.
‘집에 도착했구나’라는 감각은 401호 현관 앞이 아니라, 우리 건물 공동현관 앞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다음 집은 공공부지 위에 지어진 달팽이집이었다.
4인이 4개의 방과 2개의 화장실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에 입주했다.
각방을 쓰면서 공동으로 부엌과 거실을 쓰는 것이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았다.
화장실이 넉넉한 것도 좋았다.
매일 저녁 노을 볕이 집안 깊숙이 들어오는 멋진 집에서 룸메이트들은 서로의 일상에 깊이 엮였다.
1층에 마련된 널찍한 커뮤니티실에는 정수기도 있어서, 우리 집 사람들은 우물 가듯 물 뜨러 다녔다.
누군가 일을 하거나, 요리를 해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물을 뜨는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갔다.
저녁 짓는 자리에 합류해 같이 밥을 먹었다.
눈이 오면 같이 치우고 눈싸움을 했다.
반상회를 핑계 삼아 벚꽃놀이를 갔다.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기념했다.
좋은 기억들이지만, 나는 계속 퇴거하고 이사를 다녔다.
돌이켜보면 다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정주할 수 없는 집에서 맺어진 이 관계들은 임시적인, 끝이 정해진 것들이다.
임대인은 나를 그가 가진 관계망의 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공공임대는 내게 필연이 됐다.
다만 그 제도 안에서 나는 거주 기간이 최대 10년으로 제한됐다.
나 같은 이들이 구성하는 공동체는 임시적인, 거쳐가는, 한 시절 좋았거나 나빴던 추억거리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어차피 오래 살 집도 아니니, 아주 작은 갈등과 불편도 퇴거의 계기가 됐다.
대화하고 품을 내는 것은 점점 특별한 일이 되어갔다.
달팽이집 10주년 행사. 달팽이집 사진 전시에 함께 했던 룸메들과 사진을 구경했다.
(지수 제공)
이것이 나만의 루틴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때, 내가 꾸리는 돌봄과 연대의 공동체는 언제나 시한부일 수밖에 없는 걸까 질문하게 됐다.
가난이 가까이에 있을수록, 돈이 비워낸 자리를 관계가 채운다.
나이 들수록 더 가난해질 나에게, 관계는 사적 영역의 일이 아니라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한, 공적 영역에서 함께 다뤄지고 조력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될 게 분명하다.
‘관계 네트워크’ 존중하는 주거 정책을 꿈꾼다
정주의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는 주거 정책은 사람을 짐짝 옮기듯 이주시킨다.
반빈곤 활동가들에게 종종 듣는 사례가 있다.
쪽방촌에 살다가 공공임대에 입주해놓고도, 생활권이 한 순간 달라지고 기존 관계 네트워크와 단절된 것으로 인한 삶의 불안이 더 커져, 결국 다시 쪽방촌으로 돌아왔다는 어떤 노인의 이야기다.
관계 네트워크에 관련하여, 보호시설에 입소했던 성폭력 피해자도 퇴소를 앞둔 시점에 비슷한 곤란을 겪는다.
몇 개 안 되는 주거 지원 중 하나로 공공임대가 있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그간 어렵게 꾸려왔던 지역 내 네트워크를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다.
지붕 덮인 집을 제공받는 것에 감지덕지 해야 하는 것일까? 집을 제외한 그 나머지를 잃는 일은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사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에서는 이처럼 “피해자로 하여금 관계 네트워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자신을 지지해주는 관계 네트워크는 피해 회복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거권 단체들은 지역별로 공공임대주택 쿼터제를 도입하여, 공공임대가 필요한 이들이 본래 살던 지역에서 멀리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멀쩡하고 저렴한 집을 구해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주할 수 없는 집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청소년 주거권 네트워크’는 가족주의적인 주거 정책이 배제하고 있는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불안 문제를 사회에 고발한다.
제도가 부재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탈가정 청소년 그 자신을 둘러싼 돌봄과 연대의 관계 네트워크다.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는 원 가족과 이웃에게 정체성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성소수자들이 겪는 삶의 불안을 가시화한다.
제도가 누락하는 그들의 불안을 메우고 있는 것 역시, 그 곁을 함께 하는 돌봄과 연대의 관계 네트워크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집과 관계 맺는 힘을 마땅히 조력하는 주거 정책을 상상해 본다.
기한에 정함이 없는 집에서, 누군가에게 침범 당하지도 쫓겨나지도 않으며 꾸준히 관계를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는 삶. 정주하고 싶고, 정주해도 괜찮을 집과 관계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 가능성을 긍정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바란다.
[필자 소개] 지수
. 민달팽이유니온에서 활동하던 당시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 작업을 함께 했다.
얼마 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상임활동을 시작했다.
정주할 집이 없다면, 연대와 돌봄을 지속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