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아일랜드, 대만, 일본의 ‘혼인평등’으로의 여정 나눠
〈국제 혼인평등 컨퍼런스 - 변화하는 가족, 성숙하는 민주주의: 동성혼 법제화〉에서 뉴질랜드의 루이자 월(Louisa Wall) 전 의원이 발표를 하고 있다.
©모두의결혼
“우리는 언제나 존재해왔고, 각각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인간처럼 우리 공동체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
지난 10월 16일, 국회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국제 혼인평등 컨퍼런스 - 변화하는 가족, 성숙하는 민주주의: 동성혼 법제화〉에서, 뉴질랜드의 혼인평등 실현 과정을 발표한 루이자 월(Louisa Wall) 전 의원이 “자유롭고 평등한 존엄과 권리”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단지 ‘결혼을 할 수 있냐, 못 하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에 관한 문제라는 것. 이번 국제 컨퍼런스에선 혼인평등권이 제도화 된 뉴질랜드, 아일랜드, 대만, 그리고 파트너십 조례가 있지만 동성혼 법제화는 아직 안 된 일본에서 온 연사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오전 9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된 컨퍼런스에선 한국의 현실과 혼인평등 법안 이야기를 포함해 다채로운 논의가 오갔다.
그 가운데서도 뉴질랜드의 루이자 월 전 국회의원, 일본의 이시카와 타이가 전 참의원 의원, 대만의 유메이뉘 전 입법의원, 아일랜드의 모니냐 그리피스 BelongTo(청소년 LGBTQ+ 지원단체) 대표의 발표 내용을 토대로, 각국 혼인평등으로의 여정에서 공통점을 정리했다.
동성 결혼에 대한 사법적 해석과 ‘법의 역할’
각국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법의 역할’이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대만의 경우 2017년 5월 24일, 사법원(헌법재판소)이 낸 ‘제748호 해석문’이 매우 중요했다.
이 해석문을 통해 “현행 민법이 동성 결혼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므로, 2년 내에 관련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유메이뉘(尤美女) 전 민진당 의원은 “사법원이 혼인의 자유 권리는 기본권이다”라고 명쾌하게 밝히며 “그렇기에 이성애자만 그것이 가능하게 하고, 동성애자에 대해서 제한하는 건 위헌이라 판결한 것”이라 설명했다.
또한 “사법원은 2년 내에 법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끔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아일랜드의 경우, ‘KAL사건’(K & AL Case)이라고 불리는 소송이 있었다.
아일랜드 국적의 레즈비언 커플인 캐서린 자포네(Katherine Zappone)와 앤 루이스 길리건(Ann Louise Gilligan)은 2003년 9월 캐나다에서 결혼한 후, 아일랜드로 돌아와 그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12월, 아일랜드 하급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며 동성혼을 헌법이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진) 2025년 10월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국제 혼인평등 컨퍼런스 - 변화하는 가족, 성숙하는 민주주의: 동성혼 법제화〉 참석자들이 무지개 손깃발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공동 주최: 무지개행동, 모두의결혼, 이재정(더불어민주당), 용혜인(기본소득당), 신장식(조국혁신당), 손솔(진보당), 정혜경(진보당) 국회의원) ©일다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모니냐 그리피스(Moninne Griffith) BelongTo 대표는 “이 판결을 통해 혼인평등 문제를 미디어에 노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캐서린과 앤 루이스 커플이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20년 이상 맺어온 관계를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보호와 인정을 바란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사회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직 동성화 법제화가 되지 않은 일본은 혼인평등을 위한 소송 중이다.
현재 5개 고등법원에서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상황.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전 의원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기대가 높으며, 2026년에 판결이 나온다면 2027년에 동성혼 법제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뉴질랜드의 루이자 월(Louisa Wall) 전 의원은 현대법이 구성된 맥락을 짚으며,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뉴질랜드는 영국에 의해 식민지화되었을 때 그들의 법을 물려받았는데, 그것은 곧 영국 성공회의 종교적 규범이 성문화된 것이었다.
그 법은 동성애를 죄악시하거나 범죄화했다.
하지만, 식민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전 원주민 여성으로서 ‘타카타푸이(Takatāpui)’라 불리는데, 이는 같은 성별 간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동성애자)는 언제나 토착문화 안에서 존재해 왔고, 사랑받고 존중받았으며, 공동체 안에서 돌봄을 받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랑과 존중은 식민 권력과 종교 단체들의 외부 법과 가치관 강요로 인해 잃게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법률 안에도 그것이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
이러한 맥락에서 루이자 월 전 의원은 “‘동성애 금지’가 식민주의의 산물이라 생각한다”며, “우리는 각자의 사회 안에서 그 식민주의적 잔재를 해체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뉴질랜드는 2004년 동성 커플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결합’ 제도가 도입되었고, 루이자 월 의원(뉴질랜드 노동당)이 이에 더하여 발의한 동성혼 합법화 법안(Marriage Equality Bill)은 2013년에 의회를 통과했다.
일부 ‘보수 종교 세력’의 반대가 큰 걸림돌이었지만
〈국제 혼인평등 컨퍼런스 - 변화하는 가족, 성숙하는 민주주의: 동성혼 법제화〉에서 아일랜드의 모니냐 그리피스(Moninne Griffith) BelongTo(청소년 LGBTQ+ 지원단체)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무지개행동, 모두의결혼
동성혼 법제화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보수 종교 세력’의 반대다.
네 국가 모두, 혼인평등을 반대하고 그것을 막고자 열렬히 활동하는 반대 세력이 있었다.
때문에 전략적 대응이 필요했다.
아일랜드는 백인 중심의 카톨릭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국가로, 헌법에 ‘이혼 금지 조항’이 있었다.
1986년 이혼 금지 조항을 삭제하자고 국민투표를 진행했지만, 부결이 됐다.
1995년 두 번째 국민투표를 통해서야 찬성 50.28%, 반대 49.72%로 이혼이 합법화되었을 정도로 보수적이다.
그런 아일랜드에서 10년 후인 2015년 동성혼이 법제화되었다는 건, 어찌 보면 놀랍기도 하다.
모니냐 그리피스 BelongTo 대표는 “보수적 입장을 가진 이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하며,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고 했다.
그 결과 “많은 남성이 결혼을 중요한 제도로 여긴다는 것,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편안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혼인평등 운동은 “그들에게 본인들의 그런 삶, 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 열어달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더불어 “성소수자들의 실질적인 삶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고 말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나의 이웃, 도서관에서 일하는 나의 이웃, 아니면 내 아이의 선생님... 모든 곳에 성소수자가 있다.
조용히 살고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도시에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지역 곳곳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정말 당신들 가까이에 있다고요.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거든요.”
뉴질랜드의 경우엔 신중하게 접근했다.
루이자 월 의원은 “뉴질랜드엔 결혼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주례자가 있다.
하나는 종교적 주례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국가로부터 인가받은 주례자”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종교적 결혼의 정의를 보호하기 위해, 종교단체나 종교 주례자에게 동성 결혼식을 주관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고 했다.
종교의 실천에 대해선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제도로서 결혼은 어떠한 시민에게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고 강조했다.
일본 또한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의 보수 세력과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일교 등의 종교 단체의 반대가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고, 이시카와 타이가 전 의원(일본 최초의 게이 참의원 의원)은 전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법부의 판단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고 밝혔다.
일본의 전국 5개 지역 성소수자 커플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의 도쿄 재판에서, 2024년 10월 30일 주목할만한 결과가 나왔다.
도쿄고등법원은 동성결혼 불인정이 헌법 14조 1항(법 앞의 평등)과 24조 2항(혼인의 자유)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판결 직후, 기뻐하는 원고와 지지자들 모습. (출처-유튜브 Marriage For All Japan)
청소년·청년 여성층, 동성혼 법제화에 압도적으로 찬성 높아
혼인평등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이를 줄이고, 대화하기
일본에서 혼인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여론은 꽤 높은 편이다.
이시카와 타이가 전 의원은 “약 70%가 동성혼 법제화가 찬성하며, 특히 10대 여성의 경우 90%이상이 찬성할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고 설명했다.
젊은 층에서 높은 지지율은 얻은 건, 모든 나라의 공통점이었다.
그렇기에 젊은 층의 여론에 힘 입어 세대 간 간극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뉴질랜드의 경우, 동성혼이 법제화되기 전 대학생들의 동성혼 법제화 찬성율은 약 85%였다.
청소년·청년 층에게 조부모와 대화하도록 격려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루이자 월 전 의원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게 혼인평등이 그들의 손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고 말했다.
아일랜드도 마찬가지. 모니냐 그리피스 대표는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국민투표 선거운동 당시 “청소년과 청년에게 부모 혹은 조부모와 대화하라고 독려”했으며, “조부모에게 전화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많은 동성 커플이 자신들의 가족과 삶을 공개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대만에서도 청소년·청년 자원활동가들이 중장년 층에게 다가가 혼인평등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진행했다.
이렇게 세대 간의 인식의 격차를 줄이고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단지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과정이었던 것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함께 평등과 존엄, 권리와 자유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 또한 이 여정이 시작되어 전개되고 있다.
작년 10월 혼인신고가 불수리된 11쌍의 동성 부부가 11건의 소송을 전국 6개 법원에 제기했고, 혼인평등을 위한 캠페인과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앞으로 이 여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보여줄 것이다.
‘동성혼 법제화’, 평등과 존엄의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