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본심
이성현 지음, 와이즈베리 펴냄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캡틴 아메리카와 헐크의 이미지. 그록
미국이 전통적 리더십을 방기하는 이 혼란의 시대를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은 21세기를 정의하는 특징이 됐으며 많은 학자, 정책 입안자, 논평가는 이 경쟁이 ‘신냉전’을 구성하는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명칭을 모색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탐구해야 하는 혼돈의 과도기에 진입했다.
그리고 여기에도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다.
현재의 미·중 경쟁을 신냉전으로 보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지정학적·이념적 투쟁이다.
민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국가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중국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정치 체제를 가졌다.
이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속된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간 투쟁, 즉 냉전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중 양국 간 군사적·기술적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2021년 찰스 리처드 미국 전략사령부 사령관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의 핵무기 비축량이 두 배, 세 배, 또는 네 배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인공지능(AI), 사이버 능력, 우주탐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벌어지는 미·중 경쟁은 사람들에게 과거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제적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무역전쟁도 미·중 관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이 양국 간 장기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됨을 알린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경제 경쟁은 냉전 시대 소련을 대상으로 사용된 미국의 경제 전략과 유사하며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전략의 일부로 여겨진다.
트럼프를 이은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위험 경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말한 디리스킹은 과도기의 전술적 용어였을 뿐 향하는 목적지는 결국 디커플링과 같았다.
그만큼 미국 정치권에서 미국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체제 경쟁자가 중국이라는 것에는 초당적인 합의가 있다.
미국인의 반중 정서는 바위처럼 단단하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동맹 형성은 냉전과 또 다른 유사점이다.
2021년 9월 미국·호주·영국은 중국의 역내 군사적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안보 협정인 오커스(AUKUS)를 창설했다.
미국·일본·인도·호주로 구성된 쿼드(Quad) 역시 같은 이유로 활성화됐다.
이러한 동맹은 냉전 시대 유럽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협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중국은 쿼드를 ‘아시아판 NATO’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미·중 경쟁을 신냉전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다.
지긋지긋한 냉전 프레임은 미·중 경쟁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과거의 틀에 가둠으로써 현재 상황의 고유한 특성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러한 프레임은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거의 냉전과 차이점 중 하나는 미·중 간의 깊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으로 거의 교류하지 않았던 반면, 현재의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통합돼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동 제한과 무역전쟁이 한창이었음에도 중국은 미국의 최대 상품 무역 상대국이었다.
총무역액은 5592억달러에 달했고 2년 후인 2022년에는 6906억달러로 증가했다.
오히려 무역 규모가 더 확대된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세계적 맥락은 냉전 시대와 크게 다르다.
기후변화와 같은 공동의 도전 과제, 세계화, 기술적 상호연결성, 생태학적 상호의존성 등 냉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것을 요구한다.
작년에 책 ‘신냉전’을 쓴 국제 전문가 로빈 니블렛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은 다른 영역에서 경쟁하면서도 세계적 도전 과제에 협력하고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다른 전면적인 냉전은 양국과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 정책은 모순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관세를 통한 경제적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모종의 거래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니얼 드레즈너 미국 터프츠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이 미국과 중국의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성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하버드대 연구교수인 저자 이성현은 중국 베이징에 11년간 거주하며 중국 칭화대, 미국 스탠퍼드대 등을 거친 미·중 관계 전문가다.
이번 책에서 그는 트럼프 집권 2기를 맞아 미국 내부 목소리를 직접 취재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미국 각계 주요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소프트파워의 약화, 미·중 신냉전의 장기화 가능성, 글로벌 리더십 공백 문제를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나아가 한국이 직면한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지금까지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고 양측 요구가 날로 거세지는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의 효용과 한계를 냉정히 재검토해야 한다.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넘어 한미동맹을 건강하게 관리하면서 동시에 한국 고유의 전략적 자율성 공간을 확장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형님보다는 깡패에 가까워졌다...“내가 잘 사는게 중요”하다는 미국의 본심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