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확인 못한 금융사 패소 확정
"위험은 분업 택한 금융사가 부담"
사진=연합뉴스
대출모집인이 사기 피해자 명의로 서류를 위조해 이중으로 대출받은 사건에서 금융사가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에게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사가 명의도용 피해자에게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대여금 반환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5일 캐피탈사 A사가 B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사건에서 캐피탈사 A사는 대출 모집업체 C사에 모집 업무를 위탁했다.
C사 소속 직원들은 신용정보 반영에 시차가 존재하고, A사가 대출 심사를 서류만으로 진행한다는 점을 이용해 범행을 계획했다.
이들은 B씨에게서 인감증명서와 예금통장 사본 등을 받아 타 금융기관에서 전세보증금 담보대출을 받은 뒤, 동일한 담보를 기반으로 B씨 명의의 대출서류를 위조해 A사에서도 추가 대출을 실행했다.
이후 A사는 B씨에게 “모집법인 직원에게 대리권이 있었다고 믿을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표현대리 책임’을 근거로 2억 원대 대여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표현대리란 민법 제126조에 따라 본인의 대리인이 권한 외의 행위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대리인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본인이 그 책임을 진다는 법리다.
1심은 피고 B씨에게 표현대리 책임이 있다고 보고 A사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B씨가 대출모집인에게 인감증명서, 통장, 휴대전화 등을 건넨 점을 들어, 대리권 부여가 있었고, 캐피탈사가 그 권한을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피고는 원고에게 대출 원리금 2억92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이를 뒤집고 B씨의 손을 들어줬다.
B씨가 문제의 대출 계약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모집인이 위조한 서류만으로 이뤄진 대출에 대해 대리행위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대출 계약이 피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었더라도, 이는 금융기관인 원고가 본인확인 의무와 대출 모집법인 사용 시 준수해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설령 모집인에게 기본대리권이 있었다 하더라도, 캐피탈사로서는 B씨가 본인의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믿을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금융회사는 대출 모집인을 통한 분업의 이익을 누리는 대신 본인 확인 기회를 스스로 제한한 거래구조를 선택한 것인 만큼, 그로 인한 불이익이나 위험은 금융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 "이중 대출 사기 당했어도…본인확인 소홀 땐 금융사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