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확보만으론 AI 강국 안 돼
산업 데이터 표준화 서둘러야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10월 마지막 주,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에 집중됐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미·중,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며 세계 및 동아시아의 경제·안보 향방에 관심이 고조됐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5년간 한국 정부와 4개 기업에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깐부 동맹’의 치맥 회동을 하는 등 세계 정상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GPU 26만 개 확보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에 날개를 달아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GPU 보유량 기준으로 보면 미국(2000만 개), 중국(100만~200만 개)에 이어 세계 3위로, AI 3대 강국 진입의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목표 달성을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며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한국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강조했듯 산업 AI 대전환(AX)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 돼야 한다.
산업 AX 최강국이 되려면 GPU 등 컴퓨팅 인프라 확보를 전제로 AI 모델, 산업 데이터, 산업별 도메인 노하우 등 3대 필수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성공은 어렵다.
정부와 기업은 이 3대 필수조건을 완비하기 위한 범국가적 연합작전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AI 모델 개발이다.
최근 정부가 국가대표 AI 기업을 선정해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본모델 개발에 착수했지만, 이미 네이버와 LG 등 국내 기업이 자체 AI 기본모델을 보유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I 기본모델이 없으면 산업 데이터의 해외 유출이 불가피해 주권을 의미하는 ‘소버린 AI 모델’ 보유는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첫 번째 조건은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인 산업 데이터 및 산업별 도메인 노하우 확보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다양한 산업에서 데이터와 노하우는 풍부하지만, AI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와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 문제다.
우리가 지향하는 산업 특화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분야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산업별 데이터의 표준화와 구조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데이터 확보 또한 무작정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기보다 생산성, 원가, 수율, 품질, 성능 혁신 등 AI 활용 대상(use case)을 먼저 정하고, 이에 필요한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모으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제조 데이터 생태계 구축에 나선 독일의 ‘매뉴팩처링-X(Manufacturing-X)’ 사업을 벤치마킹하고 협력하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산업 데이터만큼이나 산업별 도메인 노하우도 중요하다.
특히 ‘환각’(hallucination)으로 불리는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본모델인 GPT-5조차 환각률이 4.8%에 달해 산업 특화 AX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해법이 바로 산업별 도메인 노하우의 적용이다.
이 영역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로, 우리가 성공한다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초저전력 AI 반도체 개발까지 이뤄낸다면 명실상부한 AI 3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GPU 확보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은 당면 과제의 실질적 추진에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시론] 젠슨 황이 남기고 간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