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반대에 문도 못열어
해외 병원은 외자 유치로 성장
이민형 바이오헬스부 기자
“투자금을 받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면 과연 안 받겠다는 병원이 얼마나 있을까요.”
5일 만난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개원도 못 하고 민간의료재단에 넘어간 것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녹지국제병원 부지와 건물은 전날 경매를 통해 의료법인 인당의료재단으로 넘어갔다.
낙찰가는 204억7690만원. 감정가 596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녹지그룹이 2015년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아 설립한 의료시설이다.
2017년 준공 및 의료진 채용까지 마쳤다.
그러나 2018년 제주도가 법에 명시돼 있지도 않은 ‘외국인 전용 진료’를 조건으로 내걸고 제한적으로 허가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영리병원이 공공의료체계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녹지 측은 제주도를 상대로 허가조건 취소 소송을 냈다.
이후 제주도는 2019년 4월 녹지 측이 의료법상 개원 시한(허가 후 90일 이내)을 어겼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했다.
이때도 녹지 측은 해당 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내국인 진료 금지’ 허가 조건 취소 소송은 대법원에서 제주도가 최종 승소했고, 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은 녹지제주가 최종 승소했다.
긴 법정 다툼 동안 녹지 측은 병원 건물과 토지를 디아나서울에 매각했다.
디아나서울은 병원을 비영리병원으로 바꿔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하지 못했고, 결국 녹지국제병원은 경매로 넘어갔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진보·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추진된 사업이다.
국내 병원들이 외부 자금을 유치해 첨단 의료기기 도입, 신규 시설 확충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취지였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에 외국 자본의 병원 설립 근거를 마련했고, 노무현 정부는 제주특별법을 통해 외국 자본이 제주에도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 녹지국제병원이 첫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허가받았다.
해외에서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의료산업 발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허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9개 지역에 전액 외국 자본으로 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허용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K의료는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을 통한 ‘퀀텀 점프’가 시급한 이유다.
‘영리’와 ‘비영리’의 구분에서 벗어나 ‘성장’과 ‘정체’의 관점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을 바라볼 때다.
[취재수첩] 씁쓸한 제주 투자개방형 병원 매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