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나
나는 셀카를 찍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깨에 태우고요
봄의 마지막 기억이 떠오릅니다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가리키며
목에 유두 모양 종양이 생겼다고 설명했고요
엑스레이와 시티, 이어지는 검진 속에서
나는 그만 방사선에 수차례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어릴 적에 본 영화에서는
방사선을 맞은 동물이
돌연변이로 변신했어요
이제부터 나의 꿈은
괴수 김보나가 되는 것
헬리콥터가 날아들고
총을 든 군인들이 나를 둘러쌉니다
힘이 센 짐승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을 흔드는 것
옥상에 모인 사람들에게
과거의 자신에게
(하략)
힘겨운 일을 맞닥뜨리자면, 어째서인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먼 과거로부터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사진첩 속 포개어둔 갖가지 장면들을 하나씩 끄집어내 들여다보게 된다.
그 사이사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사랑의 추억이 있다는 것. 그런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 어딘가에는 ‘나’도 있겠지. 어느 따사한 봄날의 나. 꽃을 든 나. 사랑하는 나. 지금과는 조금 다른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기꺼이 손을 흔들 수 있다는 건 어떤 성숙일까. 어둑발이 내리는 여름의 침상에 누워 지나가 버린 봄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 힘겨운 가운데에서도 과거를 동력 삼아 미래를 기약한다는 것. 9월 중순에 닿아 이제 막 새 가을을 대면했으나, 언제나 그렇듯 계절은 차근히 그러나 민첩하게 자라날 것이다.
따사한 햇볕으로 샤워를 해도 좋을 봄날이 언제고 성큼 찾아들 것이다.
박소란 시인
[박소란의시읽는마음] 춘일광상(春日狂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