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채무비율 韓 50%, 외국은 100%”
외풍 취약한 韓 경제·재정 현실 달라
빚 수렁 위기 겪는 佛 반면교사 삼아
고삐 풀린 재정 다잡는 개혁 나서야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재정위기가 몰고 오는 파국적 재앙을 극적으로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프랑스는 오랜 전쟁을 겪은 데다 왕실의 사치와 낭비까지 겹쳐 나라 곳간이 거덜 났다.
빚 상환에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써야 할 지경이었다.
국채 남발과 가뭄, 흉년 탓에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경제가 파탄 났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국왕 루이 16세가 뒤늦게 귀족·성직자까지 세금을 물리는 개혁에 나섰지만 기득권세력의 저항으로 무위에 그쳤다.
성난 평민과 농민이 왕실 요새 겸 감옥인 바스티유를 습격하면서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절대왕정 체제가 붕괴하고 5년간의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그사이 50만여명이 투옥되고 4만여명이 사형당했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포함해 1만4000여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230여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에서 다시 재정발 정치·경제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114%까지 치솟았다.
재정적자도 GDP 대비 5.8%로 유로존 평균(3.1%)을 크게 웃돈다.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긴축예산안을 내놓았다가 지난 8일 의회에서 불신임당해 실각했다.
전임 내각이 붕괴한 지 9개월 만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측근인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을 새 총리로 임명하자 민심은 더 흉흉해졌다.
전국 곳곳에서 약 20만명의 시민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국가를 마비시키자’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야당은 마크롱 퇴진·탄핵까지 거론하는 판이다.
주춘렬 수석논설위원
국가신인도도 흠집이 났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즉각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저인 ‘A+’로 낮췄고 나머지 신평사들도 등급 강등에 나설 태세다.
국가부도 망령까지 떠돈다.
정부 내에서조차 “국제통화기금(IMF)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재무장관)는 말까지 나온다.
세계 7대 경제 대국 프랑스가 국제사회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한국도 나랏빚이 무섭게 불어나고 있다.
국가채무가 2017년 660조원에서 올해 1300조원, 내년 14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불과 8년 만에 두 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더 걱정되는 건 나랏빚을 가볍게 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100조원 가까이 국채를 발행하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가 넘는데 다른 나라들은 대개 100%가 넘는다”고 했다.
그런 나라들은 기축통화국이어서 위기 때 자국 통화를 찍어 방어할 여력이 있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의 경제·재정 현실과는 다르다.
IMF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비기축통화국 평균치를 추월한 데 이어 5년 뒤 위험선인 60% 안팎에 이르게 된다.
‘빚을 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씨앗론도 위험한 발상이다.
이 대통령은 “부채로 생산적 분야에 투자해 몇 배의 국민소득, (국내)총생산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13조2000억원을 들여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뿌리고 있다.
728조원에 달하는 내년 슈퍼예산안에도 아동수당, 지역화폐처럼 선심성 사업이 즐비하다.
이런 퍼주기는 별 효과 없이 혈세만 축낼 소지가 다분하다.
내년 1월부터 기획예산처가 기획재정부에서 분리돼 총리실 산하에 들어간다.
전문관료의 견제가 약화하고 정치의 입김은 더 세질 게 뻔하다.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재정을 풀어 내수와 경기를 떠받치는 게 맞다.
하지만 재정의 ‘마중물’ 효과를 바란다면 비용과 편익을 꼼꼼히 따져 중복·낭비 예산을 솎아내고 민간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고삐 풀린 재정을 다잡는 개혁도 미뤄서는 안 될 일이다.
돌이켜보면 재정중독을 제때 치유하지 못해 체제 붕괴와 민생·경제 파탄과 같은 재앙을 겪은 나라가 어디 프랑스뿐이랴. 비상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재정중독과 포퓰리즘은 결국 망국의 길을 재촉할 게 자명하다.
[주춘렬 칼럼] 李 대통령의 위험한 나랏빚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