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이해만큼 진정한 환대는 없다(There is no hospitality like understanding).” (바나 본타)
포근한 봄날 지인에게서 골프 초청을 받았다.
서울 인근 명문골프장에 비용 부담 없는 초청을 받아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빈손으로 가기 허전해 감사한 마음에 브랜드 골프 모자를 전했다.
초청받은 또 다른 멤버가 식사비를 빛의 속도로 계산했다.
초청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초청받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방정식 근의 공식처럼 척척 들어맞았다.
초청자가 메인 비용을 해결하고 작은 부대비용은 우리 몫으로 해서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갔다.
세상에 자식이라도 일방적인(One sided) 것은 없다.
만사가 그렇다.
“매너 문제로 골프 멤버가 깨지기도 하지만 불합리한 비용 처리 때문인 경우가 더 흔해요.”
경기도 여주 소재 골프장 김 모 사장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골프 전후 식사비, 그늘집 비용, 그린피 계산 문제로 종종 팀이 깨진다.
종국엔 팀을 해체하거나 불만 있는 멤버가 빠져나간다.
특정 멤버를 빼고 헤쳐 모여 식으로 따로 팀을 만들기도 한다.
필자는 요즘 소위 조폭 스킨스 게임을 자주 한다.
1인당 6만~7만원씩 거둬 최종 승자에게 상금을 몰아주어 캐디피와 점심 비용을 해결한다.
보통 식사는 골프 전에는 각자 해결하고 끝난 후에 함께한다.
한 끼 공동 식사를 원칙으로 하고 골프장에서 혼자 식사는 본인 부담이다.
습관적으로 손에 잡는 간식과 음료수도 본인 몫이다.
김 사장에 따르면 여성 골퍼들이 이런 계산에 철저하다.
조승호 대주회계법인 공인회계사는 “특별한 상황을 빼곤 공평하게 경비를 나눠야 바람직하고 원칙을 정해놓아야 기분 좋게 골프를 즐긴다”고 강조한다.
내기에서 돈을 잃고 상처받은 동반자를 배려해도 아름답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하고 패자에게는 조금이라도 돌려주면 훈훈하다.
그래야 동반자로 오래 남는다.
따면 절대 돌려주지 않는 고수 지인이 있다.
어느 날 그와 레벨이 다른 특급 고수가 등장해 상금을 싹쓸이했다.
그런데 특급 고수가 상금을 재분배하자 그가 흔쾌히 받는 게 아닌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 “내가 절대 먼저 달라고 하지 않지만 주면 받는다”는 묘한 답이 돌아왔다.
골프에서도 실력과 투자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와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는 분배주의자로 갈린다.
필자로선 그날 골프의 완성은 상처를 안고 귀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이다.
골프 도중 버디를 잡으면 기념으로 캐디에게 1만원씩 팁을 준다.
이 경우에도 동반자 전체를 합해서 한번 정도 주면 족하다.
버디 잡을 때마다 무한 반복하거나 한 사람이 팁을 남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끝나고 차라리 패자에게 돌려주면 더 유의미하다.
이웃에게 펑펑 기분 내기보다 상처받은 내 가족부터 돌보는 게 순서다.
정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면 판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해결한다.
회원권 보유자가 동반자를 초청할 때는 전체 그린피를 n분의 1로 나누는 게 배려다.
혼자만 회원 대우 가격을 적용받으면 곤란하다.
그린피 관계를 사전에 동반자에게 공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전에 회원권 보유자의 간곡한 초청에 다른 약속을 깨고 합류했는데 목욕하고 자기만 회원가로 계산하고 골프장을 빠져나간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특급 골프 초청 리스트 상단에 위치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우선 쿨하다.
골프장 등급, 티 오프 시간, 거리 불문하고 만사 제쳐놓고 달려간다.
날씨도 고려 요소가 아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클럽하우스 도착이 원칙이다.
가능하면 라운드를 돌겠다는 자세이다.
혹시 “갑작스런 초청에 불만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 순간 당신이 저를 떠올렸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라고 말하면 명답이다.
위기 때 나를 찾는다는 건 당신이 그만큼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단 한 번에 그치지 않고 향후 골프 초청 리스트 상단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야근 마치고 새벽 퇴근길이나 콩나물을 다듬다가도 전화받고 달려 나가면 늘 초청 영순위다.
외로운 고수보다 환영받는 하수 골프 인생이 더 행복하다.
카풀도 동반자 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
자기 차는 골프백이 두 개밖에 안 들어간다며 늘 남의 차에 얹혀 가면 유의해야 한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 나와 가까운 차로변에 약속 시간보다 5~10분 먼저 대기해야 현명하다.
스킨스 상금을 가볍게 보조하거나 식사비를 내는 게 카풀에 대한 배려이다.
몇 백억원대 부자라도 단돈 1만원에 서운하고 분노하는 게 골프다.
평소 씀씀이 큰 부자라도 자칫 호구로 비친다는 생각이 들면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골프장에서 1만원은 그냥 1만원이 아니에요. 액면 가치에다 기회비용이 추가되고 주관적 요소마저 가미되면 체감 가치는 훨씬 커집니다.
”
정갑영 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내기 골프는 일반경제학에 기회비용과 효용이론이 적용된다.
경쟁요소와 비교열위에 따른 자존심 상처와 허탈감이 더해지면 골프장에서 1만원은 20만원 이상 가치가 있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없다 [정현권의 감성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