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토크는요
‘노동자의 날’이자 양회동 열사 2주기를 하루 앞둔 4월30일,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북콘서트가 열렸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사회자 민선 활동가(인권운동사랑방), 이환춘 변호사(법무법인 지암), 김준영씨(비계 노동자), 정정길씨(굴착기 노동자), 조승호 건설노조 위원장, 양회동 열사 배우자 김선희씨, 김용기씨(타설 노동자), 이은주 활동가(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네요. (…) 윤석열의 검찰 독재 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꼭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주세요. 투쟁!” 2023년 5월1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은 춘천지검 강릉지청 앞에서 이와 같은 유서를 남기고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붙였다.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와 노동자 탄압 정치를 중단하라는 그의 외침은 많은 이에게 큰 울림과 상실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4월30일 오후 2시, ‘근로자의 날’이자 양회동 열사의 2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있는 전태일기념관 2층 울림터 공연장에서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에서 열린 행사라 더욱 뜻깊었다.
이 책은 ‘노가다꾼’이 아니라 ‘노동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이들의 일과 삶과 투쟁의 연대기다.
건설노동자 12명의 목소리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탄압 실태와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에 이야기를 실은 구술자에게 사인을 받고 있는 김훈 작가.
인권운동사랑방의 민선 활동가가 사회를 본 이 자리에는 구술자 3명(정정길, 김용기, 김준영)과 조승호 건설노조 위원장,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의 이은주 활동가, 이환춘 변호사, 양회동 열사의 배우자인 김선희씨가 함께했다.
이 책에 목소리를 보탠 노동자 정정길(굴착기), 김용기(타설), 김준영(비계)씨는 억울하고 참담했던 탄압의 경험과 당시 심정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간간이 농담까지 섞으며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양회동 열사의 이야기를 할 때는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고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김선희씨 또한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그는 남편에게 탄압 당시의 심경을 묻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남편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었을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이 얼마나 노조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 새삼 떠올렸다고 털어놓았다.
북콘서트의 객석에는 작가 김훈이 앉아 있었다.
구술자 중 한명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 행사를 찾은 것이다.
김훈 작가는 “도시는 크고 높고 멋진 건축물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건설 현장이 돌아가고 있다.
이 현장의 가림막을 들춰내면 그 속에는 오랫동안 고착된 불법과 부조리, 착취와 안전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이 책을 읽고 나서 새삼 깨달았다.
거칠고 위험한 노동 현장을 이토록 사랑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북콘서트를 마친 후 찍은 단체 기념사진.
이야기 손님들은 양회동 열사의 대표적인 유지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윤석열 정부의 몰락인데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노동 현장이 좀 더 안전하고 좋아지는 것. 구술자들은 이를 위해 노동자와 노조가 힘을 합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책을 기획한 이은주 활동가는 건설 현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여성과 이주노동자의 노고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건설 현장의 모든 주역들이 함께 연대할 때 더 크고 단단한 투쟁이 이어질 수 있고 우리가 바라는 현장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은 ‘남의 건물을 지으면서 내 마음은 무너지는’ 상황을 묵묵히 견뎌냈다.
건설노동자가 잃어버렸던 긍지와 자부심을 하루아침에 되찾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한다면 그날은 기대보다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글·사진 최진우 한겨레출판 편집자
김훈 작가가 사인 받으러 줄 선 북 콘서트 [.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