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에 맞설 미국인 교황에 대한 기대감도
페루 사목…“미국인이지만 5개 언어 사용 국제주의자”
신임 교황 레오 14세(왼쪽)가 8일(현지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유럽이 주도하는 추기경단은 미국인을 선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상식이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너무 강력해서 성 베드로의 왕좌에 사람을 앉힐 수 없다고 여겨졌다.
(중략)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이를 극복했다.
”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면 수석 편집자 다니엘 와킨은 8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 태생의 제267대 레오 14세 교황 선출을 두고 이같이 해석했다.
미국 출신 교황의 선출은 2000년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그동안 유럽 중심의 바티칸은 미국이 항상 과도한 권력과 대표성을 지닌 국가로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이때문에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문화의 상징과 같은 미국 사회와 교황청은 거리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마르코 폴리티 바티칸 전문가는 신임 교황 선출을 두고 “추기경단의 지정학적 대응”이라고 분석하며 “국제 무대가 무력에 의존하겠다고 위협하는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평화의 다리를 놓겠다는 미국 교황을 소개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이 언론은 “세계적인 미국인을 백악관의 편협한 미국인(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격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힘이 쇠퇴해지는 시대에 등장한 미국 출신 교황”이라는 해석도 곁들였다.
8일(현지시각) 바티칸에서 신임 교황이 선출되자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레오 14세
성직자로서의 그의 삶이 미국에만 갇혀있지 않았다는 것도 교황으로 선출된 이유로 꼽힌다.
외신들은 수십년 동안 페루에서 생활하고 2015년 페루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2023년 바티칸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탈리아로 이주한 레오 14세 교황을 미국인 범주에 가둘 수 없다고 짚었다.
그는 또 세계 가톨릭 신자 14억명 중 약 40%를 차지하는 남아메리카 교황청 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때문에 로마에서는 그를 미국인의 정체성보다 국제적 성직자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구사하고, 라틴어와 독일어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그의 교황명인 ‘레오’는 19세기 사회 참여 인식 기반 위에 현대적 사고를 수용한 것으로 유명한 교황 레오 13세의 뜻을 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878년 즉위한 레오 13세는 1891년 회칙을 발표하며 노동자의 공정한 임금, 안전한 근무환경,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 등을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빈민들을 위한 교황이었다면, 레오 14세는 노동자를 위한 교황일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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