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위원 “사전에 목차도 못 봐”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지난 4월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안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 유족이 서 있다.
연합뉴스 22년 만에 이뤄진 정부 차원의 제주4·3사건 추가 진상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행정안전부에 제출됐다.
정부 예산 28억원을 투입해 3년3개월 동안 진행한 조사지만,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6일 행안부에 따르면 추가 진상조사를 맡은 제주4·3평화재단(재단)은 보고서 제출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제주4·3사건처리과에 보고서를 냈다.
4·3특별법에 따라 정부 차원의 4·3 진상조사가 이뤄진 건 2003년 이후 22년 만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는 2003년 10월 정부 차원의 과거사 사건 조사 결과로는 처음으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4·3희생자 수를 2만5천~3만여명으로 추정하고, 군·경의 과잉진압 등을 밝혀냈다.
하지만 마을별 피해와 미군정 등의 책임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추가 진상조사를 결정했다.
이번 보고서는 재단이 2022년 3월 조사를 시작한 지 3년3개월 만에 나왔다.
보고서 작성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재단의 활동 기간이 6개월 늘어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 법이 정한 절차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3특별법 시행령은 △추가 진상조사 계획의 수립 △결과 △ 보고서 작성·발간 등의 안건에 대해 분과위원회(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위원회의 공식적인 회의는 단 6차례만 열렸고, 그나마도 조사 계획에 관한 사전심의가 대부분이었다.
2023년 12월을 끝으로는 아예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일부 위원이 재단을 찾아 보고서의 목차와 주요 내용 등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한 보고서 작성기획단이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목차와 내용, 증언채록 등을 12차례에 걸쳐 사전심의했던 2003년 진상조사 과정과는 대조적이다.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 있는 희생자들의 위패. 한겨레 자료 재단은 보고서를 제출한 지 엿새가 지나도록 이번 추가 진상조사에서 새롭게 발굴된 내용 등을 언론에 밝히지 않고 있다.
한 분과위원은 “일부 위원의 요청으로 재단이 지난 2월까지 목차와 조사된 내용을 우리와 공유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듣기로 했는데, 활동 기한이 끝날 때까지도 말이 없었다”며 “보고서가 제출된 사실도 며칠 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분과위원도 “아직 전체 목차도 못 봤고, 보고서도 못 봤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위원회 운영을 맡은 행안부 관계자는 “결과물(보고서)이 나오기 전에 한 번이라도 회의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면서도 “6월30일까지 보고서 초안을 받아서 12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돼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위원회 심의를 거친다면 (절차가) 시행령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금부터 위원회가 보고서를 검토하면 된다는 행안부의 태도는 당초 정부가 결정한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를 시작한 2022년 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는 “당시 2023년 말까지 조사를 하고 2024년 말까지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었다”며 “기간이 6개월 연장됐으니, 6월 말까지는 사전심의를 받고 위원회를 통과한 보고서가 정부에 제출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행안부의 계획대로 올해 안에 위원회가 추가 진상조사 내용을 결정한 뒤 4·3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국회에 보고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원 7명의 임기가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끝나는 데다 일부 위원은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보고서를 심의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 작성을 책임지는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좀 더 완벽하게 보고서를 쓰려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죄송하게도 분과위원회의 충분한 검토를 받지 못했다”며 “앞으로 위원들의 지적사항을 잘 수정하고 계속 보완해서 보고서를 잘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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