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미(60)씨가 두루미 인형을 이용해 ‘두루미의 멋과 흥의 시나위’를 공연하고 있다.
고규미씨 제공
한국에서 살아온 재일한국인 예술인 고규미(60)씨에게 ‘재외국민’이라는 이유로 내려졌던 예술인 지원금 반환 명령이 철회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지난 11일 고씨에게 “2020년·2022년 창작준비금 환수와 재단 사업 참여 제한 결정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월 재단은 고씨에게 2020년과 2022년 각각 300만원씩 지급됐던 ‘창작준비금지원사업-창작디딤돌' 지원금을 반환하라고 통보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재외국민' 신분인 고씨가 지원 대상인 ‘국내거주 내국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선녀춤’, ‘두루미’ 등 한국적 요소가 담긴 인형극을 선보여 온 고씨는 “나는 명백한 한국인”이라며 “재외국민이라는 형식적인 지위로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재일한국인 3세인 그는 일본 영주권을 지니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한 한국인으로, 22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재단 지원금 심사를 받기 위해 고씨가 재단에 제출했다는 주민등록초본에도 ‘재외국민'이라고 적혀있었다.
당초 무리 없이 지급된 지원금이 갑자기 환수 대상이 된 것이다.
아울러 재단은 고씨가 ‘허위 또는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받으려 했다며 2027년까지 재단의 모든 지원 사업 참여 자격도 박탈하겠다고 했다.
고씨는 지난달 재단에 이의신청을, 재외동포청에 “재외국민이라는 이유로 지원금을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민원을 접수했다.
재단을 상대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 소송도 제기했다.
고씨의 사연이 한겨레에 보도되자,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4명의 재일한국인이 합세했다.
이에 재단은 전면 재검토에 나서 고씨에 대한 처분을 취소했다.
재단 관계자는 “2022년 상반기까지는 지원 대상을 ‘국내거주 내국인'이라고만 규정했다”며 “당시 재외국민은 국내거주 내국인이 아니라는 법적 자문을 받았다.
생각하지 못한 문제라 최대한 많은 분을 구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단은 ‘2022년 하반기부터 재외국민이 제외된다'는 내용을 지원 서류에 병기했다.
이후 사업에 참여한 재외국민은 구제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지난해까지 지원금 환수 대상자가 된 재외동포는 24명으로, 이중 8명이 구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고씨 쪽에 따르면 이들도 상당수 재일한국인이라고 한다.
고씨는 “저와 같은 처분을 받은 후 아직 취소 통지를 받지 못한 재일한국인들이 여럿 있다.
연대를 통해 예술인의 권리를 지켜내겠다”고 했다.
김웅기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교수는 “국적을 직접 선택하는 다른 재외국민과 달리, 재일한국인은 태어나자마자 재외국민이 되어 재외국민 차별 문제에 더 취약하다”며 “법적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보완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재외국민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재단은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해당 사업은 저소득층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현행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론 재외동포의 소득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제외해 왔다”면서 “내년부터는 서류를 더 많이 내더라도 재외국민을 지원 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재일한국인 이유로 지원금 취소했던 예술인 재단…결국 “반환 요청 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