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후속협상 난항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으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정부가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놓고 입장 차이를 표출하는 가운데,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방미길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귀국한 이튿날 ‘릴레이 방미’에 나섰지만, 평행선을 달리는 두 나라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진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여 본부장은 김 장관 귀국 직후 방미하는 이유에 대해 “상황이 급박하기보다는 우리 정부도 전방위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균형적인 협상 결과 그리고 공정한 협상 결과를 만들기 위한 지난한 협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도 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 논의에 대한 물음에는 “신규 개방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김 장관은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투자펀드 구성, 운영, 수익 배분 등을 놓고 협의했으나 뚜렷한 진전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직전에는 정부 실무협상단이 워싱턴을 찾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작성이 불발된 이후 협의가 다시 활발해진 것이다.
하지만 대미 투자 방식 등을 둘러싼 두 나라 입장 차가 커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일본과의 합의처럼 자신들이 투자처를 정하면 필요한 현금을 한국이 송금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3500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현금으로 보낼 여력이 없고, 대출과 대출 보증 위주로 펀드를 운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관세 협상과 관련해 언급한 “이익이 되지 않으면 사인을 안 하는 게 맞다”고 한 말처럼 현격하게 불합리한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일본처럼) 합의를 받아들이거나 관세를 내라”(러트닉 장관)는 미국과 대립하는 양상이다.
정부의 태도는 감당하기 어렵고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느니 관세에 따른 손해를 어느 정도는 감수하며 버티자는 여론이 커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대미 투자펀드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반을 넘는 금액”이라며 “미국 요구대로 하면 당장 환율이 어떻게 되겠는가. 아이엠에프(IMF) 사태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전에 대비”하고, 한편으로는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검거 사태와 조선업 협력 등을 고리로 미국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교착상태가 길어지면 최대 대미 수출품인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보다 먼저 협의를 마무리 지은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품목관세율은 16일부터 27.5%에서 15%로 내려간다.
한국은 지난 4월부터 자동차 품목관세로 25%를 내고 있다.
한국이 일본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되면, 주요 수출 차종에서 가격이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는 2분기에 미국 관세 때문에 영업이익이 1조6142억원 감소했다.
미국이 한국 상품 전반에 매기는 상호관세율을 15%에서 25%로 되돌리는 등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으로서는 협상을 계속하는 동시에 “미국 시장 의존율을 줄이면서 국내 제조 공정을 효율화하는 등 생산비를 줄이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산업장관 이어 통상본부장 방미…‘일 자동차 관세 15% 발효’로 긴장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