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민생쿠폰)이 농촌에선 '쓸 곳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급한 쿠폰을 정작 지역에선 사용할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사용처 제한이다.
민생쿠폰은 아직 가맹망 구조나 지침이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현행 지역사랑상품권 시스템과 유사한 인프라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동일한 가맹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경우 연매출 30억원 초과 사업장은 가맹 등록이 불가능해져 농촌의 핵심 생활 유통망인 하나로마트가 대다수 제외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마트나 편의점이 전무한 면 단위 지역에 한해 예외를 뒀지만, 이는 전국 하나로마트 2200여곳 중 6%에도 못 미친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농촌 주민이 쿠폰을 받아도 사용할 곳이 없는 셈이다.
농민단체들은 하나로마트가 단순한 유통시설이 아니라 생필품 구매, 지역경제 유지, 농산물 유통까지 아우르는 '생활기반'이라고 지적한다.
쿠폰을 줬지만 사실상 '쓸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정책 체감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농촌 주민들은 농협 계좌로 연금을 받고, 그 통장에서 바로 하나로마트에서 생필품을 결제한다.
농산물 판매 대금도 농협 통장으로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하나로마트에서 소비가 이뤄진다.
이런 소비 구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선택지가 없어서 생긴 필연에 가깝다.
그런데도 매출액 기준만으로 사용처를 제한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이다.
상권이 밀집한 도심과 하나로마트 하나뿐인 농촌을 같은 기준으로 묶는 건 정책이라기보다 편의적 분류에 가깝다.
정책은 설계의 문제다.
성패는 얼마나 많은 예산을 썼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도달했는지로 결정된다.
특히 민생을 다룰 때는 숫자보다 맥락, 총량보다 도달 범위가 중요하다.
정책 전반의 방향성과 실행 기준 사이의 간극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지역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출점을 제한하고, 공공배달앱이나 로컬푸드 매장 확대 같은 상생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농촌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의존하는 유통 기반에는 동일한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책의 지향은 지역 균형에 있지만, 기준은 여전히 도시 중심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대책은 어렵지 않다.
예외 기준을 넓히거나, 아예 농촌형 가맹기준을 별도로 설계하면 된다.
단지 '형평성'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조건을 가진 지역에 같은 잣대를 들이댔던 문제를 고치면 된다.
현재 국회에는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읍·면 지역에 위치한 농협 등 생산자단체가 운영하는 사업장의 경우, 연매출 30억원 초과 여부와 관계없이 지역사랑상품권 가맹 등록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다.
현행 지침이 사용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에까지 동일한 매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주민의 이용 불편과 지역경제 위축, 식품사막화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법안이다.
민생쿠폰 제도가 아직 설계 단계에 있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제도의 뼈대를 짜는 초기에 지역별 생활 기반의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
정책은 설계로 완성된다.
민생은 결국 디테일에서 갈린다.
[ET시선] 민생은 결국 디테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