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유심 무상 교체 이틀째인 지난 4월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SKT 매장 입구에 유심 소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문희씨? 여기 전에 방문하셨던 마사지 업소입니다.
” 처음 듣는 남자 목소리였다.
010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멀쩡한 번호인데, 아내와 이따금 가는 마사지숍인가. 짧은 순간에도 남성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지금 전화한 건 무슨 광고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저는 마사지 업소를 간 적이 없는데요.”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남자가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허, 그렇습니까. 그럼 번호 지워드리겠습니다.
”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남성은 전화를 끊었다.
받은 편지함에 보낸 사람 이름이 국세청인 e메일이 한 통 있다.
메일 주소는 hometaxadmin@hometax.go.kr. 메일 본문은 사진 파일로, “국세청 전자 세금계산서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됐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누르란다.
홀린 듯 마우스 커서를 가져가던 중 퍼뜩 의심이 들었다.
찾아보니 역시나, 링크를 타고 들어가 로그인하면 계정과 비밀번호가 털리는 방식이었다.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 1건 접수…수사 협조 통지서’라는 문자가 온 적도 있다.
수법이 점점 정교해진다더니, 나는 잘 넘어갔지만 가족이 속진 않을까. 어느덧 단체 채팅방엔 “요즘엔 이런 식으로도 개인 정보 캐내나 봐”라는 경고와 화면 캡처가 가득해졌다.
지난해 결혼식을 앞두고도 피싱이 집안 내 화제였다.
아버지가 청첩 문자를 보내자 대뜸 전화를 거는 지인들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보낸 문자가 정말 맞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피싱일까봐 걱정돼서 청첩장 링크를 못 눌러봤다더라.” 한 친구는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내면 쉬이 믿었을 텐데 문자라 의심했다고 말했다.
기쁜 소식도 편히 주고받기 힘든 세상이 된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SNL코리아 속 ‘린자오밍’의 어눌한 말투와 부정확한 어휘 구사를 듣고 있자면 속는 사람이 바보지 싶지만, 현실 피싱은 그렇게 우습지 않다.
딥페이크로 얼굴·목소리를 복제하는 수법을 기사로 본 게 어제 같은데, 최근엔 가족과 똑같은 전화번호를 이용해 전화를 거는 신종 범죄도 나타났다고 한다.
정부와 은행 기관이 아무리 ‘속지 않는 법’을 홍보한대도 상상 초월 신기술보다는 늘 한 발 뒤다.
마사지 업소나 국세청 빙자 사기처럼 대응이 늘 쉬운 게 아니다.
줄곧 조심하던 사람도 때로 넘어진다.
최근 ‘유심 대란’ 속 SKT의 대응은 그래서 아쉬웠다.
해킹 사태 후 ‘유심이 입고됐으니 대리점 방문 전 본인 확인을 해달라’며 링크를 첨부한 악성 문자가 유행했다.
개인정보 유출부터 계좌 탈취까지, 우려로 안달 난 마음을 파고든 수법이다.
유심 정보만으론 치명적 범행이 어렵다는 게 다수 전문가 의견이지만, 기술을 잘 모르는 입장에선 불안이 기본값이다.
이용자로서 메시지함을 확인해 봐도 ‘SKT는 유심과 관련해 고객 개인정보를 묻지 않는다’거나 ‘url을 누르지 말라’는 등 개별 통지는 받은 게 없다.
모든 게 정부·기업 탓이란 느슨한 발상엔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일까지 각자도생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유심만 바꿔준다 하면 끝인가. 속기 쉬운 환경을 만든 책임은 없나. 가족에게 “유심 입고 알림 문자를 조심하라”고 일단 공지했지만 어쩐지 무력한 기분이었다.
속기 쉬운 환경을 만든 책임[꼬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