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아버지를 모시고 삼 형제가 귀향길에 올랐다.
아버지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나와 형, 동생은 전주에서 태어났다.
고창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아버지가 전주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하고 그곳에서 직장을 잡으면서 우리 삼 형제는 전주 출신이 됐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그랬다.
“고향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모든 곳을 고향으로 삼는 사람은 강하다.
하지만 이 또한 완전하지 않다.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
누구에게나 고향은 아름답다.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위고는 그런 감상주의를 경계했다.
편협함에 빠져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과거에만 머물며 살지 말자고 당부한다.
그보다는 보편적 세계시민을 추구한다.
사는 데가 어디든 그곳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강인함을 갖자고 설파한다.
나아가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기는 이방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언젠가는 본향으로 돌아가야 할, 어차피 영원히 살지 못할 우리에게 이 세상은 타향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위고는 어린 시절부터 군 장성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전전했다.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제정을 선포하자, 이에 반발해 벨기에로 망명한다.
그곳에서도 극렬하게 프랑스 정부를 비판하다 영국령 작은 섬으로 추방된다.
이 섬에서 16년 만에 <레미제라블 >을 탈고한다.
좋은 관계의 ‘요술램프’ 아버지에게 배워
나는 1982년에 서울에 올라왔다.
넓디넓은 서울 하늘 아래 내가 아는 사람은 고작 열댓 명에 불과했다.
나는 남산자락 해방촌 판잣집에서 하숙하는 거로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아침마다 공중변소 앞에 줄을 서고, 방안에 앉아 있으면 골목길 행인들의 발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생활환경이 취약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초중고 시절 신학기에 반이 새롭게 편성돼 낯선 친구들을 마주했을 때, ‘언제쯤이나 이 친구들의 이름을 알고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감정과 비슷한 막막함을 느꼈다.
난데없는 타향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사귀고 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곳에 뿌리내리며 살 수 있을까. 막연한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4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서울은 정들지 않는 타향이고, 나는 이방인에 머물고 있지만, 어엿한 서울 사람 행세를 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관계를 중시했다.
좋은 관계는 모든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만병통치약’이자, 내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요술램프’였다.
세상 모든 일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내가 이기면 지는 사람이 있고, 내가 이익을 보면 손해 보는 이가 있다.
내가 우월한 지위에 오르면 이를 선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기고, 이익 보고, 남보다 잘나가는 것이 관계에는 독이 된다.
사양하고 양보하고 겸손한 것이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처신하는 게 관계를 좋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내게 이익이 된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아버지는 평생 뒷전에 있는 걸 좋아하셨다.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을 한 아버지는 교장이나 교감이 될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심지어 담임을 맡는 것조차 저어했다.
재물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지는 대로 불만 없이 살아오셨다.
올해 아버지는 아흔다섯이다.
형네와 우리 집 가까운 데 살고 계신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번 고향에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떠난 네 부자의 이틀간 귀향길, 아버지는 흐뭇해했다.
그러면서 오가는 차 안에서 세 아들에게 당부했다.
이런 얘기를 언제 또 들을 수 있을까 하며 귀담아들은 이야기가 헤아려 보니 아홉 가지다.
마음속 깊이 새긴 아버지의 인간관계 원칙
첫째, 주는 만큼 받기를 기대하지 마라. 먼저 주고 잊어라. 그러면 돌려받지 못해도 서운하지 않다.
많이 주고 덜 받는 게 신간 편하다.
그렇게 살아도 절대 손해만 보진 않는다.
사람은 받은 만큼 돌려주게 돼 있다.
이를 배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열에 아홉이 배반하더라도, 배반하지 않는 한 사람에게서 준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다.
둘째, 약속을 지켜라. 특히 시간 약속과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을 잘 지켜라.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잘 지켜라. 약속의 남발을 경계하고 못 지킬 약속은 애당초 하지를 마라. 이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출발점이다.
셋째, 남 얘기를 삼가라. 남 탓하지 말고 남 뒷담화하지 마라. 그 말이 당사자 귀에 들어가도 상관없다면 해도 되지만, 상대가 없는 데서는 말하지 마라. 아무리 좋은 얘기도 말이다.
넷째, 남에게 친절해라. 이것만큼 힘들이지 않고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일도 없다.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해라. 너그럽게 받아들여라. 관계에 있어 다정함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단,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친절을 베풀라. 지나친 친절은 상대가 부담스럽고 자신에게도 짐이 된다.
다섯째, 타인의 기쁨에 동승해라. 남의 슬픔을 위로하기는 쉽다.
남의 어려움에 함께 안타까워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진정 어려운 것은 타인의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심, 승부욕, 시샘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여섯째, 도저히 함께하기 어려운 관계는 단호하게 끝내라.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미련도 갖지 마라. 헤어질 당시에는 집착과 아쉬움이 크지만, 지나고 나면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에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관계를 붙들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흘려보낼 사람은 떠나보내야 한다.
일곱째,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져라. 아비로서 강자에게 강해지란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이는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약자에게만이라도 약해져라. 약자에게 강한 건 비열한 짓이다.
강자 앞에서 비겁하고 비굴해질지언정, 비열해지진 마라.
여덟째, 용서해라. 죽을 때가 가까워져 오면 알게 된다.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
남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남에게 용서를 구하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라. 참된 평화와 안식에 이르는 길은 용서뿐이다.
아홉째, 결국 태도가 좋은 사람이 되어라. 공부 잘하고 돈 잘 벌고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태도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좋아야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
모든 건 태도에 달려 있다.
삼 형제를 앞세우고 고향을 찾았던 아버지는 이틀 내내 많은 말씀을 쏟아내셨지만, 어느 한 마디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실제로 그렇게 사셨고, 언제 또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창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기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늘 일관된 입장을 지켰다.
아마도 그렇게 한결같이 지켜온 아버지의 인간관계 원칙이 힘든 타향생활을 이겨내고 그곳에 뿌리내리는 원동력이 됐으리라.
귀향길에 들은 아버지의 인간관계 원칙[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