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법 판결 이후…잉글랜드축구협회, 트랜스젠더 선수 규정 바꿔
다른 종목으로 확산…트랜스젠더 여성 인권단체 “사실상 추방”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여성 및 여자부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대법원이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여성의 법적 정의는 생물학적 성(sex)에 근거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스포츠계 트랜스젠더 선수 규정에도 큰 전환점이 형성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최근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만이 여성부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고 규정을 변경했다.
시행은 6월 1일부터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지난 4월 11일 일정한 테스토스테론 수치 기준을 충족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새 정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불과 3주 만에 대법원판결을 반영해 이를 전면 폐기했다.
협회는 “이번 판결은 스포츠 현장에서 법적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며 “법과 과학, 제도적 환경 변화가 있는 만큼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고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인해 여성으로 등록한 트랜스젠더 선수 28명은 출전이 금지됐다.
협회는 이들에게 ‘비밀 보장 정신 상담’ 및 향후 ‘혼성 경기 신설’ 등 대안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BBC는 “협회가 3주 만에 정책을 뒤집은 것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사항”이라며 “이전 정책이 권리 충돌을 애매하게 다룬 미완의 타협이었다는 인식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마침내 자신의 스포츠를 되찾았다” 전 올림픽 수영 은메달리스트이자 트랜스젠더 여성 출전에 반대해온 샤론 데이비스는 “여성이 마침내 자신의 스포츠를 되찾았다”며 “모든 종목이 뒤따라야 한다”고 환영했다.
그는 BBC와 인터뷰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50% 더 강하게 킥을 날릴 수 있고, 키·손·발이 더 크며 골키퍼 포지션에서 역동성이 높다.
이는 안전과 경기력 모두에 영향을 준다”며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노팅엄 로스쿨 스포츠법 전문가 시마 파텔은 “이미 많은 종목이 트랜스젠더 여성 출전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규정 자체를 당장 바꾸게 하진 않겠지만,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궁극적 영향력은 정부와 기관이 얼마나 자원과 연구를 투입해 스포츠 맥락을 이해하려 하느냐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세계 정상급 여성 엘리트 선수들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선수와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가 지난해 나왔다.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와 스완지대 연구진은 2024년 4월 스포츠 학술지 ‘저널 오브 스포츠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영국,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등 세계 각국 엘리트 여성 선수 1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하키, 카누, 럭비, 육상, 수영 등 다양한 종목 선수로 꾸려진 응답군 중 58%가 스포츠는 성 정체성이나 사회적 성별이 아닌 ‘생물학적 성’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연구진이 ‘월드클래스’라고 분류한 종목별 주요 세계 대회, 올림픽, 패럴림픽 출전자 중에서는 이 비율이 77%까지 올라갔다.
자신을 여성이라 생각하거나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인식되더라도 신체적으로 여성이 아니라면 함께 경쟁하는 게 불공정하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설문에는 각종 세계 대회 챔피언 26명, 올림픽 출전자 22명, 패럴림픽 출전자 6명이 참여했다.
럭비 등 신체적 충돌이 잦은 종목 선수들은 47%가 성전환 선수와 경쟁하는 게 부당하다고 봤다.
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38%, 중간을 택한 비율은 15%였다.
육상처럼 신체 능력 자체가 매우 중요한 종목에서도 부당하다는 의견(49%)이 그렇지 않다는 쪽(38%)보다 많았다.
연구진은 “스포츠 영역에서는 ‘공정’이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부각된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양궁 등 운동능력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종목 선수들은 부당하다고 답한 비율이 32%까지 떨어졌다.
오히려 부당하지 않다는 반응(51%)이 더 많았다.
응답자 대부분(94%)은 정체성대로 생물학적인 성을 바꿀 권리는 지지했다.
종목별 주관 단체들이 성전환 선수를 위해 더 포괄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답한 비율도 81%나 됐다.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중심부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이날 집회는 대법원의 ‘여성의 정의’ 판결 이후 트랜스젠더 권리 단체, 노동조합, 지역 시민단체 등이 공동 주최했다.
AP 반면, 영국 대법원 결정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 인권단체 ‘Football v Transphobia’ 캠페인 리더 나탈리 워싱턴은 “사실상 트랜스젠더 여성 전체에 대한 추방”이라며 “트랜스젠더 인구는 매우 적고, 별도 리그를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처럼 배제당하면 스포츠 자체에서 밀려나게 된다”고 반발했다.
워싱턴은 BBC에 “나는 10년 전 남성팀을 떠났고, 지금은 남성들과 뛸 수 있는 신체 능력을 잃었다.
간혹 5 대 5 풋살을 해봐도 몸싸움에서 밀린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여성 스포츠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단지 좋아하는 활동을 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IOC, 종목별 자율 결정 유지…FIFA, 대응 안 나와 영국 대법원판결 이후 스코틀랜드축구협회(SFA)도 잉글랜드축구협회와 동일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잉글랜드·웨일스 크리켓보드(ECB) 역시 모든 수준의 여성 경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출전을 금지했다.
영국넷볼협회는 오는 9월부터 ‘여성 출생자 전용 카테고리’를 도입하고 성 정체성 기반 참여는 ‘혼성 리그’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영국육상협회도 9월부터 비슷한 규정을 시행한다.
영국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복싱과 같은 성별에 영향을 받는 스포츠에서 여성은 생물학적 남성과 경쟁할 경우 신체적 특성으로 인해 불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복싱협회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부 출전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검토 중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 스포츠 보호법(Executive Order 14201)’에 서명하면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를 연방 차원에서 제한했다.
이 행정명령은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스포츠팀을 구성하도록 지시하며, 이를 위반하는 교육기관에는 연방 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도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라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 연구소 트랜스젠더 육상선수 코디 스미스는 “트랜스젠더 선수로서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적 정체성과 운동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는 길이었다”며 “이번 조치들은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현재까지 ‘개별 종목별 자율 결정’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대응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영국발 생물학 기반 규정 강화’가 국제 스포츠계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생물학적 여성만 여성”…스포츠계 파장 본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