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전자상거래 기업 쇼피파이(Shopify)가 지난 4월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AI가 대체할 수 없는 업무에만 사람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연합외신
AI의 일자리 대체 공습이 시작됐다.
그동안 전망은 엇갈렸다.
AI가 일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상과 오히려 더 많은 직업을 창출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늘 충돌했다.
확고부동한 컨센서스는 정립되지 않았거나 유보된 상태였다.
서로 자신들만의 역사적·합리적 근거를 들이밀며 논리를 확장시키고 사회를 설득해왔다.
하지만 ‘별의 순간’을 돌파한 듯한 징후 하나가 포착됐다.
글로벌 쇼핑몰 구축 스타트업 쇼피파이(Shopify) CEO의 사내 메모 유출 사건이었다.
토비 뤼케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각 팀은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요청하기 전에 왜 AI로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썼다.
신규 직원 채용 요청을 하기 전에 AI가 왜 그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지 먼저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쇼피파이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심 조직인 점을 감안하면 AI보다 코딩을 못하는 인간 개발자를 채용하지 말라는 지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근 카카오에서도 유사한 지시가 하달됐다.
쇼피파이처럼 메모로 공개 전파되지는 않았지만, 임원들의 암묵적 지침으로 공유됐다고 한다.
핵심은 코딩 등 AI가 대신할 수 있는 직무는 신규 채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AI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남을 직종으로, 혹은 전도유망한 직업군으로 조명받는 경우가 흔했다.
약 10년 전인 2015년 9월, 영국의 BBC는 옥스퍼드대학과 딜로이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AI의 특정 직업 대체율을 계산한 기사를 내보냈는데,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20년 뒤 대체 정도는 8%에 불과했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전체 366개 직업 중 하위권인 284위에 위치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AI에서 가장 안전하지 못한 직업이 됐다.
AI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같은 직종의 개발자를 AI로 대체하는 데 가장 열성적이라는 게 역설이라면 역설이다.
‘자기 대체의 역설’이 소프트웨어 개발자 생태계에서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약 40년 전 인간의 인지 발달이 ‘전문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연구자들이 있었다.
여기엔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한다.
‘일상적 전문성’과 ‘적응적 전문성’이다.
절차와 효율에 능숙해지는 일상적 전문성과 달리 적응성 전문성은 “변화하는 환경과 새로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기존의 지식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출하며, 기술의 의미를 깊이 이해해 유연하게 적응하는 과정”을 뜻한다.
지금 개발자를 대체하려는 AI 개발자들은 바로 이러한 적응적 전문성을 획득한, 인지 발달의 정점에 있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다.
내부의 비효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적응적 전문가들이 자신이 속한 직업을 제거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주체들이다.
이 맥락에 비춰본다면, 각 직업을 AI로 대체하려는 이는 고도화한 AI를 직접 개발하는 이들이 아니라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해당 분야 적응적 전문가일 수도 있다.
업무 역량이 뛰어난 동료가 내일 나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언제나 유념할 필요가 있다.
AI 개발자들의 ‘자기 대체’ 본능[IT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