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모형 뒤로 인공지능(AI)이라고 쓰인 화면이 띄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늘날 인공지능(AI)은 인간 활동의 다양한 영역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인지 활동까지 기계가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AI는 스마트폰의 문자 자동 완성, 클라우드 기반의 텍스트·이미지 생성, 복잡한 알고리즘 설계 등 인간 활동의 한 부분이 됐다.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평균적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능들이 이제는 현실이 됐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이를 ‘수확 가속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그는 앞으로 20년 후인 2045년경에는 인간의 두뇌가 클라우드와 연결돼 인간의 지적 능력이 초월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한다.
마침내 ‘특이점’(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엔 한계
이처럼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경제 구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사람들은 AI가 경제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 경제 현장에서는 그 충격이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의 미시적 변화는 엄청나지만 경제 전체로 생산성 향상, 그리고 성장률 제고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AI의 경제적 영향은 미시적으로는 이미 다양한 현장에서 관찰된다.
음식점에서는 서빙 로봇이 손님을 응대하고, 병원에서는 AI가 진단을 보조하며, 학교에서는 행정 업무의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음식점의 경우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빙 로봇이 도입되고 있다.
이처럼 AI는 노동시장 구조와 서비스 제공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AI, 디지털 트윈 기술 등을 적용해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경남 창원의 LG전자 스마트파크에서 직원들이 생산공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경제에는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용이한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이 존재한다.
경제학자 윌리엄 보멀은 생산성 향상이 어려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도, 임금을 다른 산업과 비슷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계속 오르게 되는 현상을 ‘비용 질병(Cost Disease)’이라 명명했다.
의료, 교육, 예술 등 인간의 상호작용과 장인적 기능이 핵심인 산업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부문으로 노동력이 이동하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한다.
과거 디지털 기술의 경험을 보면, 보멀의 비용 질병은 경제의 구조 변화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기대만큼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1960년대 연평균 2% 이상에서 2000년대 1.7%로 하락했고, 한국 역시 1980년대 3% 이상에서 최근 1%대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의 평균도 2000년 이전 2% 이상에서 21세기 들어 1.5%로 낮아졌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경제성장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경제 전체의 성장률이 둔화하는 것은 주로 생산성 증가율의 하락에서 기인한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많은 활동에서 컴퓨터가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총생산성 증가는 경제의 여러 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상대적 수요에도 영향을 받는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일부 부문에 집중되고, 상대적 수요가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경우 비용 질병 현상이 발생한다.
이 경우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낮은 부문(건설·농업·개인 서비스 등)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가는 프랑스 경제학자 필리프 아기옹의 말마따나 “우리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지만 개선하기 어려운 것”에 의해 제한된다.
AI가 보멀의 비용 질병을 어디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AI와 자동화가 전통적으로 생산성 정체를 겪던 분야(의료 진단·교육 행정·일부 돌봄 업무 등)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비용 증가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환자 직접 진료, 교실 수업, 라이브 예술 공연 등 핵심 업무는 본질적으로 노동집약적이며, 품질이나 인적 요소를 희생하지 않고는 자동화가 어렵다.
AI는 행정 업무 등 일부 영역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핵심 서비스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다.
2024년 1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1회 대한민국 교육박람회를 찾은 어린이들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로봇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AI는 특정 업무의 생산성을 높여 비용 질병의 일부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의료·교육처럼 인간의 참여가 필수적인 노동집약적 서비스가 존재하는 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한계의 존재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연결된다.
만약 인간의 모든 활동이 기계로 대체된다면, 인간의 존재 의미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인간중심 서비스 등 구조적 한계는 지속
최근의 경제학 연구는 AI가 비용 질병을 어디까지 치유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제시한다.
일부 경제학자는 AI가 노동집약적 서비스 부문을 자동화함으로써 미국의 연간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0.25~0.6%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화·예술 산업처럼 창의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AI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화, TV 등 창의적 노동이 중요한 문화산업은 여전히 비용 질병의 영향을 받고 있다.
AI가 일부 부문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하더라도, 비용 질병은 노동의 재배치를 통해 여전히 작동한다.
노동은 생산성 증가가 어려운 부문으로 이동하게 되며, 이에 따라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가, 그리고 경제성장률은 제한된다.
따라서 AI는 인지 및 창의적 작업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전례 없는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비용 질병을 해결하려면 거의 모든 서비스 부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다.
결국 AI는 특정 분야의 생산성을 높여 부분적으로 보멀의 비용 질병을 완화할 수 있으나 인간중심 서비스 등 구조적 한계는 지속할 것이다.
AI가 경제성장의 저해 요인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기술혁신과 사회적 선택에 달려 있다.
핵심 쟁점은 AI가 비용 질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경제성장에 대한 저해 요인을 의미 있게 줄일 수 있는가에 있다.
이러한 논의는 앞으로도 경제학과 사회 전반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어떤 조건에서 AI 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의 속도를 올리는 생산성 향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칼럼으로 이어간다.
AI가 ‘비용 질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서중해의 경제망원경](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