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연극 <킬링시저>, 매튜 본 <백조의 호수>
뮤지컬 <팬텀>은 기형적인 얼굴의 팬텀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지원한 극장장이 팬텀의 친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극장 뮤지컬에서는 보기 드문, 본격 부자 서사로 확장된다.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은 여전히 유효할까? 2010년 전후, 입시 경쟁 필승의 조건으로 회자했던 이 우스갯소리는 들여다볼수록 냉소적이다.
아버지는 단순한 매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말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고, 부자 아버지에 기대 자녀에게 고스란히 그 후광만 전달하는 게 왕도라는 의미다.
최근 연이어서 본 네 작품 속 다양한 부성(父性)은 적어도 ‘무관심’은 지양한다.
오히려 무엇이든 함께하려 애쓴다.
아버지들은 더 이상 단순한 매개가 아니다.
그들은 때때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결국 감정의 무게와 책임을 끝까지 감당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성’을 구성한다.
공감하고 수용하는 아버지들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1910)이 원작인 뮤지컬 <팬텀>(아서 코핏 극작, 모리 예스톤 작곡·작사, 박천휘 한국어 가사, 로버트 요한슨 연출, 기진주 협력연출, 마이클 슈바이카트 무대, 김문정 음악)은 일그러진 얼굴로 태어나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살아온 팬텀(박효신·카이·전동석 분)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틴(이지혜·송은혜·장혜린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같은 원작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기본 구도는 유사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주인공 팬텀이 끝까지 판타지로 존재하는 열린 결말이다.
<팬텀>은 2막에 주인공 팬텀의 부모세대 이야기를 완성도 높은 발레극으로 연출하면서 팬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 아버지 카리에르(민영기·홍경수 분)와의 관계를 심도 있게 조망한다.
일찍 모친을 여의고 기형적 얼굴로 살아가는 팬텀을 지켜보기만 했던 아버지 카리에르는 팬텀이 사람들을 피하다 총탄에 맞은 후에야 제대로 아들과 소통한다.
사랑하는 크리스틴에게 거부당한 팬텀은 실망해 거리를 떠돌다 경찰에게 잡히고 카리에르는 평생 외면했던 아들의 마지막 소원인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총을 겨눈다.
침묵으로 일관한 죄책감을 공감과 동조로 바꾸는 부성의 회복이 작품의 핵심이다.
아들을 보내면서 부르는 작품의 대표 넘버 ‘넌 내 아들(You are My Own)’은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아버지의 비통함과 후회가 가득한 명곡이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짧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를 인식하고도 가족을 지켜내는 버드의 따뜻한 카리스마에 주목한다.
/쇼노트 제공
여린 내면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부성도 있다.
오리지널 내한공연 <백조의 호수>(매튜 본 연출·안무, 차이콥스키 작곡, 레즈 브라더스콘 무대·의상, 폴 콘스타블 조명)는 근육질 남성으로 구성된 백조의 군무가 상징적이다.
백조 본연의 생명력을 그대로 재현한,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와 소란스러운 강렬함은 획일적이지 않다.
한명 한명 다른 표정과 동작을 통해 각자가 해석한 백조의 개성을 드러내는 과정은 경이롭다.
1995년 초연 이후 많은 재해석과 논란이 있었으나 어느새 30년 전통의 클래식 공연으로 거듭나고 있다.
영국 초연 이후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토니상 연출상을 뮤지컬 부문으로 수상한 바도 있다.
대사와 노래가 없는, 발레와 퍼포먼스 위주인데도 대사가 들리는 듯하다.
그만큼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구체적이고 정확하다.
영국 왕가를 풍자한 서사로 주목을 끌었으나 지금은 정체성 혼돈의 왕자와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 의지처인 백조와의 2인무 및 군무가 극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근육질 백조들의 역동적인 아우성은 왕비에게 외면당한 왕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내면의 자아이기도, 부재인 부성의 복원이기도 하다.
지켜내려 노력한 아버지들
판타지 속 부성의 감정적 공감대는 위기의 가정을 묵묵히 지켜내는 아버지로 구체화한다.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동명 소설 원작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마샤 노먼 극작,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작·작곡, 장유정 한국어 대본, 김태형 연출, 구소영 음악, 채현원 안무, 이모셔널 씨어터 무대·영상, 이우형 조명)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의 1995년 동명 영화와 다르다.
사진작가 로버트(박은태·최재림 분)와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조정은·차지연 분)의 짧은 사랑을 그린 것은 동일하지만, 로버트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프란체스카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표적인 여성 서사다.
흥미로운 것은 극이 전개될수록 관객들은 주인공인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애절한 사랑만큼 프란체스카의 남편 버드(최호중 분)의 표정과 대처에 마음이 쓰인다는 점이다.
버드는 아내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아들 마이클(홍준기 분), 딸 캐롤린(김단이 분)과의 삶을 더 유쾌하고 따뜻하게 이끌어간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의 ‘단 한 번의 순간’(작품을 대표하는 넘버 제목)에 온통 뒤흔들릴 때도 버드의 묵직한 온기 덕에 관객들은 두 안타까운 연인을 온전히 지지하기 어렵게 된다.
감정적 승부에 개입하지 않고 삶을 지탱하는 수용적 부성의 대표적 사례다.
연극 <킬링시저>는 로마와 시민을 위해 정치적 아버지 시저를 암살한 브루터스의 공화정에 대한 신념과 대의를 향한 공명심을 들여다본다.
/토브씨어터컴퍼니 제공
하지만 공명심에 깊이 빠져들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성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재해석한 연극 <킬링시저>(오세혁 재창작, 김정 연출, 권혁 안무, 남경식 무대, 신동선 조명, 지미세르 음악·음향, 채석진 작곡)는 시저(김준원·손호준 분)와 브루터스(유승호 분)의 정치적 부자 관계의 종말로 포문을 연다.
브루터스는 공화정을 위해 정치적 아버지 시저를 살해하지만, 죄책감과 이상 사이에서 결국 무너지고 만다.
독재로 치닫는 시저를 멈추기 위해, 더 많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시저를 공개 암살한 동인은 브루터스의 명분을 능가하는 카시우스(양지원 1인2역)의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정의로 밀고 나가던 브루터스는 시시각각 변하는 민중과 동료들에게 외면당한다.
자신의 딸 포사조차 지켜내지 못한 부성은 아버지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은 포사의 영혼과 닿아 증언과 원망을 직접 듣고서야 자신을 돌아본다.
결국 시저의 정치적 욕망은 옥타비우스(초대 로마 황제)로 부활하고 브루터스의 이상도, 모든 것을 희생한 부성도 갈 곳을 잃는다.
그의 부성은 지키는 것보다 무너지는 것, 결별하는 감정에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셰익스피어의 시적 운율과 대사를 살리면서 현대극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극중 시민들과 원로원, 다양한 욕망을 드러내는 7명의 코러스(서창호·손지미·권창민·김동원·홍은표·김재형·박창준)가 기원전 로마의 세계관과 정치사회를 기묘한 퍼포먼스와 음률로 시각화한다.
아크로폴리스와 원형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상징적 무대디자인은 고대 조각상들을 모티브로 한 코러스의 퍼포먼스와 조명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무대미학으로 거듭난다.
서강대 메리홀에서 두 달 넘는 장기공연을 시저 외에 모두 원 캐스트로 소화하는 120분짜리 밀도 높은 공연이다.
이 네 작품의 아버지(혹은 아버지의 표상)는 모두 완전한 보호자가 아니다.
그들은 ‘보호’보다는 ‘감정을 감당하려는 자’로서 무대에 존재한다.
감정의 공동체 속에서 공감하며 수용하는 태도가 부상하는 시대라는 신호다.
<팬텀>은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아버지가 고통과 슬픔 속에 쏘는 총에 맞은 후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마지막을 맞이한다.
<백조의 호수> 역시 아버지를 대체하며 자신의 본질과 닿아 있는 백조의 팔에 안겨 이승을 마감하고 내세로 향한다.
이제 ‘아버지’는 감정을 나누고 고통을 이해하며 함께 책임지는 존재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권력은 단지 행동하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행동하고 감당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다.
<백조의 호수>는 지난주에 한국 투어가 끝났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7월 13일, <킬링시저>는 7월 20일, <팬텀>은 8월 11일까지 서울에서 상연한다.
부성의 재구성, 공감·수용·함께 감당하기[이주영의 연뮤덕질기](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