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식민지 지적 전통 앞에서 괴로워한 최인훈의 제3의 길
장문석, ‘최인훈의 아시아’, 틈새의시간, 2025
밑천 삼을 지적 전통, 혹은 사상가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오천 년 역사에 빛나는 문화민족이라지만 정작 현대 한국인이 더듬거리면서나마 읽을 수 있는 과거의 깊이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조차 서구를, 그것도 일본을 거쳐 베껴오다시피 한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다산 정약용보다 장 자크 루소가 차라리 훨씬 가깝다.
소설가 최인훈은 한국의 이런 ‘밑천 없음’에 가장 괴로워한 사람일 테다.
그는 ‘회색인’에서 민주주의든 지적 전통이든 모두 식민지를 밑천 삼았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날카롭게 간파했다.
그렇다면 식민지를 가진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그 자신이 식민지였던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연구자는 최인훈이 어떤 길도 거부하고 그저 ‘주저앉기’를 선택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장문석의 ‘최인훈의 아시아’(틈새의시간, 2025)는 최인훈이 지배와 예속 사이 제3의 길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다름 아닌 아시아라는 ‘보조선’을 그음으로써.
지은이는 식민지 조선의 국민학생 시절부터 말년의 소련 방문에 이르는 최인훈의 지적 여정을 꼼꼼히 추적한다.
어쩌면 최인훈은 대표작 ‘광장’부터 지극히 아시아적이었다.
‘광장’이 발표된 다음해인 1961년, 홋타 요시에의 ‘광장의 고독’이 한국에 소개된다.
번역자는 신동문, ‘광장’이 실린 잡지인 ‘새벽’의 편집자였다.
그는 한국의 신진작가가 일본 작가와 함께 겨루며 ‘공동의 광장’을 형성할 것을 요구했다.
4·19혁명을 막 완수한 한국과, 안보투쟁을 막 전개해가던 일본의 광장이 공명할 여지가 마련된 셈이다.
혁명이 열어젖힌 광장의 가능성은, 그러나 5·16 쿠데타 이후 급격히 닫히고 만다.
최인훈이 식민지를 갖지 못한 한국의 ‘밑천 없음’을 회의했던 ‘회색인’의 시기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최인훈은 임화나 박태원 같은 식민지기 작가, 특히 해방 이후 월북해 당시로선 접근이 쉽지 않았던 인물들의 작품을 자신의 글에 적극적으로 겹쳐 쓰기 시작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밑천 없음’을 사유하고 돌파하고자 했던 선배 작가들을 밑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뒤이어 도둑처럼 찾아온,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진 1970년대 데탕트의 분위기 속에서 최인훈은 아시아 여러 민족이 경험한 식민지 경험의 다양성을 뒤늦게 인식한다.
이런 깨달음이 반영된 소설 ‘태풍’은 일본군 소속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게 된 식민지 조선인이 피식민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어쩌면 전형적인 줄거리를 따른다.
그러나 조선인은 자신의 옛 이름을 버리고, ‘조국’ 조선이 아닌 인도네시아 해방운동에 투신한다.
최인훈은 소설에서 한국도 세계도 아닌, 연대와 공존의 원리로서 아시아의 가능성을 가늠했다.
‘태풍’은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운동의 열기가 식은 지 오래인 1970년대에 쓰였다.
그 점에서 최인훈의 아시아는 국문학자 권보드래의 말마따나 “가능성에 바쳐진 서사라기보다 봉쇄에 바치는 조사”에 가까울지 모른다.
최인훈이 ‘주석의 소리’에서 내비쳤듯 한국의 희망은 연대와 공존의 원리로서 아시아가 아니라 스스로의 근면을 식민지 삼는 것, 다시 말해 가혹한 자기착취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밑천 없음’을 회의한 끝에 아시아를 발견한 최인훈의 분투는 소중하다.
어쩌면 ‘한국적 근대’란 ‘밑천 없음’을 밑천 삼아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 테다.
임화를 겹쳐 쓴 최인훈이 그러했듯이.
유찬근 대학원생
*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밑천 없는 근대에서 아시아의 연대와 공존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