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오픈마이크]이주민 2세 차별 고발하는 주라사
부산 시민 주라사(왼쪽 검은 패딩 입은 이)가 2024년 12월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에 앉아 있다.
본인 제공 윤석열 내란 이후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뜨거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성 정치인 몇몇을 바꾸는 데서 그칠 수 없는, 전방위적인 사회 대개혁의 목소리입니다.
국회와 사법기관부터 시작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일상까지, 사회 구석구석을 바꾸자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한겨레21이 ‘오픈마이크’로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요.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음 좋겠다, 비록 국가 간 역사적 맥락이 있어도 그건 우리 세대 잘못이 아니라 앞 세대의 잘못이니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한 사람 안에 여러 정체성이 있어도 어느 쪽을 택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이 이야기를 자유발언대에서 하고 싶었다.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를 계기로 열린 부산 곳곳의 시민 발언에 동참하고 싶었다.
청중 속에 섞여있을 이주민 2세를 위로하려 했다.
그러나 부산 시민 주라사(필명)는 끝내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자신을 일본인 2세로 소개하는 순간 “ ‘쪽바리 반쪽이 뭘 알아’, ‘역사적인 문제는 무시하는 거냐’라는 반응이 나 올 것 같아 두려웠다.
” 하지만 가슴 안에 쌓인 이야기는 너무 많았다.
수많은 편견에 부딪히며 대한민국 사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주라사가 한겨레21과 나누었다.
  ‘전교 왕따’로 생긴 자기검열   일본에서 태어나 7살 때 한국에 왔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던 유년시절, 일본어를 무심코 썼다가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 전교 왕따를 당했어요. 아무래도 보수적인 동네이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시절이 있으니까요. 혼란스러웠죠. 제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헷갈렸고 ‘일본이 나쁘니까 내가 욕을 먹는구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나는 일본인인가보다’ 했어요. 3·1절 광복 행진을 다같이 갈 때도 ‘내가 거기 있을 자격이 있나’ 생각했고요. 그때 한 친구가 ‘그래도 너는 절반은 한국인이지 않냐, 그러면 괜찮다 ’라고 해 줘서 처음으로 ‘나도 한국인 정체성이 있나’ 생각해 봤어요.” 그 뒤로도 온전한 개인이라기보다 ‘외국인’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자주 느꼈다.
“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모아서 ‘외국어고 가라’고 설득하신 적이 있어요. 외고에 가면 학교 실적도 되고 진로도 그쪽으로 정할 수 있지 않냐고요. 고등학교 때도 선생님들이 ‘일본 쪽이니까 문과를 택하는 게 좋지 않냐’는 권유를 계속했고요.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 외의 선택지는 주지 않으려는 느낌? 저는 이과를 택했거든요. ” 이주민 2세만 따로 떼어 반을 만들자는 황당한 제안도 받았다 . “선생님 설명을 듣고 ‘뭐지’ 했어요. 우리가 이물질처럼 보이나? 다른 학생들과 말이 안 통할 거라 생각하나? 이미 각자 자기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고 다문화 가정인 걸 숨기고 싶은 친구들도 있을 텐데 굳이 반을 만들어서 서로를 알게 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어요. 화가 나서 선생님한테 따지러 갔더니 오히려 선생님이 화내시더라고요. ‘내 조카도 다문화 자녀다.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요. 다행히 그 일은 흐지부지됐지만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반감 이해하지만 배척은 답 아냐   ‘우리’에 속하지 못하고 ‘너희’로 남는 경험이 반복됐다.
일본인 2세라고 밝히면 ‘일본어 잘해서 좋겠다’는 선망과 ‘독도는 우리 땅이야’라는 반감을 동시에 접했다.
일본인 외모 비하를 일상적으로 들었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도 있었다.
2019년 수출규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자 한 중년 남성이 길거리에서 ‘일본 사람 눈에 띄기만 해라,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곁에 서 있던 주라사는 ‘일본어를 하지 않아 다행이다’, ‘외형적으로 티가 안 나 다행이다’라고 몇 번을 되뇌였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면 ‘정당한 반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일본이 저지른 일이 있으니까 한국인들이 이렇게 부르는 건 당연하다’고요.” 일본을 향한 민족적 반감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한 개인으로서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충돌했다.
“지금은 개인과 나라를 분리해서 생각하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문제예요. 일본을 향한 한국의 분노가 합당하지만 그 분노는 (일본 전체가 아니라) 패전 이후 제국주의의 영광을 바라는 일본 우익에 돌아가야 하지 않나 싶고요. 일본도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자국민들한테 계속 숨기려고만 하니까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인들이 왜 일본인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자국민도 많거든요.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계속 감추고 교육을 안 시켜서 점점 한국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 주라사는 최근 일본 문화를 본딴 한국의 거리 풍경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문화적인 교류는 이렇게 가까워지는데 역사적인 쪽에서는 (해결이 안 되니) 문제가 분명히 생기겠다는” 두려움이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두려움 커져”   주라사가 겪은 일은 일본인 2세만의 경험일까. 한국에 발 딛고 사는 이주민 가족은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원히 비밀로 해야지, 이렇게 공감 받지 못하는 이상한 결핍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했는데요. 몇 년 전 인도인 혼혈이셨던 분이 트위터와 에스엔에스(SNS)에서 ‘한국은 정말 외국인 차별 심한 나라’라면서 자신이 겪은 차별 사례를 쭉 나열한 글을 봤어요. 그걸 읽고 ‘뭐지, 나랑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4년 12월에도 남태령에서 이주민 2세로 발언한 시민(트위터명 ‘위아더해군’)이 있었다.
이주민을 향한 배척과 혐오를 멈춰달라는 요구였다 . 폭발적인 관심과 연대만큼이나 극우의 반발도 컸다.
발언자는 결국 사이버불링으로 엑스(X) 계정을 닫아야 했다.
그걸 지켜보는 주라사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중국도 일본만큼이나 한국 사람에게 혐오와 두려움의 존재잖아요 . (상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더 두렵고, 그게 혐오로 표출되는 거고요. 그걸 개인이 버티기는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발언자가) 정말 큰 용기를 내셨죠. 저도 그분처럼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 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주민 2세, 카카오톡방에 모여   최근 이주민 2세들은 남태령의 발언을 마중물 삼아 카카오톡 대화방을 열었다.
주라사도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 곧바로 참여했다.
한때 다문화 가정 전문 상담사를 지망했을 정도로 이주민 2세에 마음이 기울었던 그다.
최근 진로를 틀었지만, 같은 상황에 처한 이를 돕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혐오로 인한) 자책이 생각보다 사람을 망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려워지고 자기 자신한테 떳떳하지 못한 것 같고요. 저는 사람 앞에 나가는 게 무서워서 정신과 도움도 받고 있거든요.” 경제성장을 앞다퉈 약속하는 대선 국면이지만 그는 “방치된 과제를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지금은 성장보다는 뒤를 돌아보고, 경쟁보다는 서로를 바라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차별과 다툼이 이미 큰 상처를 남겼는데 그 고름을 치유하지 못한 채로 계속 대한민국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성소수자와 이주민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반면 한국은 그런 얘기가 전혀 화두가 안 되고 있고요.” 주라사는 우리 사회가 보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 각종 혐오표현부터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봐요. 지금은 교실에서도 혐오표현이 너무 쉽잖아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교육 대책도 정비해야 하고요. 아직은 외국인이 소수라고 무시하는 데 앞으로 저출생으로 이민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지금처럼 방치하는 건 미래 대책을 방치하는 것밖에 안 돼요. 그러니 우리에 대한 공약을 세워주시면 좋겠어요 .” 주라사가 말했다.
일본인 2세가 말하는 정책 제안 “차별과 다툼은 한국 사회의 고름…혐오표현 교실에서부터 금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