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찔러보기]밴쿠퍼 2관왕 이후 네 차례 올림픽 도전… 모든 것 쏟아부은 실패, 후배들에게 귀감
2025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25 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정수(가운데) 선수. 이정수 제공
“그 순간이 기억나요. 제 옆을 지나가는데, ‘이 구간을 아웃코스로 나간다고?’ 그냥 구경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정수(36)는 자신을 추월하는 임종언(17)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가에 헛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가슴을 허벅지에다 바짝 붙인 채, 코너 한가운데에서 원심력을 버티며 3명을 따돌리는 고등학생을 향해 비명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임종언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자부 1위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임종언의 등장은 이번 선발전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올림픽 선발전 최고령 도전에서 탈락 63명의 출전자 중 최고령인 이정수에게 19살 차이 나는 신예의 등장은 곧 자신의 퇴장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뜨는 별이 있으면 지는 별도 있는 법. ‘올림픽 재출전’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벼랑 끝”의 삶이 일단락됐다.
생애 5번째 올림픽 도전이었다.
“아쉬웠냐고요? 아니요, 너무 환영한다(고 생각했어요). 20살 차이가 나는, 주니어 챔피언과 함께 달려서 엄청 설렜어요. 랩타임을 보고 ‘사고 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2025년 4월15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정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올림픽 1500m에서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포부를 남긴 임종언의 미래는 이정수의 과거이기도 하다.
21살 대학생 이정수는 2010 밴쿠버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남자 1500·1천m), 은메달 1개(남자 계주 5천m)를 따내며 새 에이스의 탄생을 알렸다.
중장거리에 강했던 그는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에 이어 쇼트트랙 강국의 계보를 이을 인재로 주목받았다.
“메달을 딴 뒤 숙소에서 ‘다음 (2014 소치) 올림픽에서도 더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운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0년 밴쿠버에서 품었던 이 다짐은 16년간 그의 어깨를 짓누르다 2025년 4월이 돼서야 스스로 무게를 덜어냈다.
이정수는 1, 2차로 나눠서 진행된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상위 24명 안에 들지 못해 2차 선발전에 나서지 못했다.
2024~2025 시즌(보통 전해 10월부터 다음해 3월 정도까지를 한 시즌이라고 일컫는다) 막판이었던 2025년 2월과 3월, 최고령 국가대표로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밀라노 월드 투어, 베이징 세계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를 정신없이 소화한 게 독이 됐을까. 박지원, 장성우 등 직전 국가대표 에이스들 역시 이번 선발전에서 무더기로 탈락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이정수에게는 이제 다음이 없다.
그렇게 뛴 2024~2025 시즌이 사실상 마지막 불꽃이 됐다.
사실 2024~2025 시즌 전부터 ‘은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고, 국내대회에서 순위권에도 못 들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다.
국가대표가 되지 않으면 소속팀 서울시청과 재계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밥벌이가 끊기는 순간”을 의미한다.
절박한 상황, 선수 인생 통틀어 가장 긴장됐던 2024~2025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을 5위로 통과해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다.
그는 ‘나이 먹고 아직도 운동한다’는 시선을 극복하고자 진천선수촌에서 지각 한 번 없이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
중국의 귀화 제의 거부한 이유 2025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25 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정수(맨앞) 선수. 이정수 제공 돌이켜보면 “올림픽 출전, 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지독한 도전의 순간들이었다.
이정수는 2014 소치, 2018 평창,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 곧바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해 다시 선발전에 도전했다.
쇼트트랙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올림픽 출전을 위해 수차례 종목을 바꾸는 사례는 이정수가 유일했다.
하지만 올림픽은 번번이 이정수를 외면했다.
그는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평창과 베이징에서 후배들을 지켜봐야 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중국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귀화해 자국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지도해달라’는 제의가 왔다.
하지만 “훈련은 가능하나 태극마크를 달고 뛰겠다”는 조건을 굽히지 않아 무산됐다.
“한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고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올림픽을 향한 마지막 도전은 길동무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2010 밴쿠버,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계주 은메달리스트인 동기 곽윤기도 ‘금메달’을 위해 다시 빙판에 서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2024~2025 시즌, 이정수가 최고령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이 곽윤기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곽윤기는 2차 선발전까지 진출한 유일한 30대 선수였지만, 끝내 대표팀에 승선하진 못했다.
그는 경기가 끝나고 “정수가 1차 선발전을 끝내고 (탈락한 뒤) 내 손을 잡아주고 갔다.
이 녀석 몫까지 달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며 “30년 쇼트트랙 여정을 여기서 마무리한다.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정수는 가족과의 삶 대신 올림픽 도전을 택한 대가를 앞으로의 육아로 치를 예정이다.
“선발전이 끝나니 되게 후련했어요. 아들이 보고 싶었고요. 아내와 아들이 제 도전을 위해 계속 참아주고 기다려줬기에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했습니다.
” 평일은 진천, 주말은 육아로 보낸 지난날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준비 정말 열심히 했으니 아쉽진 않아요.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은 제게 있다는 것을 알기에 후회하지 않아요.” 친구 곽윤기는 이번 선발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정수는 계약상 2025년 말까진 선수로 뛴다.
다시 10월부터 2025~2026 시즌이 시작돼 국내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재계약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놓아줄 생각이다.
흰머리가 늘어날수록 성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떤 생각과 어떤 목표 의식을 가지고 운동에 임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어요. 제 오랜 선수 생활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금메달리스트보다 도전하는 선수로 기억되길”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 부츠를 신었던 그는 이제 갈림길에 섰다.
은퇴 역시 선택지 중 하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보단 항상 도전하는 선수로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벼랑 끝에 있었지만, 이 선수는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언제든 이겨냈던 선수로 남고 싶어요.” 이정수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여전히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다.
    이정수 선수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신었던 부츠. 이정수 제공  
열일곱 임종언이 추월할 때, 서른여섯 이정수는 그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