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밥상]산과 흙에서 식재료를 얻으며 느끼는 봄의 감촉과 냄새
“같이 가자. 이 아가씨야.”
엄마는 이혼 경력자이자 불혹을 앞둔 나를 여전히 아가씨라고 부른다.
한참 어린 스태프들 앞에서 ‘아가씨’ 호칭을 듣자니 유독 머쓱하다.
자식을 보는 시계가 아가씨 시절에 멈춰버린 엄마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늙어가는 나는, 사라져가는 집밥 레시피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 쪼그려 앉아 봄을 캔다.
나뭇가지 끝에 솟아오른 두릅과 붉은 흙 위로 고개를 든 초록의 머위를 뜯어 바구니에 담는다.
어떤 식재료는 시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산과 흙에서 직접 얻는 것임을 몸으로 배운다.
발밑의 흙, 손끝의 감촉, 바람에 스치는 머위잎의 냄새까지… 이 모든 것이 레시피의 일부다.
정지된 사랑과 흘러가는 나날처럼, 사라질 운명의 집밥 레시피와 그 맛을 붙잡고자 하는 다큐멘터리는 서로를 향한 시간의 줄다리기를 한다.
이 작은 기록이 시작된 바로 그날, 티브이(TV)에선 조기 대선 관련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이 물러난 자리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등에 업은 후보들이 줄지어 무대에 오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점점 무뎌지는 감각. 어떤 이름을 뽑든, 삶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지만 더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후보가 ‘우리’의 삶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우리’는 ‘국민’ 이전에 사람이고, 시민 이전에 생명인 모두를 말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책 없이 뜨거워지고야 마는 우리의 집 지구에 살고 있는 ‘모두’. 선거와 정치는 일시적인 국면일지 몰라도, 기후위기와 생존의 문제는 끼니마다 우리를 찾아온다.
흙 묻은 손으로 머리를 넘긴다.
엄마는 가뿐하게 머위를 씻고 데쳐 새콤한 장아찌로 만든다.
거창한 노하우나 재료 없이도 가족의 끼니를 40년간 차려온 책임감과 정직함은 어떤 공약보다 신뢰 가는 삶의 기술이다.
엄마의 머위장아찌를 잘게 잘라 들기름에 볶는다.
탱글탱글하게 삶아진 링귀니를 장아찌 위로 붓고, 장아찌 간장을 국자로 떠서 간을 맞춘다.
새콤하고 고소한 향이 퍼진다.
불을 끄고 들깻가루를 포근히 뿌려 골고루 섞는다.
나는 채식을 한다.
누군가에겐 이상하고 불편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이 선택은 내가 무력해지지 않기 위한 작은 정치였다.
입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폭력의 사슬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보다 적은, 최소한의 폭력과 죽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엄마가 매일 같은 손길로 밥상을 지켰듯, 나도 매 끼니 신념을 지키고자 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엄마의 손맛과 나의 선택이 교차하는 기록이다.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애써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이 레시피가 멸종되지 않길 바라며.
글·그림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카메라 앞에 쪼그려 앉아 봄을 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