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난항 겪으며 외통수 몰린 국민의힘
김문수 한덕수 단일화. 연합뉴스
자중지란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2025년 6월3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국민의힘 얘기다.
원래대로라면 네 차례 경선을 거쳐 5월3일 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김문수 후보가 대권주자로 달려야 하나, 당 지도부가 김 후보에게 ‘그만 자리를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뒤늦게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을 위해서다.
김 후보가 5월8일 대선 후보의 당무 우선권을 발동하면서 “당 지도부는 강압적 단일화 요구를 중단하라”고 촉구하자 권성동 원내대표가 즉각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한다”고 반발하는 등 국민의힘은 ‘윤석열 내란’으로 인해 열리는 조기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도 반성 없이 당내 세력 다툼에만 매몰된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의 단일화 험로는 대선 초기부터 예견됐다.
2025년 4월4일 ‘1호 당원’인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탄핵됐음에도 국민의힘에선 11명이나 대선 경선에 나섰다.
한동훈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등이다.
여기에 한덕수 전 권한대행은 없었다.
대선주자들이 한 달 간 치열한 경선을 거쳐 8명, 4명, 2명, 1명으로 압축되는 동안에도 한 전 권한대행은 침묵했다.
그렇다고 불출마 선언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의 국정 운영을 적극 홍보했다.
권한대행 복귀 후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기습 지명해 윤석열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는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 중 ‘대선에 출마하겠냐’는 질문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급기야 4월22일 친윤석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민 추대위원회가 꾸려졌다.
국민의힘 경선은 자연스럽게 ‘한 전 권한대행과의 단일화’가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홍준표 후보와 한동훈 후보, 안철수 후보 등은 “상식에 반하는 정치 행태”, “해당행위”, “외부 수혈이 아니라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비판했다.
오직 김문수 후보만이 단일화에 긍정적이었다.
“단일화가 가능하다면 좋은 것 아니겠냐”(4월11일 국회 기자 브리핑), “경선에서 승리했는데 한 대행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내가 먼저 단일화를 제안하겠다”(4월14일자 조선일보) 등을 공언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5년 5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문수 대선 후보를 향해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와의 조속한 단일화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후보는 눈에 띄게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두둔하는 행보를 보인 후보다.
2014년 경기도지사 퇴임 이후 국회 진출에 실패하며 ‘올드보이’로 전락했던 그는 윤석열 정부 들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노동부 장관으로 중용되며 정치적으로 부활했다.
이에 보답한 듯 김 후보는 국무위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함께 일어나 계엄에 대해 사과한다고 고개 숙일 때 혼자만 앉아있거나 “대통령께서 계엄을 선포할 정도의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하는 등 계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이어가며 윤석열에 대한 충성을 여러 차례 증명했다.
김 후보가 극우 세력의 지지를 흡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막상 한 전 권한대행이 5월4일 출마선언을 하자 김 후보의 태도는 달라졌다.
“당이 나를 (대선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 후보와의 1 대 1 단일화가 아니라 ‘원샷 단일화’, 즉 반이재명 빅텐트 아래 대선주자를 하나로 모으는 단일화까지 함께 진행하자고 요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이미 독자 완주를 선언한 상황에서 3자 단일화를 꺼내면 5월11일인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까지 단일화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제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후보와 김 후보는 갈등 끝에 5월7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단일화를 위한 회동을 가졌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당 내홍으로 번졌다.
당 지도부가 당원들에게 단일화 찬반투표에 부칠 목적으로 전당대회를 개최하려 하자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정당의 지역 책임자) 8명은 ‘전당대회 소집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경선주자들도 “한덕수 후보가 점지된 후보였고 우린 들러리였느냐”(안철수 후보), “무상열차를 노리고 윤석열 아바타를 자처한 한덕수”(홍준표 후보) 등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시간은 누구 편일까. 당장 마음이 급한 것은 한 후보 쪽이다.
한 후보는 여론조사(중앙일보 의뢰 한국갤럽 5월3~4일자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선 36% 지지율을 기록해 33%인 김 후보를 소폭 앞서고 있지만, 무소속이어서 5월11일까지 국민의힘 후보자로 등록하지 못하면 입지가 좁아진다.
기탁금 3억원 등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선거 운동 기간 정치적 지원도 어렵다.
한 후보가 5월7일 김 후보와의 회동을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선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배수진 아닌 배수진’을 친 까닭이다.
어렵사리 한 후보로 단일화하더라도 국민의힘의 대선 가도는 가시밭길이다.
한 후보는 공직 생활 외에 선출직 경력이 없다.
60일 안에 구체적인 정책 공약을 채워나가고 출마의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증명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한 후보는 5월2일 전남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가 시위대에 막혀 참배를 못하게 되자 “저도 호남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 발언 직후 한 후보가 평소 전북 전주 출신임을 숨기고 서울 사람 행세를 했고, 지역 현안에 냉담했다는 지적이 전북지방변호사회 등을 통해 나왔다.
같은날 서울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으나 오세훈 서울시장만 만나고 정작 쪽방촌 주민들은 외면하는 모습으로 지탄받기도 했다.
5월6일 참석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선 질의응답의 상당 시간을 국정 관련이 아닌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의혹 제기(‘배우자가 무속에 지대한 전문가’) 해명에 할애했다.
조곤조곤하던 말투가 해당 대목에서 크게 높아지며 카메라를 향해 여러 차례 삿대질하는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한 후보는 ‘내란 우두머리의 국무총리’였고, 내란 이후에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계속 미루다 탄핵됐으며, 탄핵 기각 이후 복귀해서도 대통령 ‘안가’ 회동 참석자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기습 지명하는 등 헌법재판소에 부단히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중도층을 향한 외연 확장에 근본적인 제약이 있다.
참여연대는 5월2일 성명을 내어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 헌정 질서 파괴의 부역자이자 책임자가, 내란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가 2025년 5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단일화 관련 회동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국민의힘의 더욱 큰 문제는 김 후보가 이런 한 후보보다 더욱 외연 확장에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후보가 당 지도부와 극한 갈등을 벌이면서 국민의힘은 외통수에 처하게 됐다.
안 그래도 ‘내란의 강’을 건너지 않아 불리한 대선 구도에서 당내 내홍까지 발생하면서 더더욱 지지자들의 외면을 사게 됐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국민의힘이 무리하게 단일화를 강제하다가 후보를 아예 못 낼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주호영 의원은 5월7일 밤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 후보가 반발해) 법원에 가처분을 내면, 우리가 아예 후보를 못 낼 수도 있다.
법률이 문제 되면 정치적 선택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정말 안전하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중지란 국민의힘… 김문수인들, 한덕수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