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지의 새벽을 달리다]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불량배, 건달을 사랑한 보르헤스의 땅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길거리 서점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가명 추리소설을 썼다.
사진 신동호 제공 칼끝이 유(U)자 모양으로 된 단도, 그건 후안 알마다의 것이었다.
유명한 칼잡이였던 후안 알만사는 열네 살 때 저지른 첫 살인 때부터 칼자루가 나무로 된 단도를 썼다.
후안 알마다와 후안 알만사는 서로 시샘했다.
그건 사람들이 자신들을 혼동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랫동안 서로를 찾아다녔지만 만나지 못해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잊힐 만했는데, 두 청년의 또 다른 이야기로 기이하게 이어진다.
두 칼은 진열장에서 기다렸다.
사소하게 시작한 우리아르떼와 둔깐의 다툼은 목숨을 건 싸움으로 번졌고, 이들이 칼을 골라잡았을 때 칼들이 부르르 떨었다는 증언도 있다.
칼싸움이라곤 해보지 않은 두 청년이 근사하게 싸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날 밤 싸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무기들이었다고 여긴다.
둔깐을 죽인 것도 우리아르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습은 반복과 무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만남’의 내용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곱씹어본다.
칼들이 일으킨 싸움, 보르헤스는 소설을 이렇게 마친다.
‘물건은 인간보다 더 오래간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날지 누가 장담할 수 있으며, 그들이 서로 다시 만나게 될지 누가 알랴.’ 굳이 해석해보자면(보르헤스는 작가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온전히 독자의 것이라 했으니) 세계의 진정한 모습은 반복, 무한이라는 것이다.
카이사르, 링컨, 케네디의 암살이 그랬고 폭력도 그럴 것이다.
예상치 못하고, 후배들과 발 가는 데로 찾은 식당에서 단도들과 마주친다.
스테이크 썰기용 칼을 고르라고 웨이터가 가방을 연다.
팜파스의 목동, 가우초들의 품에서 일생을 보냈을지 모를 칼들이다.
조심스럽게 잡는다.
어떤 원한을 간직하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육즙이 칼끝에서 붉은 피처럼 맺혔다.
새벽 일찍 운동화를 신는다.
보르헤스를 만나려면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에 가야 한다.
그의 동상이 거기 있다.
1946년 집권한 후안 페론은 선심성 정책으로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독재자였다.
보르헤스는 페론을 싫어했다.
페론은 책과 문학을 싫어했다.
페론이 도서관 사서였던 보르헤스를 가축 검사관이라는 엉뚱한 직책으로 발령한다.
모욕을 삼킨다.
보르헤스의 명예가 회복된 건 1955년이 되어서다.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됐지만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는 텅 비었다.
시위대를 염려해 통행을 제한한다.
기우다.
혼자 달리며 생각한다.
보르헤스는 언제나 미로에 갇혔다.
책장과 책장 사이, 문자와 침묵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걷기도 어려웠다.
한 번도 땅 위를 달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르헤스만큼 보이지 않는 길을 많이 달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빛을 잃었지만 고독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반복과 무한 안에서 장거리 달리기와 같이 서서히 변해 도달해가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작가 보르헤스의 동상,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곁에 있다.
사진 신동호 제공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린 사람 보르헤스는 칼잡이, 싸움꾼, 불량배, 건달들을 사랑했다.
미로와 도서관, 시간과 기억, 거울 같은 형이상학적인 단어로 보르헤스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의외겠지만, 그에게 건달은, 오랜 친구이자 적인 두 사람이 감옥에서 나와 만났을 때 “어디에 새겨주면 좋겠어?”라고 자극하고, “여기” 하면 상대의 얼굴을 베고는 얼싸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용기를 하나의 종파로 선택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보르헤스가 마크 트웨인을 인용한 글에 따르면 ‘아무하고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다.
트웨인은 미국 네바다주의 살인자들이 대부분 자기들끼리 죽고 죽였으며 평온하고 온화한 시민들은 좀처럼 괴롭히지 않았다고 적는다.
그것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들 부류가 아닌 사람을 죽이는 그런 싸구려 행위는 자신의 명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우초들의 칼의 시대, 트웨인이 겪었던 총의 시대에 모든 건달이 그랬을 리 없다.
보르헤스도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항상 실현하지는 못했고 그중에는 허풍쟁이와 겁쟁이들도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왜 보르헤스는 그들을 사랑했을까. 사랑한다고 말했을까. 또 굳이 해석해보자면, 트웨인도 보르헤스도 모두 문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폭력에 대비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미화하고, 그들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폭력의 주체들을 ‘자기들만의 세계’ 안에 머물게 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 주변의 모든 폭력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다.
다만, 폭력이 모든 삶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영화 ‘대부’에서 돈 코를레오네는 ‘가족, 명예, 충성’의 가치를 신봉한다.
폭력을 피할 수 없다면 폭력을 의례화하고 규칙화해야 한다.
무력을 가지지 않은 이들의 지혜다.
‘대부’ 역시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하지만, 마피아에 부여된 가치는 폭력을 예측 가능하고 제한적인 것으로 만든다.
폭력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한 방어벽이 된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분한 삼류 건달 병두도 ‘쪽팔리지 말고, 다구리를 맞지도 말고, 밥은 굶어도 구두는 닦아야 한다’고 동생들에게 가르친다.
병두의 ‘건달사상’이고 그들만의 세계다.
‘공공의 적’에서 경찰 철중이 깡패들을 제압하고 그들에게 하는 말은 우리, 평범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다.
“깍두기들은 민간인들의 세계로 절대 넘어오지 않는다.
” 부에노스아이레스, 보르헤스의 동상을 찾아갔다가 에바 페론의 동상을 만났다.
사진 신동호 제공 폭력, 오래된 본능과 오래된 무력함 세계 곳곳,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성인들이 등장했던 의문을 풀어본다.
카렌 암스트롱이 ‘축의 시대’에서 탐구했던 종교의 탄생이다.
그 시기는 청동기 시대 안에서 출발한다.
청동은 이전의 재료들과 다르다.
돌이나 나무, 대퇴골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로 만들어진다.
폭력 역시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량 학살, 전쟁, 대규모 약탈, 지배가 가능해진다.
폭력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능이며, 가장 오래된 무력함이다.
폭력의 크기에 같은 크기로 맞서는 것은 잠시뿐이다.
고대인들은 천둥과 번개를 신의 분노라 이름 붙여 신화로 둘러쌓았다.
자라투스트라, 부처, 공자 같은 성인들은 피와 칼날을 신성한 의식으로 치장했다.
종교가 “이 전쟁은 신의 뜻이다” “이 희생은 신성한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폭력을 고립시키려는 의도였다.
정당한 전쟁, 신성한 의무를 만들어냄으로써 폭력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조금 멀어졌다.
폭력은 그렇게 신이나 왕, 사제, 전사 계급 같은 특별한 존재들의 몫이 됐다.
평범한 이들은 위대한 영웅이 되지 않아도, 거대한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조용히, 끊임없이 폭력을 섬에 격리시켰다.
아주 깊고도 절박한 생존의 지혜였다.
오늘날의 국가권력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법, 군대, 국가 의식을 통해 폭력을 특정한 의미 체계 안에 봉합한다.
미국은 한때 상비군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무력은 두렵고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1787년 미국 헌법은 문민통제의 원칙을 핵심으로 삼았다.
군대는 정치가 아니라 법과 국민의 명령에 복무한다.
독립전쟁을 이끈 조지 워싱턴은 ‘왕’으로 추대되기도 했지만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다.
해리 트루먼은 전쟁 영웅 맥아더를 전격 해임한다.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은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기업들의 쿠데타 제안을 의회에 고발한다.
우리에게도 명예로운 행동이 쌓였다.
유신 독재에 반대했던 채명신 장군은 국립묘지 장병 묘역에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장태완 소장과 김오랑 중령은 12·12 쿠데타에 항거했다.
1980년 5월18일, 육사 출신인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은 신군부의 발포 명령, 과잉 진압을 거부했다.
12·3 비상계엄의 어처구니없는 무력 동원 가운데에도 우리에게는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과 김형기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특전대대장의 정직한 모습과 일반 병사들의 항명이 눈물겨운 사례로 남았다.
모두 고독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줄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보르헤스의 지적처럼 오늘날은 오히려 더 난폭하고 흉포하며 아주 위험하다.
‘평화의 시기’ 같은데 계엄, 거금 횡령, 방화, 산업재해, 테러를 목격한다.
원한을 품은 칼들은 언제 다시 서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민주주의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다.
폭력 역시 법으로만 막아낼 수 없다.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사례를 축적해야 한다.
명예롭게 행동하도록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다.
폭력과 무력이 복잡해진 만큼 이를 막아내는 것 역시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 좋은 제도, 좋은 문화가 모두 겹쳐야 가능하지 싶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새벽 항구에서 범선을 만났다.
사진 신동호 제공 더 복잡해지는 폭력과 무력 보르헤스는 말한다.
“우리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길을 잃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가는 길이다.
” 거듭해서 굳이 해석해보자면,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에서 정연한 질서를 찾느라 애쓰지 말라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에서 보르헤스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서 생각한다.
고독 속에서 달리는 자만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다다를 수 있다.
달리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신의 리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달리는 사람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자아의 경계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 미약하지만 빛나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무명의 서민들이 구해낸 무언가를 고독 속에서 발견한 보르헤스처럼 말이다.
그는 탱고도 사랑했다.
탱고를 들으면서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변두리의 길모퉁이에서 싸우다 고독하게 죽은 그들을, 보르헤스가 진정 사랑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8번의 순방으로 40개 나라를 방문했다.
신동호 시인은 연설비서관으로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순방 일정을 보좌했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낯선 나라를 달렸다.
그때 보고 느낀 감정은 문 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떠나며’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함께 묵혀놓았던 순방지의 새벽 이야기들을 4주마다 연재한다.
길을 잃는 것 자체가 우리가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