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근 “사전 점검 자리로 이해”―이진우 “불평불만 하는 정도”
‘상황 인지’는 공모 가담 판단 열쇠… 대법 판례는 폭넓게 적용
(왼쪽부터)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약 한 달 전인 2024년 11월9일.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육군특수전사령관(특전사령관) 곽종근, 수도방위사령관(수방사령관) 이진우, 국군방첩사령관(방첩사령관) 여인형을 불러 함께 식사했다.
(이하 직위명 생략) 이들은 윤석열이 일으킨 12·3 내란에서 중요임무에 종사하고 직권을 남용해 부하들에게 위법한 명령에 따르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
제1558호 기사 참조
)
앞서 이진우는 이 모임을 공지한 여인형에게 “장관님께 건의드려 모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2024년 9월2일 김용현 당시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더불어민주당이 ‘후보자가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시절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경호처장 공관으로 불러 계엄을 모의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했고, 10월8월 국정감사에서도 민주당이 그와 유사한 질의를 한 터라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사건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곽종근에게 신문 집중된 이유는
하지만 11월9일 한남동에 있는 국방부 장관 공관 2층 식당에서의 모임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김용현은 세 사령관에게 대통령이 잠시 들를 것 같다고 말했고, 그 말대로 윤석열이 중간에 합류했다.
이진우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대통령께서 (과거) 사법고시 8수(실제로 윤석열은 9수 끝에 합격)를 하게 된 상황과 (…) 본인이 추진한 정책들은 무조건 반대하는 야당의 모습, 정부의 국외정책 성과를 깎아내리는 언론 성향(을 이야기했고), 믿었던 한동훈(당시 국민의힘 대표)에게 실망이 크고 본인이 살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많이 당했다고 푸념했습니다.
시국 이야기는 짧았습니다.
”
이진우는 그때 윤석열이 한 말을 “술 드시면서 하는 불평불만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곽종근은 대통령이 단순히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대통령(윤석열)이 있는 자리에서 장관(김용현)이 사령관들에게 ‘각자 한마디씩 하라’고 해서 여인형이 ‘국회,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당사, 여론조사꽃’에 대해 언급했고, 저와 이진우는 ‘예하 부대 준비태세를 잘 유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반면 여인형은 “특전사령관(곽종근)이 11월9일 모임에서 제가 국회, 선관위, 민주당사, 여론조사꽃에 대해 언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모임 맥락상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특전사령관이 왜 그런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비상계엄 선포 전 윤석열, 김용현과 함께 몇 차례 식사한 군사령관들의 진술은 엇갈리고 있다.
그 차이가 겉으로 드러난 자리가 2025년 4월30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이었다.
여인형과 이진우, 그리고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가 구속기소된 사건 공판 심리가 진행된 이날, 곽종근에 대한 증인신문만 5시간 넘게(오전 10시20분께~오후 5시10분께·휴정 시간 제외) 진행됐다.
곽종근은 특전사 병력 460여 명을 국회로 출동시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방해를 시도하고, 다른 특전사 병력을 선관위 과천청사(130여 명)·선거연수원(130여 명)·관악청사(180여 명) 등에 출동시켜 해당 기관 봉쇄를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이진우는 수방사 병력 210여 명을 출동시켜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방해를 시도한 혐의, 여인형은 비상계엄 선포 후 당시 국회의장 우원식, 민주당 대표 이재명,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등 주요 인사 10여 명을 체포해 수방사 지하 구금시설로 이송할 체포조 편성을 지시하고 방첩사 병력 110여 명을 선관위 과천청사로 보내 전산실 내 서버 반출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군검찰과 피고인 변호인들의 신문(검사 또는 변호인이 증인 또는 피고인에게 공소사실과 관련된 사항을 묻는 절차) 내용은 뚜렷하게 갈렸다.
군검찰은 곽종근을 신문하는 형식을 빌려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여인형과 이진우, 곽종근이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 반대로
피고인 변호인들은 공소장 내용 중 ‘윤석열과 김용현 및 군 지휘관들의 사전 모의’ 내용을 반박하는, 즉 비상계엄을 사전에 공모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곽종근의 증언을 통해 보강하려는 신문에 주력했다
.
2024년 10월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윤석열(앞줄 오른쪽)이 당시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군의 날 당일 , 반국가세력 일일이 열거
윤석열과 김용현이 여인형과 이진우, 곽종근 세 사람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대통령 안가 또는 한남동에 있는 대통령 공관, 경호처장 공관,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한꺼번에 만났다고 군검사가 공소장에 적은 날짜는 4개(2024년 4월 중순, 6월17일, 10월1일, 11월9일)다.
곽종근의 법정 증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비록 윤석열, 김용현과 만난 자리에서 ‘계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10월1일 모임부터
였고, 김용현으로부터 ‘국회, 선관위 과천청사·관악청사·선거연수원, 민주당사, 여론조사꽃 등 6개 장소에 특전사 부대원들을 투입해 시설을 확보하라’는 별도의 지시를 받은 12월1일에 “조만간 비상계엄이 선포될 수도 있겠다는 긴장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군의 날이었던 10월1일 시가행진을 마치고 윤석열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윤석열이 ‘반국가세력’을 말하며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여러 단체를 언급했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으로 경향신문과 제이티비시(JTBC)를 특정했으며, 정치인 이야기를 할 때 ‘한동훈’을 말했다는 것이 곽종근의 증언이다.
비록 곽종근의 증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윤석열이 10월1일 모임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도 말한 것으로 여인형은 기억한다.
“대통령께서 현재의 사법체계, 형소법(형사소송법), 방탄국회, 재판 지연 상황하에서는 이재명 같은 사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비상대권을 통해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여인형이 2024년 12월24일 군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
군검찰은 곽종근에게 ‘증인을 포함한 사령관들이 자신의 임무를 말했다던 11월9일 모임은 대통령이 비상조치 때 각 사령관이 조치할 사항을 사전에 점검한 자리였고, 증인을 포함한 사령관들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곽종근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군검찰의 질문은 내란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범죄 행위를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특정한 의도나 인식을 범죄의 주관적 구성요소라고 한다.
주관적 요소만을 고려했을 때 내란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수인이 집합하여 폭동한다는 인식과 의사가 있어야 하고, 국토 참절(어떤 국가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해 그 국가의 주권 행사를 사실상 배제) 또는 국헌 문란(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 기능을 소멸시키는 일, 또는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 목적이 있어야 한다.
윤석열을 비롯한 12·3 내란 피고인들은 국헌 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로 기소됐다.
내란죄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국토 참절 또는 국헌 문란 목적을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는 인식(확정적 인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겠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80도306)다
. 이를 이 사건에 적용하면 곽종근과 여인형, 이진우가 윤석열, 김용현으로부터 비상대권에 관한 이야기와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현재 어려운 시국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듣고 ‘국회, 선관위와 같은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군을 투입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면 내란죄가 인정된다.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이 2025년 4월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내란죄 인정
여인형의 변호인은 사전 모의가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2024년 4월과 6월, 10월, 11월 모임에서 윤석열과 김용현이 ‘계엄’이라는 용어를 꺼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곽종근은 일관되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곽종근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비상계엄에 관한 말이나 대화가 아예 없었냐, 이 부분은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비상계엄’이라는 용어를 안 쓴 것은 맞습니다.
”
여인형의 변호인
정리하면 (윤석열과 김용현이) ‘계엄’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뭔가 군을 이용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가요?
곽종근
그에 관한 용어(‘반국가세력’ ‘비상대권’ 등)를 많이 썼습니다.
(윤석열과 김용현이) 시국에 대한 어려움을 워낙 많이 얘기해서 그렇게 인식했습니다.
이진우의 변호인도 여인형의 변호인과 같은 취지로 신문했다.
이진우의 변호인은 “공소장대로라면 같이 밥을 먹어도 모의가 되고, 전화 한 통이면 모의가 되고, 말 한마디 들으면 모의가 된다”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얘기했을 뿐이지 여기에 동조해서 같이 행동을 하겠다는 의사가 없으면 그 일방적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신문을 이어갔다.
이진우의 변호인
증인은 비상계엄 선포 전에 피고인(이진우)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비해서 사전에 협의한 적이 있습니까?
곽종근
없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96도3376)
는 내란 가담자들의 ‘공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내란 가담자들이 하나의 내란을 구성하는 일련의 폭동 행위 전부에 대하여 이를 모의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전체로서의 내란에 포함되는 개개 행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라도 그 모의에 참여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기여하였음이 인정된다면 그 일련의 폭동 행위 전부에 대하여 내란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
이를 바탕으로 군검찰은 “내란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과 공동 실행 의사만 있으면 내란을 구성하는 개인의 행위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동의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을 구성하는 행위 전부에 대해 내란죄 정범으로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진우·여인형, 내란죄 성립 부인
윤석열 탄핵사건 청구인 대리인단에 참여한 군법무관 출신의 김정민 변호사는 “지금의 수방사와 특전사, 방첩사는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부대들이다.
대통령 윤석열이 굳이 이 세 사령관과 여러 차례 회합한 점,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군인들에게 여러 차례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며 특정 단체, 특정 인물을 비난한 점 등을 종합하면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계엄’을 말하지 않더라도 사령관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며 “윤석열과 김용현이 마련한 모임에서 나온 말들, 그 모임에 참석한 사령관들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을 종합하면 법원이 이 사건에서 공모 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진우와 여인형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곽종근은 공모 사실만 부인하고 나머지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관련 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108.html
〈하나같이 발뺌만… 법정에 선 내란범들〉
겸상은 했는데… 윤석열 ‘계엄 암시’ 딴소리하는 내란군 책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