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토크]
2025년 3월부터 ‘자녀 살해 후 자살’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40대 남성이 배우자와 자녀 2명을 살해하고 숨진 사건을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가족이 살았던 집을 찾았지만 이 가족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가 지지부진한 사이, 또 다른 자녀 살해 후 자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사건을 제대로 취재하기도 전에 한 달에 한 번꼴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자살’에 초점을 맞출지 ‘아동학대’에 방점을 둘지에 따라, 이런 사건을 보는 관점은 달라집니다.
과거에 이런 사건은 ‘일가족 동반자살’이라고 명명됐습니다.
부모가 그런 결말을 선택하는 과정을 좀더 이해하려는 온정적 시각이 우세했지만, 2022년 전남 완도군에서 숨진 조유나양의 사연이 널리 알려진 뒤부터는 이런 시각이 바뀐 것 같습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하지만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여전히 ‘자살’에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에 ‘아동학대 살해’라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생명을 위협받은 적 있는 최지안(47·가명)씨를 인터뷰하면서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최씨는 단호하게 “(자살보다는) 아동학대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관점의 차이는 대책의 차이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자살 예방 정책을 세우는 게 급하다고 볼지, 아니면 아동학대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볼지요. 제3의 길도 있습니다.
사안의 성격이 모호하다고 보고, 책임 있는 부서와 기관들이 서로 다른 쪽으로 떠넘기며 대책 마련을 공백의 영역으로 두는 방법입니다.
취재하면서 저는 한국이 제3의 길을 걷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사건이 정확히 얼마나 일어나는지 파악된 통계가 마땅치 않습니다.
또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가 얼마나 되는지, 이후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정보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일은 일어나는데 이를 확인할 공식 기록은 부족하고, 사건 이후의 아동의 삶도 알 수 없으니 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건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여기에 영향받는 이가 있으리라는 사실이 우려스럽습니다.
공교롭게도 2025년 6월1일, 40대 남성이 고등학생 형제들과 아내를 승용차에 태워 바다로 추락한 뒤 홀로 살아남은 사건은 2022년 조유나양 사건과 비슷한 점이 정말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멀리 여행을 갔고, 가족이 탄 차가 바다로 추락했으며, 숨진 가족들에게서 수면제 성분이 나왔다는 것도요.
자살 사고에 사로잡힌 이들은 관련 정보를 계속 찾아보면서 이를 증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연달아 일어난 사건 보도를 접한 뒤 관련 기사를 찾아보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기사엔 숨진 아동이 어떤 아이였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꿈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담기지 않습니다.
제가 살아남아서 어른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썼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반자살’이라 부르면 ‘살해’가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