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뺏기고 윤석열에 날개 달아준 아픈 기억… 정치적 대립 구도 무력화하려는 전략 눈길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25년 7월1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권 초반은 ‘전형’에서 탈피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느낌이다.
보수정치는 이재명 정권이 전형적인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기류였다.
‘말로는 중도와 실용을 외치지만 결국 옛날 버릇 나오지 않겠는가’라는 식인데, 실제 그런 낌새가 있을 때마다 보수언론은 일제사격을 퍼부을 기세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은 틈을 오래 주지 않고 곧 명분을 회수해가는 식의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보수가 보기엔 김이 좀 빠지는 형국이다.
그래도 별러온 검찰개혁에서만큼은 이재명 정권이 본색을 드러낼 것으로 보수세력은 전망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누구로 지명하는지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온건파로 알려진 정성호 민주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보수언론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다.
조선일보는 2025년 6월30일 “검찰개혁 방향이 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긍정적 신호”라고 했다.
온건파 정성호 지명에 보수언론도 “긍정적 신호”
정성호 의원은 ‘친명 좌장’으로 불리지만 이재명 대통령에게 과거부터 쓴소리를 많이 해온 인사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불편한 얘기가 나올까봐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이 정성호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물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겠지만 문재인 정권의 경험 역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인물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검찰’의 행태가 정당화되는 걸 넘어 아예 검찰 논리가 통치를 ‘덮어쓰기’ 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검찰개혁을 요란하게 내세우는 정치가 오히려 개혁 대상에게 명분을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과 이른바 ‘추-윤 갈등’과 윤석열 징계 국면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이런 측면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권 초기 검찰개혁의 청사진은 비교적 정돈돼 있었다.
검경의 수사권을 조정하고 검찰이 6대 주요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장관 수사 등으로 정권에 타격을 입히고 정치적 난타전으로 사태가 흘러가면서 개혁의 청사진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됐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을 반대해야 할 이유’라는 일련의 연속적 정치 논리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이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여당은 ‘윤석열 검찰을 반대해야 할 이유’의 논리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데 상당한 정치적 역량을 투여했지만, 결국 ‘문재인 반대’ 논리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개혁이 싸움의 구도로 변질하면서 ‘다섯 대 맞고 한 대 겨우 때리는’ 졸전을 치르는 지경이 됐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 이번엔 승리 쉽지 않아
이번에도 검찰 내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집단은 윤석열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인지 ‘무리한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그간 자신들의 행보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심우정 전 검찰총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 또 퇴임식을 치르면서 여당이 추진하는 수사-기소 분리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그와 거취를 같이하는 모양새로 함께 사표를 낸 주요 직책의 검사들도 검찰 내부망에 일제히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부당성에 대해 글을 올렸다.
‘비정상적 개혁이냐 정상적 현상 유지냐’의 정치적 전선 형성을 시도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에도 승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경기장의 조건이 달라졌다.
윤석열 정권 3년 가까운 기간에 검찰은 그야말로 바닥을 드러냈다.
게다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이 돌아간다.
문재인 정권 시절 여당과 달리 현재 집권 세력은 ‘검찰 반대’ 논리 생산을 위해 정치적 역량을 과잉 투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정성호 후보자가 “검찰 조직의 해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거나 “검찰 조직 내부에서 반발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당과도 협의하겠다” 등의 메시지를 낸 것에도 이런 여유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검찰개혁 의제를 두고 문재인 정권 때처럼 보수 야당과 검찰이 연합해 정치적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걸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류는 일부 검찰 인사에도 반영됐다.
물론 보수언론은 기성 검찰 기득권의 폐해를 비판해온 임은정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장에 임명된 사례 등을 두고 ‘코드 인사’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보다는 ‘정책에 동의한다면 어느 쪽이든 과감하게 발탁한 것 같다’는 평가가 눈에 띈다.
만일 이번에 ‘친정권 검사’(그런 인사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별론으로 하고)들만 승진했다면 이 또한 어떤 ‘전형’으로 받아들여져 전형적 비판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아니다.
조국혁신당의 반발은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조국혁신당은 자신들이 사전에 중히 쓰여서는 안 될 ‘윤건희 검사’ 명단을 대통령실에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이재명 정부 인사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조국혁신당에는 이번에 요직을 맡게 된 검사들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 등 수사에서 악연을 맺게 된 인사들이 몸담고 있다.
따라서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그런데 조국혁신당 인사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들이 반발할수록 이재명 정부 입장에선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인사를 썼다’는, ‘전형’에 따르지 않았다는 맥락이 강화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게 문재인 정권 때와는 다른 구도를 창출하는 요소가 된다는 게 지금 상황의 아이러니다.
강경파 반발 영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구도와 정치적 효과만큼 중요한 것은 실제 검찰개혁의 제도적 측면이 어떻게 되느냐다.
수사와 기소 분리라는 큰 틀에 대해서는 집권 세력 간 큰 이견은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다만 그게 여당 의원들 주도로 발의된 법안의 형태로 되느냐에 대해선 아직 여지가 남아 있다.
가령 정성호 후보자는 “정부도 자체 법안을 제출할지 안 할지 모른다”고 했다.
앞서 검찰 해체 관련 발언과 더불어 이를 근거로 정부가 여당과는 결이 조금 다른 대안을 내놓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있다.
헌법에 영장을 검사가 청구하게 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을 살리거나 중대범죄수사청에 검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대안은 다시 조국혁신당이나 당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야당 시절 현 집권 세력은 대개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거나 그에 이끌려 가는 전형적 정치에 의존한다는 프레임에 오래 갇혀 있었다.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어떨까? 오히려 강경파의 반발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통치를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 기로에 놓인 듯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보수언론 당황시킨 ‘이재명식’인사…영리한 검찰개혁 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