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도 아닌 격려금, 최대 성과 불구 외려 줄어”… 고강도 노동 맞물린 업계 관행에 정면 대응
2025년 6월25일 게임업계 첫 전면 파업에 들어간 네오플 노동자들이 제주시 본사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사진 네오플 노동조합 제공 2025년 6월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 동안 민주노총 화섬식품지부 넥슨지회 네오플 노동조합이 전면 파업을 단행했다.
이들은 7월에도 팀별로 12일에서 최대 20일까지 순환 파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게임산업이 케이(K)컬처의 핵심 콘텐츠로 주목받으며 25조원 규모 산업으로 외형적 성장을 하는 동안 국내 게임업계 노동자들은 한 번도 파업 투쟁을 벌인 적이 없었다.
네오플 노조의 파업은 국내 게임업계의 첫 파업 기록이다.
이들은 왜 파업했을까. 네오플은 2001년 설립됐고, 2008년 넥슨에 인수됐다.
넥슨은 게임업계에서 압도적 매출 1위 회사이고, 네오플은 넥슨의 계열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네오플의 대표작은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 시리즈다.
2005년 8월 출시된 던파는 한국 게임을 대표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20년 가까이 안정적인 매출 궤도를 그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십수 년 이어진 던파의 안정적 매출로 네오플은 기반이 탄탄한 아이티(IT) 기업이 될 수 있었다.
특히 2024년의 성과는 기록적이었다.
네오플은 역대 최고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8천억원에서 9천억원 사이를 오가던 매출이 1조3783억원으로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9824억원을 기록해 1조원에 육박했다.
이런 성과는 길게는 10년 가까이 준비해온 프로젝트인 던파 모바일의 중국 출시에 따른 것이다.
2024년 5월 중국에 출시된 던파 모바일은 출시 첫날 애플 앱스토어 인기 1위와 매출 1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출시 한 달 만에 월간 이용자 2천만 명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중국의 게임 규제 강화로 2020년 이후 긴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던파의 컴퓨터게임이 워낙 중국에서 인기가 있었기에 모바일게임 역시 장기 흥행이 예상된다.
  노조, 영업이익 4% 균등 지급제 요구   게임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넥슨 제공 하지만 성공의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회사가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기록한 이후 노동자들은 ‘더는 참을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섰다.
네오플 노조는 ‘우리의 성과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반어법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국 진출로 달성한 네오플의 성과가 기념비적이라면, 네오플 노조의 반어법적 물음은 게임업계가 맞이한 분기점을 보여준다.
네오플 노동자들의 파업은 성장 목표를 달성한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성과를 보상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이면서 동시에 프로젝트 기반으로 조직이 꾸려지고 고강도 노동을 통해 성과가 창출·관리되는 게임업계를 비롯한 모든 IT 기업이 마주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네오플 노조는 이익분배금(PS·Profit Sharing, 이하 PS제) 4% 지급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영업이익이 발생하면 총액의 4%를 전체 노동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것을 제도화하라는 것이다.
네오플 노조 조정우 분회장은 “기록적인 매출과 이익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실적대로 보상하지 않고, 일방적 기준으로 오히려 성과 보상을 줄였다”고 말한다.
반면 네오플 사 쪽은 던파 모바일의 중국 출시가 지연됐던 상황에서 이미 성장 인센티브(GI·Growth Incentive)가 지급돼왔음을 강조한다.
‘성과가 불확실함에도 성과급을 우선 지급했고, 2025년에는 지급하지 않아도 될 성과급까지 배려해 지급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노조는 사 쪽의 이런 입장이 던파 모바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제공돼야 할 성과급을 그나마 ‘22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3분의 2로 축소해 지급했던 과정’이라고 반박하며, 중국 출시 지연을 이유로 직원들의 성과급을 축소했던 회사가 경영진에게는 10배의 보상을 줬다는 주장도 한다.
이 때문에 네오플 노조는 던파 모바일 중국 출시 등으로 발생한 2024년도 영업이익 9824억원 가운데 4%에 해당하는 약 393억원을 노동자들에게 수익 배분해달라고 거듭 요구하고 있다.
중국 출시를 목표로 개발된 던파 모바일의 출시가 지연되는 동안에도 성장 인센티브를 줬다는 사 쪽 주장과 사상 최대치의 영업이익에도 분배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노조의 주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출시 지연 때도 보너스”… “이익 배분은 다른 차원”   최근 10여 년 사이 IT 기업의 노동조합 결성이 붐을 이뤘다.
최근 5년 사이 노동조합이 설립된 IT 기업들만 보더라도 웹젠, 카카오뱅크, 엔씨소프트, 엔에이치엔(NHN), 야놀자 등 굵직한 기업이 10여 개에 이른다.
IT 기업에 노조 가입 붐이 발생한 이유는 ‘효능감’ 때문이다.
IT 기업이 게임 등과 같은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프로젝트 단위로 단기 계약을 해서 개발자들의 고용 불안을 야기하거나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프로젝트와 관련해 재면접을 보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지 못하면 퇴사 압박을 하는 등의 관행이 만연했는데, 노조가 생기면서 이런 관행을 조금씩 개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혁 게임평론가는 “대기업 중심이란 점이 아쉽긴 하지만 노조 결성 이후 포괄임금제가 폐지되고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등의 효과를 보면서 IT 기업 내부에서 ‘우리도 노조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하거나 고강도 노동을 하던 이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상황에 효능감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지난 10여 년 동안의 노동조합 결성 흐름이 게임업계의 노동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문제에 주력했다면 네오플 파업을 기점으로 이제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 성과 배분 등의 기업 의사 결정의 민주화, 노동자 존중 기업 경영 등의 단계로 나아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게임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한 이후 그 성과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는 오래된 과제였지만, 주요 IT 기업들은 이 문제를 외면해왔다.
IT 기업들은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면서도 정당한 배분의 문제가 등장하면 ‘불확실한 성장 가능성’을 핑계로 ‘상대적으로 높은 평균임금’ ‘재택근무 등 상대적으로 유연한 근무 환경’ 같은 문제로 노동자를 공격해왔다.
삼성전자가 2000년대 초반 PS제를 도입한 이후 기존 대기업에서는 매출이나 이익에 연동되는 인센티브 제도가 익숙해졌다.
흔히 성과급이라고 불리는데, 매년 몇몇 대기업에서 직원들이 성과급을 연봉만큼 받았다더라는 ‘직장 전설’이 떠돌곤 한다.
반면 생산성 격려금이라고도 불리는 성장 인센티브는 기본급에서 추가로 지급하는 차원의, 전통적 의미의 보너스 급여다.
네오플의 문제가 이 지점에 걸쳐 있는데, 사 쪽은 던파 모바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축소됐더라도 계속 보너스를 지급해왔다고 주장하고, 노조는 개발 과정의 과중한 업무에 따른 보상이었을 뿐 던파 모바일의 기록적 매출에 따른 이익 배분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정당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반론한다.
  지속 성장 위해서라도 비켜갈 수 없는 문제   네오플 노조의 파업에는 제주와 서울 조합원을 합쳐 850여 명이 참여했다.
이는 전체 조합원의 80%에 육박하고, 전체 게임 개발 관련 부서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사진 네오플 노동조합 제공 게임산업의 화려한 성공이 지속적인 고강도 노동의 연속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게임 개발에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라는 야근과 초과노동이 이어지는 집중 노동 시간이 반드시 수반된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윤석열의 ‘주 120시간 근무 필요성’ 발언이 바로 게임업계를 예로 드는 과정에서 나왔다.
네오플 역시 마찬가지였다.
던파 모바일이 호평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원작에 충실한 재연에 세밀한 그래픽이다.
이는 ‘아트, 도트, 미디어, 영상 직군’이 주로 수행하는 작업인데 네오플 노조는 이들 직군이 ‘과도한 업무로 극심한 피로도가 누적돼 여전히 고강도 노동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 직군의 노조 가입률은 85%로, 네오플 전체 직원의 노조 가입률 79%를 상회하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던파 모바일을 개발하는 과정과 중국 출시가 지연됐음에도 이를 개발하고 국내에 출시한 뒤 운영·관리하는 기간에 네오플 노동자들은 넥슨 그룹사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야근과 초과노동을 이어왔다.
던파 모바일의 기념비적 성공은 바로 이 고강도 노동에 빚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산업의 특성을 영화산업과 견주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성패를 장담하기 힘든 프로젝트성으로 발생하는 비즈니스모델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화산업은 고도화되면 성패 위험을 줄이기 위해 별도의 목적 법인을 만들어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관행화됐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수익과 손해는 해당 프로젝트 비즈니스로 한정해 일회성으로 묶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게임은 개발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수정 보완이 필요해 존속 법인이 운영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다.
실패한다면 감수할 테니 성공한다면 ‘영업이익에 연동되는 성과 보상을 제도화해달라’는 네오플 노조의 주장은 게임산업을 바꾸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떤 파업은 사건이고, 어떤 사건은 국면을 바꾸기도 한다.
국내 IT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공정한 배분과 노동 존중은 더 이상 비켜갈 수 없는 문제다.
 
‘던파’ 초대박 주역들 “번 만큼 나눠달라”… 게임업계 첫 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