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기획][남들의 플레이리스트]‘찐따 서울대 자취녀’ 콘셉트 영상으로 대중에 존재감… 첫 자전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 7월에 펴내는 이야기꾼
‘찐따 콘셉트의 서울대 자취녀’로 대중 앞에 등장한 원소윤. ‘피식대학’ 유튜브 채널 갈무리.
“서울대는 들어갔지만, 클럽은 못 들어갔다.
” 그렇게 시작한 농담은 유튜브(쇼츠 최고 조회수 678만 회)와 릴스(인스타그램 짧은 영상)를 타고 퍼졌고, 코미디언 원소윤은 ‘찐따 콘셉트의 서울대 자취녀’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이야기는,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넘어 ‘덜 죄책감을 느끼는 행위’를 찾아가는 여정에 더 가까웠다.
케이(K)-딸의 죄책감 극복 여정
“20대 때 내 인생의 코어는 죄책감이었어. 부모님은 고생하며 사시는데, 나만 서울에 와 너무 좋은 걸 누리는 것 같았거든.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땐 집에 갔다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울기도 했어. 그나마 독서는 뭔가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덜한데, 그래도 스스로를 계속 비웃긴 했어. ‘너, 이런 책도 읽고 되게 고상한 척한다.
’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오만했던 것 같아.” 그랬던 그가 처음 소설을 끄적거린 건 22살 때였다.
“당시 남자친구가 3주 동안 어딜 가서 못 만나게 된 거야. 돈도 없었고, 나한텐 이상한 금욕주의 같은 게 있어서 놀러 다니는 것도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방에 틀어박혀 넷북으로 소설을 썼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어.”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일단 생업이 있어야 하니, 소윤은 일을 구했다.
식물원에서 전시 해설자로도 일하고, 성매매 여성 지원 사업을 하는 단체에서도 6개월 일했다.
그러고선 깨달았다.
자신이 운동가는 아니라는 것을.
“구호를 외치는 일이 나랑 너무 안 맞았어. 실망의 연속이더라고. 그래서 예술을 해야겠다.
그래도 당장은 못하니까 출판 편집자로 1년 일했고, 그 과정에서 계속 신춘문예에 소설을 냈는데 최종심에 두 번 정도 갔다가 떨어졌어. 자꾸 미련이 남기에 어영부영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 해서 회사를 그만뒀지. 그때가 스물일곱. 소설을 쓰려면 글방을 알아봐야겠다 해서 쭉 보다가, 양다솔 작가의 스탠드업 코미디 워크숍이 있는 거야. ‘언제 또 이런 걸 해보겠어?’라는 생각에 신청했지.”
그렇게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틈틈이 쓴 글을 출판사에 투고해, 민음사 한국문학팀 박혜진 편집자의 눈에 띄어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자전적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를 2025년 7월 중순에 출간하게 됐다.
돌고 돌아 꿈을 이뤄낸 셈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보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에 더 집중하는, 그래서 페미니즘에 호의적이지 않은 관객 앞에서 농담하는 걸 무서워하는 나와 달리, 소윤은 채식주의자라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어느 무대에서든 잘해내는 점이 늘 부러웠고 멋지다 느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 원소윤 제공
나에겐 의의보다 웃음이 중요해
“난 최대한 관객에게 맞추려고 노력해. 나에겐 ‘의의’보다 ‘웃음’이 중요하거든.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 요양원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웃겨야 하고, 삼성 워크숍에 가면 삼성맨을 웃겨야 하고, 화성에 가면 화성인을 웃겨야지. 그래서 나는 내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를 다뤄. ‘안 팔리는 여자’ ‘평생 욕망당한 적 없는 여자’ 이런 게 나한텐 아주 편한 소재지. 결정적으로 나는 세상에 무해한 농담은 없다고 생각해. 살아 숨 쉬고 말하는 것 자체가 유해하다고 보거든. ‘무해한 농담’은 일종의 환상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꽤 자유롭기도 해. 이 자유를 쥐고 막 휘두르는 게 아니라, 잘 만끽하려면 늘 성찰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재미없는 농담’은 코미디클럽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극도로 유해한 농담일 테니까.”
원소윤(오른쪽)은 ‘피식대학’ 유튜브 채널 콘텐츠 ‘긁’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에 존재감을 알렸다.
피식대학 유튜브 채널 갈무리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오른다는 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면서 해야 한다고 소윤은 조언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소재로 워낙 가족과 친구 얘기가 자주 나오니 그걸 본 이들의 반응이 어떤지 물었다.
“엄마는 내가 너무 멋있대. 엄마 욕하는 농담을 해도 깔깔대면서 좋아해. 사람들이 자기 얘기에 웃는 게 신기하대. 십 몇 년 동안 재소자 대상으로 상담 봉사를 했는데, 그걸 하면서 겪은 일이 엄마에겐 그냥 삶이니까, 얼마나 블랙코미디스러운지를 모르더라고. 어제도 통화하는데, 엄마가 ‘전화했네? 방금 막 교도소에서 나왔거든’ 이러는 거야. 듣는 나는 깜짝 놀랐지. 근데 엄마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그걸 내가 발견했지. 이거, 진짜 웃기다.
”
하지만 항상 무대가 좋을까? 힘든 점은 없냐고 소윤에게 물었다.
“자존감이 깎이는 무대도 있지. 요즘 릴스로 좀 알려지다보니 이른바 ‘등장빵’이란 게 있어. 근데 그 환호가 2분도 안 가. 끌고 가지 못하면 분위기가 바로 싸해지지. 관객은 진짜 냉정하거든. 결국 실력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게 스탠드업 같아.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해야 하고.”
전업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로 소설도 쓰고 그걸 세상에 내보내는 작가로서, 스스로 상품이 되고 이야기를 파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나 충돌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릴 때 나는 메타인지(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스스로 구분해내는 능력)를 계속하려 노력하고,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자주 고민했던 것 같아. 하지만 이젠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는 시기는 지난 듯해. 자기의 이야기를 언어화하고 상품화해서 팔 수 있는 것 자체가 정말 운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이게 얼마나 권력이야, 마이크를 든 것 자체가 말이야. 그래서 자기 연민하지 말고, 하려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 씩씩하게.”
서울 용산구 소극장 ‘판타스틱씨어터’에서 매주 열리는 스탠드업 코미디 ‘코미디 삼각지대 오픈마이크’ 무대에 선 원소윤. 사진 문승호
씩씩하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실제로 소윤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면서 씩씩해졌다.
“어쨌든 스탠드업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10초에 한 번씩 평가를 받다보니 계속 노출되는데, 노출된다고 해서 세상이 그리 크게 바뀌지 않더라고. 성은도 이준석 놀리는 농담을 올렸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잖아.” “맞아, 못생겼다는 악플 100개 달리긴 했지만 무플보단 나은 것 같았어.” 그러니 너무 무서워 말자고. 엄청 심각한 일은 잘 안 일어나니까, 오늘도 웃긴 농담 하나 해보자고. 소윤은 오늘도 웃긴 농담 하나를 떠올리며 무대로 향한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원소윤의 플레이리스트
①
Talking Funny - HBO
https://youtu.be/OKY6BGcx37k?si=hcR6pzL4q3DUgAcb
코미디를 사랑하는 내게, 코미디언들의 코미디 이야기보다 더 보물 같은 건 없다.
더구나 그 코미디언들이 ‘코미디를 사랑하는 코미디언들'이라면 더더욱.
②
켄드릭 Not Like Us에 관한 모든 것 PART 1
https://www.youtube.com/watch?v=6947VwjEtxw&ab_channel=%EC%99%80%EC%9E%87%ED%8B%B0%EC%98%A4%EB%A6%AC%EC%A7%80%EB%84%90
원래도 디스전, 로스트 문화를 즐기는데 켄드릭-드레이크 덕분에 2024년에 도파민 제대로 터졌다.
이 영상 덕분에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③내 거지 같은 일상
https://youtu.be/cTLs9bNPm5c?si=JN4_jL-zi2oezbPR
채널 김철수. 채널명만 떠올려도 애틋하다.
김철수는 매우 아름답다.
“서울대 들어갔지만, 클럽은 못 들어갔다”… 원소윤이 말아주는 웃긴 농담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