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철도청장 등 국고 손실 초래 혐의로 기소…379억대 부정부패 사건 연루 의혹
방글라데시 기관차. 현대로템 누리집 갈무리
철도·방산 대표기업인 현대로템이 방글라데시에 기관차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해 현지 철도청 고위 관계자들이 기소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현대로템은 계약을 위반하는 등 이 부정부패 사건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방글라데시 반부패위원회(ACC)는 2025년 9월18일 철도청(BR)의 전 청장 샴수자만, 전 부청장들인 만주룰 알람 초두리와 모하마드 하산 만수르를 사기와 횡령, 권한 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모해 현대로템으로부터 기관차 10대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계약과 맞지 않는 엔진 등 핵심 부품을 수입해 32억2680만타카(약 379억2천만원)의 국고 손실을 초래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1360만타카(약 1억6천만원)를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아시아개발은행 보고서 “계약서와 일치 않는 것 확인” 이 부정부패 사건의 핵심은 현대로템의 ‘엉터리’ 기관차 부품 납품이다.
2022년 방글라데시 총리실 보고서를 입수한 현지 언론 칼레르칸토 등의 보도를 보면, 현대로템은 2018년 5월 방글라데시 철도청의 디젤전기기관차 10량 구매 사업을 수주했다.
방글라데시 철도청이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차관 지원을 받은 410억원 규모의 사업이다.
현대로템은 2020년 7월25일 먼저 엔진과 교류발전기 등 기관차의 핵심 부품을 방글라데시로 보냈다.
그러나 해당 부품은 의무로 받아야 하는 ‘선적 전 검사’ 없이 선적됐다.
그럼에도 중국 인증회사인 중국검험인증그룹(CCIC)은 8월12일 검사도 없이 두 종류의 선적 전 검사 인증서를 발급해줬다.
8월31일 엔진이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구에 도착하자, 방글라데시 쪽 책임자는 이를 검사하지도 않고 그대로 하역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방글라데시 쪽 책임자는 품질 기준 미달을 이유로 엔진 인수를 거부했으나, 전 철도청장과 부청장이 구두로 하역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결국 시험 운전 과정에서 현대로템의 기관차 부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로템이 계약과 달리 품질이 낮은 부품을 보냈기 때문에 낮은 출력이 기록된 것이다.
방글라데시 철도청은 3천 마력의 엔진을 발주했지만, 현대로템은 2천 마력의 엔진을 보냈다.
또 다른 핵심 부품인 교류발전기도 계약서에 기재된 ‘TA12-CA9’ 모델이 아닌 ‘TA9-12CA9SE’ 모델을 납품했다.
견인 전동기도 ‘2909-9’ 모델이 아닌 ‘2909’ 모델을 납품했다.
철도청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방글라데시공과대학(BUET) 기계공학과의 마흐부부르 라자퀘 교수는 현지 언론에 “(현대로템이 납품한) 엔진의 출력이 부족하다.
마력이 높으면 더 많은 차량을 견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리실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2021년 11월 비리 혐의가 있는 전현직 철도청 고위 간부들에 대한 법적 조처를 권고했고, 반부패위원회가 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방글라데시 철도청 고위 관계자들과 현대로템이 짜고 계약보다 품질이 낮은 제품을 보내면서 차관 지원을 받은 410억원 가운데 일부를 빼돌렸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현대로템의 엉터리 부품 납품 사건은 이 사업에 자금을 지원한 아시아개발은행 2023년 9월 보고서에도 확인할 수 있다.
은행은 “2020년 8월27일 한국의 현대로템이 납품한 10대의 미터궤(MG) 디젤 기관차가 인도됐으나, 납품한 기관차의 교류발전기 사양이 계약서에 명시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은행은 그러면서 “이에 따라 방글라데시 철도청은 (현대로템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정하고 기관차 대금 75% 지급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현대로템은 이 사업 외에 2018년 10월에도 방글라데시 철도청으로부터 디젤전기기관차 70량 사업을 수주했지만, 2022년 8월29일 이 계약은 해지됐다.
방글라데시 총리실, 현대로템 제재 권고 현대로템은 이번에 기소되지 않았지만 부정부패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반부패위원회는 2025년 9월 수사 결과 발표에서 현대로템의 구체적인 범죄 가담 여부에 대한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2021년 수사를 권고했던 총리실도 현대로템이 비리에 깊게 연루됐다고 의심했다.
총리실은 보고서에서 “중국검험인증그룹과 현대로템이 기관차 엔진에 저품질 부품이 사용된 것을 비밀로 했다”고 폭로했다.
게다가 총리실이 2021년 “계약을 위반한 납품업체에 대한 제재를 권고한다”며 현대로템에 대한 조처를 권고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후라도 수사가 진행되면 현대로템 역시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반부패위원회는 “이번 수사와 관련해 또 다른 피의자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면 그에 따라 법적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철도청의 한 전직 관계자는 한겨레21에 “한국의 현대로템도 부패 혐의가 인정되면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정치적으로 판단해 기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패 연루됐어도 윤 정부 때 폭발 성장 현대로템은 2022년 이후 윤석열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기업이다.
현대로템은 윤석열 정부 동안 모로코 2층 전동차 440량을 공급하는 약 2조2027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을 수주했다.
이는 현대로템이 수주한 철도 사업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윤석열 정부가 2조원 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을 모로코 정부에 제공한 덕에 현대로템이 이 사업을 낙찰받을 수 있었다.
현대로템은 이 밖에도 2024년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차량 구매사업, 2022년 이집트 카이로 메트로 2·3호선 전동차 구매 사업 등의 EDCF 사업을 따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6년 EDCF 예산 총 2조3천억원 가운데, 현대로템의 사업에 지급되는 비용만 17%(389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로템은 특히나 ‘명태균 게이트’의 주인공 명태균씨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로비해 사업을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는 기업이다.
한겨레21은 현대로템이 윤석열 정부 초기 고속철도 케이티엑스(KTX)와 에스알티(SRT)의 차량 제작·정비 사업 경쟁입찰을 앞두고 명씨를 통해 정부에 로비한 뒤 1조7960억원 규모의 사업 두 건을 수주한 것으로 보이는 구체적 정황을 보도한 바 있다.
현대로템은 방글라데시 기관차 납품 비리 의혹에 대해 “우리 회사와는 일절 관련 없는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계약과 다른 부품을 공급한 데 대해 “미국산 발전기(교류 발전기) TA12의 부품 수급이 어려워짐에 따라 납기 지연을 우려, TA9발전기의 적용을 시행청(방글라데시 철도청)에 요청했다.
시행청과 협의를 통해 계약 금액을 일부 감액하기로 합의했고, 차량 납품을 2022년 완료했다”고 밝혔다.
[단독] 현대로템, 방글라데시에 ‘엉터리 기관차 부품’ 납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