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멕시코·브라질·인도, ‘엿장수’ 미국에 맞서 제가끔 국익 지키기 수싸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2025년 10월27일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에서 정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대미 관세전쟁, 다른 나라들은 지금 밉보이면 올라간다.
잘 보이면 내려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보호무역(관세) 정책은 기준도, 원칙도 없다.
더러는 참고 고개를 숙인다.
더러는 애써 자세를 곧추세운다.
어느 쪽이 국익에 부합할까? “누군가 ‘수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하면, 미국의 상품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애국적인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물론 단기적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아주 짧은 기간만 먹혀들 것이고, 장기적으론 관세 같은 무역장벽은 미국의 모든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 레이건 연설 소환한 캐나다에 관세 ‘10%’ 추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7년 4월25일 대통령 별장 격인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한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설 제목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이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고율 관세는 상대국의 보복을 유발해 격렬한 무역전쟁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이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시장은 위축되고, 기업은 도산하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가의 번영을 이루려면 보호주의적 입법을 거부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구하는 것뿐이란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와 성장도 거기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38년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소환한 건 캐나다 온타리오주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최근 레이건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1분 남짓한 광고를 제작해 미국 주요 방송에서 틀었다.
미국 보수파의 상징 격인 레이건 전 대통령을 내세워,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상호관세 정책을 비판한 셈이다.
격노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0월23일 캐나다와 진행 중인 관세협상을 전격 중단시켰다.
역풍이 거세지자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주지사)는 “10월27일부터 광고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온타리오주 주도인 토론토를 연고지로 하는 메이저리그 프로야구팀 블루제이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경기 1·2차전(10월25~26일)까지는 광고를 계속하겠다는 얘기였다.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고도 중계 방송에서 ‘레이건 광고’가 계속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 보복관세 10%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캐나다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기존 35%에서 45%로 높아지게 됐다.
캐나다보다 높은 관세율이 부과된 나라는 브라질과 인도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마녀사냥’을 이유로 7월 말 브라질에 기존 10%에 더해 40%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8월 들어선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지속한다는 이유로 인도에 기존 25%에 추가 보복관세 25%를 부과한 바 있다.
“멕시코 대통령, 트럼프에게 귓속말할 수 있어” 2024년 기준 브라질(1292억달러)과 인도(920억달러)는 각각 미국의 10위와 15위 교역상대국이다.
2위를 기록한 캐나다의 대미 상품 교역총액은 7621억달러에 이른다.
1위는 멕시코(8399억달러)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부터 집권 2기의 최우선 과제인 불법 이민자와 마약 유입 문제, 보호주의에 바탕을 둔 고율 관세 부과 등으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강하게 압박했다.
백악관 쪽은 2월1일 자료를 내어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을 포함한 마약 문제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른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이들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대해선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래가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뒤인 2월3일 캐나다와 멕시코에 부과한 관세를 30일간 유예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한 전화 통화에서 양국 국경지대에 병력 1만 명을 증강 배치해 마약 밀매를 단속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난 3월4일 결국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를 발효했다.
캐나다 쪽은 즉각 미국산 수입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멕시코도 비슷한 보복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이틀 뒤인 3월6일 별다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갑작스레 상당수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예했다.
혼란이 가중됐다.
“멕시코가 국경을 안정화하는 데 일조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
” 트럼프 대통령은 7월 들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펜타닐 유입을 막기 위한 추가 조처를 하지 않으면 관세를 30%로 인상하겠다”며 다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셰인바움 대통령과 통화한 뒤 추가 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기로 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에게 “트럼프에게 귓속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오른쪽)가 2025년 10월26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왼쪽) 등과 기념촬영에 앞서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9월11일 친위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 등으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징역 27년3개월형을 선고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9월14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브라질의 민주주의와 주권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상원은 10월28일 브라질에 대한 보복관세를 무력화하는 결의안을 52 대 48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의원 5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꼿꼿한 브라질과 인도… ‘아세안’에 공들이는 캐나다 미국의 보복관세가 발효된 직후인 9월 인도의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93% 폭락한 54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현지 매체 민트는 10월22일 “인도와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감축, 미국산 옥수수·대두 수입 확대와 관세 인하(15% 안팎)를 맞바꾸는 쪽으로 관세협상이 타결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10월26~2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직접 협상을 매듭지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개막 사흘 전 불참을 통보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무력충돌까지 치달았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화해’를 강요해왔다.
11월6일 북동부 비하르주 주의회 선거를 앞둔 모디 총리로선 관세협상 타결보다 국내 여론 달래기가 더 중요했을 터다.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동남아 각국 정상과 양자·다자 회담을 숨가쁘게 이어갔다.
카니 총리는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기회의 창’으로 아세안을 택했다.
그는 10월26일 개막 기조연설에서 “우리 모두 어려운 시기에도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멕시코는 10월 말 만료 예정이던 30% 관세 부과 유예 기간을 10월25일 재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이 요구한 ‘비관세장벽’을 낮추기 위해 “최소한 몇 주가 더 필요하다”는 셰인바움 대통령의 설득이 이번에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혼돈의 시대, 각국의 셈법이 제각각이다.
애초 정답이 있을 수 없다.
2024년 한국의 대미 상품 교역총액은 1971억달러, 미국의 6대 교역상대국이다.
트럼프 심기와 밀당하는 ‘4국4색’ 정상들